브라이슨 디섐보(25, 미국)는 올 하반기에만 4승을 쓸어담는 눈부신 퍼포먼스로 괴짜, 물리학자 이미지에 실력자를 덧댔다.
디섐보는 지난 10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론 골프클럽(파 72)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QBE 슛아웃에서 3위에 올랐다.
케빈 나와 한 조를 이뤄 최종 합계 10언더파 62타를 쳤다. QBE 슛아웃은 첫 두 라운드는 스크램블과 변형 포섬, 마지막 3라운드는 포볼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벤트 대회다.
격을 깨는 골퍼다. 디섐보는 늘 기존 선수와 다른 접근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그린을 읽을 때 수학이론을 적용한다. 스스로 '벡터 퍼팅'이라 이름 붙였다.
디섐보와 캐디는 컴퍼스를 이용해 야디지북을 쓴 적이 있다. PGA로부터 규칙 위반 통보를 받아 그만뒀지만 일반 골퍼가 눈대중으로 기울기와 바람 세기를 포착하는 걸 고려하면 독특했다.
지난달 2일에는 내년 시즌부터 깃대를 꽂은 채 퍼트하겠다는 뜻을 밝혀 팬들을 놀라게 했다. 깃대가 지닌 반발 계수가 퍼트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데 유리섬유 재질인 일반 깃대는 빼지 않고 공을 굴리는 게 더 안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괴짜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게 한 일등공신은 아이언이었다. 디섐보는 샤프트 길이가 같은 아이언, 이른바 '쌍둥이 아이언'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원 렝스 아이언으로 불리는 이 채는 2년 전 디섐보와 용품 계약을 맺은 코브라골프가 내놓은 제품이다. 선수와 회사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골프채가 탄생했다.
모든 아이언 길이가 37.5인치(95.25cm)로 6번 아이언과 동일하다. 헤드 무게도 278g으로 통일했다.
4번 아이언이든 8번 아이언이든 똑같은 척추각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손목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립도 기존 아이언보다 더 두껍고 무겁게 제작됐다. 디섐보가 툭 던진 영감을 코브라골프가 물성을 지닌 제품으로 현실화했다.
쌍둥이 아이언 장점은 여럿이다. 길이가 똑같으니 아이언별로 스윙 궤적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가 적다. 무게도 동일해 발이나 머리, 공 위치 조정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롱·쇼트 아이언을 가리지 않고 스윙에 '일관성'이 생기면서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디섐보 설명이다.
이밖에도 화가 모자를 쓴다거나 앞뒤가 똑같은 퍼터를 사용해 조명을 받았다. 2년 전에는 양발을 모으고 퍼트하는 사이드 새들 퍼팅을 시도해 PGA 골머리를 앓게 했다.
사이드 새들 퍼팅은 과거 샘 스니드(미국)가 사용했던 방법으로 여성이 말을 탈 때 다리를 벌리고 타는 대신 두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서 앉는 승마 용어 사이드 새들 라이딩에서 따온 퍼팅 아이디어다.
이 역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미국 CBS, 골프위크 등 여러 매체는 "괴짜란 표현으론 부족하다. 디섐보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대회가 없을 때도 쉬지 않고 고민·연구하는 필드 위 물리학자"라고 적었다.
골퍼로서 성적이 뛰어나다. 그래서 괴짜일지언정 '관종(관심종자)' 취급은 전혀 받지 않는다.
디섐보는 최근 6개월 동안 4승을 쓸어 담았다. 이 기간 세계 랭킹도 38위에서 6위로 껑충 뛰었다.
주니어 시절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대형 유망주였다. 2015년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챔피언십과 US 아마추어챔피언십을 동시 석권해 주목 받았다. 역대 4명 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써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 받았다.
올 한 해 세계 톱 골퍼로 거듭난 모양새다. 동료 선후배도 칭찬하기 바쁘다.
세계골프명예의전당에 헌액된 '백상어' 그레그 노먼(63, 호주)은 "다시 10대 시절로 돌아가 골프를 처음부터 배우게 된다면 디섐보처럼 플레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쌍둥이 아이언뿐 아니라 골프를 대하는 자세와 더 나은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열정 등을 높이 산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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