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이보근

[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우완 투수 이보근(32)은 2005년 프로 입단 후 올 겨울 처음으로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취득해 기분 좋은 기다림을 맞고 있다.

2005년 현대에 지명돼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보근은 팀에서 원하는 보직은 어느 곳이든 뛰는 '소금' 같은 존재다. 2016년에는 25홀드로 데뷔 첫 홀드왕을 차지하기도 했고 올해도 24홀드를 기록해 홀드 2위에 올랐다. 원 소속 팀인 넥센 히어로즈뿐 아니라 필승조가 부족한 여러 팀이 이보근의 거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전언.

포스트시즌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이보근은 FA 계약을 에이전트에게 맡겨두고 다시 개인 운동에 들어갔다. 계약과는 별개로 "비시즌 훈련을 시작한 순간 나는 이미 내년 시즌에 들어갔다"며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이보근을 최근 서울 시내에서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최근에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월요일(10일)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신혼여행 이후 아내와 둘이 간 첫 여행이었다. 나중에 FA 자격 얻으면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6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이제는 훈련을 시작했으니 나는 이미 내년 시즌에 들어간 것이다.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 2015년이었나. 비시즌에 소금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하고 있다. 2014년 여름부터 하고 있다. 그때는 그런 선수들이 별로 없었을지 몰라도 아마 지금은 식단 관리를 다들 철저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비시즌엔 최소한의 염분만 섭취한다. 닭가슴살과 물, 탄산수, 아메리카노가 먹는 전부다. 계속 싱겁게 먹으면 나중에는 탄산수에서 사이다 맛이 느껴진다(웃음). 그래도 쌓여 있는 지방을 빼고 근육을 채우는 것이라 좋은 것 같다. 스프링캠프 때부터는 정상적으로 먹으면서 운동한다.

- 처음으로 FA 자격을 취득했다.
20대까지 FA라는 건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다. 프로 유니폼을 입는 선수는 많지만 FA를 채우는 선수는 적으니까 정말 힘든 일이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건 내가 그래도 꾸준하게 했으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도 기쁘게 생각한다.

- 올 시즌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플레이오프 3차전이다. (이보근은 8회 무사 2루 위기에서 SK 한동민, 최정, 제이미 로맥을 모두 삼진으로 잡고 팀의 1점 리드를 지켰다) 그때 아내는 울었다고 하더라. 운 이유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실점을 하지 않아서였다더라. '남편이 (패배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웃음). 한동민을 넘었더니 최정이 나오고 최정을 넘었더니 로맥이 나오더라. 내가 생각해도 인생 최고의 포크볼이었다. 던지기 전에 평소와 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그때 손가락 힘을 다 쓴 느낌이다.

▲ 플레이오프 3차전 위기를 넘기고 포효하는 이보근 ⓒ곽혜미 기자

- 팀이 쉽지 않은 시즌을 보냈는데.
사실 올해 내 목표는 두자릿수 홀드만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스프링캠프도 대만(2군)으로 갔고 우리 팀 필승조가 좋아서 그냥 3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 기록만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팀에 위기가 생기면서 내가 24홀드까지 하게 됐다. 중간에 11연승을 하면서 우리 팀이 가을 야구까지 갔다. 사실 그때 선수들이 위기감을 다같이 느꼈다. 어린 선수들은 위기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텐데 선배들이 잘 이끌어줬다. 그리고 우리 팀 후배들은 야구 능력이 정말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렇게 이겨낼 수 있었다.

- 홀드왕 타이틀이 아쉽지 않나.
전혀 아쉽지 않다. 사실 시즌 중반에 홀드 상황에서 구원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6월 20일 잠실 두산전이었는데 선발 김정인이 3이닝 만에 내려가고 양현, 김성민에 이어 내가 나갔다. 팀이 1점차 앞선 상황에서 1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해서 홀드라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보니 내가 승리투수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때 홀드를 못한 게 마음에 걸리더라(웃음). 막판 홀드 경쟁을 할 때도 올해 내가 홀드왕이 될 거라면 모든 상황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홀드왕을 차지한) 롯데 오현택 선배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던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웃음). 

- 지금까지 선수 생활 하며 가장 고마운 사람은.
가족이다. 아내는 나를 만난 뒤로 방해될까봐 외출도 잘 안 하고 내조에만 전념하고 있다. 내가 등판할 때 장모님은 108배를 시작하시고 아내는 차마 경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사진으로 봤다. 4살 아들만 아무것도 모르고 TV에 나오는 날 따라한다더라(웃음). 힘들 때도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은 가족이다. 고척돔 지하 불펜에서 그라운드로 올라가는 계단이 참 외로운 길이다. 그때 목걸이에 있는 결혼 반지를 만지면 없던 힘이 생긴다. 집에 가면 반겨주는 아이들도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다. 세상 모든 가장들은 그럴 거다.

- 가족 말고 또 다른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만난 감독님, 코치님들이 다 좋았다. 하지만 신인 때 전지훈련 첫 룸메이트로 시작해 올해 대만 스프링캠프까지 함께 한 박승민 코치님이 가장 고맙다. 내가 신인 때 코치님은 29살 선수였다. 너무 무서웠다(웃음). 정말 관리를 잘하는 분이다. 지금도 체지방이 한자릿수인 걸로 알고 있다. 코치님들 중에서도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추억이 많다. 나한테 커브를 꼭 던져야 한다고 했던 분도 박 코치님이다. 이번 대만 캠프도 박 코치님이랑 같이 가서 멘탈을 잘 잡았다.

- FA 계약, 히어로즈가 마음 속 1순위인가.
당연하다. 나는 2005년 입단한 뒤 우리 팀을 계속 봐왔다. 팀이 없어졌을 때, 힘들 때 모든 것을 다 지켜봤다. 팀이 제일 잘하던 2014~2015년에만 없었다. (당시 공익요원으로 복무) 내가 그때 뛰었더라도 경쟁력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아쉽다. 우리 팀 동료들과 우승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 FA 시장에 나왔으니 자기 PR을 해본다면.
내가 KBO 리그 투수들 중 직구 구사 비율이 가장 높은 편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워낙 타자들이 다 잘치니까 투수들의 변화구 구사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내 직구에 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팀이 내보낸다면 어떤 상황이든 필승조로 던질 자신이 있다. 못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지금까지 했으니까. 그런 게 내 장점이 아닐까. 사실 내 장점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해보지 않았다(웃음).

- 내년 준비를 하며 세워둔 목표는.
올 시즌 한 번도 1군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에 만족하고 있다. 내년에도 아프지 않고 꾸준히 경기에 나선다면 다른 것들은 따라오지 않을까. 다만 현재 451경기-81홀드인데 내년에 500경기-100홀드는 꼭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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