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AFF 컵 우승으로 베트남에 축구 열풍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AFF(아세안축구연맹) 컵을 들어 올렸다.

베트남은 15일 하노이 미딘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AFF 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0으로 꺾고 1차전 2-2에 이어 1승1무로 2008년 인도네시아-태국 대회 이후 10년 만에 정상에 다시 올랐다.

1996년 제1회 싱가포르 대회를 시작으로 13차례 열린 이 대회에서 베트남은 말레이시아(1회)를 제치고 태국(5회) 싱가포르(4회)에 이어 최다 우승국 3위로 올라섰다. 지역 경쟁국 가운데 하나인 인도네시아(준우승 5회)와 1960~70년대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강호였던 미얀마(옛 이름 버마)는 아직 이 대회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스포츠 인연은 꽤 오래됐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불과 4년 뒤인 1949년, 대한축구협회는 국가 대표 팀을 꾸려 동남아시아 원정에 나섰다. 1차 원정지인 홍콩에서 2승 2패를 기록한 국가 대표 팀은 1월 15일 사이공(호치민의 옛 이름)에서 가진 남베트남(월남)과 첫 경기에서 4-2로 이겼다.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 시내는 총소리가 들리는 등 어수선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와중이었던 까닭이다. 국가 대표 팀은 2차전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3차전에서 남베트남 주둔 프랑스군과 경기를 가져 5-0으로 이겼다.

북베트남(월맹)은 프랑스와 일본, 미국을 상대로 독립과 통일 전쟁을 치르느라 스포츠 발전에 신경을 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남베트남은 사정이 좀 나았다.

요즘은 국내 매체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동남아시아경기대회(Southeast Asian Games)란 게 있다. 지역 국제 종합 경기 대회인데 1959년 방콕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래 남베트남은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통일 이전, 북베트남은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통일 베트남(이하 베트남)은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분산해 주최한 2003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은 2005년과 2007년 대회 3위, 2009년 대회 2위, 2011년 대회부터 직전 대회인 2017년 대회까지 4회 연속 3위를 기록하며 기존 강호였던 인도네시아 태국과 함께 대회 3강을 형성하고 있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렝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베트남은 16위(금 4 은 16 동 18)를 기록했는데 2000년대 들어 2002년 부산 대회 15위(금 4 은 7 동 7)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통일 이전에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는 남베트남만 출전했다.

통일 이전 남베트남이 탁구 종목에서 거둔 성적이 눈길을 끈다.

한국은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탁구 종목에 출전해 여자 단체전에서 2위, 여자 단식에서 조경자가 동메달, 여자 복식에서 위쌍숙-최경자 조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남자 단체전에서는 7개 출전국 가운데 필리핀과 공동 꼴찌를 했다.

그런데 남자 단체전에서 남베트남이 일본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한 게 눈길을 끈다. 남베트남은 195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일본과 헝가리에 이어 중국과 공동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남베트남 남자 탁구는 그 무렵 세계 정상권 수준이었다.

남베트남은 작은 규모지만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1972년 뮌헨 대회까지 올림픽에 연속 출전했다. 북베트남은 이 기간 올림픽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않았다. 하노이 하이퐁 등지에 대한 북폭(北爆)이 일상인 나라 형편이었으니 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쪽 대회였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베트남은 육상과 수영에 출전했다. 마라톤의 꾸엔 능우옌은 2시간44분37초로 53명의 완주자 가운데 50위에 그쳤다. 여자 멀리뛰기에선 능우옌 티 호앙 나가 5m35의 저조한 기록으로 19명의 출전자 가운데 꼴찌에 머물렀다. 금메달을 목에 건 러시아의 타티아나 콜파코바와 기록 차는 1m71cm였다.

베트남은 역시 반쪽 대회였던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육상, 수영, 복싱 등에 10명의 선수를 내보냈는데 마라톤에 출전한 트예 능우옌이 3시간10분57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98명의 완주자 가운데 97위였다.

이후에도 올림픽에 계속 출전한 베트남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태권도 여자 57kg급 트란 히우 능안이 자국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비둘기·맹호·백마·청룡·십자성 등 한국군 부대는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때 남베트남 지역에 주둔해 태권도를 전파했다.

베트남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호앙 안 투안이 은메달을 들어 올려 자국 사상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트남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사격 남자 권총 50m에서 호앙 수안 빈이 4위,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트란 르 꾸오 트안이 4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했다. 빈은 본선에서 563점으로 한국의 진종오(562점)보다 한 단계 높은 4위로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트안은 용상에선 2위였으나 인상에서 6위로 처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여러 종목에서 경기력 향상이 눈에 띄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베트남은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호앙 수안 빈이 자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쁨을 누렸다. 호앙 수안 빈은 남자 50m 권총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금메달이 포함된 종합 순위 공동 48위의 뜻깊은 성적표를 받았다.

베트남 아래로 메달을 딴 나라만 대만(금 1)을 비롯해 35개 나라가 있었고 이 가운데에는 지역 라이벌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들어 있었다. 동남아시아경기대회 경쟁국인 태국(금 2 은 2 동 2)과 인도네시아(금 1 은 2)에 근접하는 성적을 올렸다.

여자 배구는 축구와 함께 발전하는 베트남 스포츠를 상징하는 종목이다.

2012년 9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배구연맹 컵 여자 대회 8강전에서 런던 올림픽 4강국인 한국은 베트남에 세트스코어 2-3으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월드 그랑프리 출전권 획득이 이 패배로 물거품이 됐다.

베트남은 조별 리그에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세트스코어 3-2로 잡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우승국인 태국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결승에 오르진 못했지만 급성장하는 베트남 스포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대회 결과였다.

베트남은 이후 2015년과 2017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연속 5위에 올랐고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2019년 제18회 여름철 아시아경기대회를 하노이에서 열기로 했지만 국내 사정으로 대회를 반납했다. 인도네시아가 이어받아 올해 이 대회를 치렀다. 베트남은 경제 발전에 집중한다는, 서울에 유치했던 1970년 제6회 여름철 아시아경기대회를 반납했던 한국과 비슷한 이유로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한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 속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은 머지않아 아시아경기대회를 열 것이고 그때 한국은 대규모 선수단을 보내 두 나라 우호를 더욱 깊게 하는 친선의 무대를 펼칠 것이다. 발전하는 베트남 스포츠에 박항서 감독은 AFF 컵 우승으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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