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는 4가지 선택을 통해 격투 스포츠 새 장을 열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프로 복서를 꿈꿨던 20대 청년은 꿈을 접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복싱 재능으론 큰 무대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전도유망한 선배·동기를 보면서 자기 위치를 확인했다. 한계를 확인하는 게 아플 법도 한데 대신 빠르고 정확했다. 그래서 과감히 운전대를 틀었다. 다른 길로 발을 디뎠다.

선택은 훌륭했다. 에어로빅 강사 일로 시작한 두 번째 삶이 소위 '대박'을 쳤다. 승승장구했다. 스물셋 나이에 미국 네바다주에 체육관을 3곳이나 운영했다.

체육관에서 삶을 마감하긴 싫었다. 10년 가까이 경영에 매진하던 화이트에게 전환점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카지노 재벌 로렌조 퍼티타를 설득해 파산 직전이던 UFC를 사들였다. 그의 나이 서른둘, 2001년 일이었다.

당시 퍼티타가 UFC를 사들인 가격은 200만 달러. 퍼티타를 설득한 건 화이트 두 번째 선택이었다.

순조롭진 않았다. 체육관과 달리 격투기 단체 경영은 고난 연속이었다. 

물이 들어올 만하면 폭력성 시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UFC는 지금과 달랐다. 규정과 체급 구분 없이 '막싸움' 이미지가 강했다.

무규칙 룰로 진행되는 거친 주먹다툼은 지역 언론 비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특히 UFC 초기엔 브라질 주짓떼로들이 승리를 독식했다. 그레이시 가문이 한창 맹위를 떨칠 때였다.

▲ 데이나 화이트(오른쪽) UFC 대표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양 있는 미국인은 복싱, 가난한 히스패닉은 MMA 같은 인간 닭싸움(human cockfighting)' 인식이 은연 중에 퍼졌다.

결국 1990년대 후반 방송 금지 처분을 당했다. 미국 여러 주 정부로부터 경기 개최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UFC는 지난해 4월까지 미국 프로 스포츠 메카로 불리는 뉴욕에서 경기를 열지 못했다. 그만큼 종합격투기를 향한 인식이 저열하고 열악했다.

페이퍼뷰(PPV) 수익이 주 수입원이던 UFC에 방송 금지는 치명적이었다. 적자가 계속됐다. 관망하던 퍼티타도 파이터 방출과 매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실제 5~600만 달러 선에서 매도 제안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화이트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UFC를 다시 TV 화면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판을 싹 갈아엎었다. 세 번째 선택이었다.

기존 룰을 모두 바꿨다. 음침한 지하 격투 분위기를 풍기던 UFC가 스스로 수술대에 올랐다. USA 투데이는 "영화 파이트클럽이 록키로 옷을 갈아입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MMA 스포츠화였다. 길거리 싸움에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스포츠 총체(Mixed Martial Arts)로 진화하기 위해 첫발을 뗐다.

룰을 전면 재정비한 UFC는 2005년 1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팬들 앞에 새 단장한 얼굴을 비쳤다. 

종합격투기 유망주와 무명 파이터를 훈련시켜 데뷔를 도왔다. ‘디 얼티밋 파이터(The Ultimate Fighter)'였다.

화이트와 친분이 깊은 척 리델과 랜디 커투어가 각 팀 수장으로 나서 선수를 지도했다. 

방영 초기 표절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옥타곤 밖 선수들 영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 로렌조 퍼티타(맨 왼쪽)와 데이나 화이트(맨 오른쪽)는 고교 동창을 넘어 호혜적인 사업 파트너로 졸업 뒤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바깥 흐름도 좋았다. 이즈음 부상한 리얼리티 방송 트렌드에도 부합했다. 안과 밖에서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었다. 조금씩 인지도가 쌓였다.

화룡점정은 지금도 회자되는 '그리핀-보너 결승전'으로 찍었다. TUF 시즌1 대미를 장식한 결승전에서 포레스트 그리핀과 스테판 보너가 치열하게 주먹을 섞었다. 

이 경기는 당시 미국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반응이 뜨거웠다. 

이게 전기를 마련했다. 케이블 방송사 스파이크 TV 간부들 눈에 TUF가 들어왔다. 

그들은 MMA가 돈이 된다는 내부 판단을 내렸다. 이는 UFC가 다시 메이저 방송국과 손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UFC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후 순항을 거듭했다. 프라이드가 재정난으로 무너졌고 UFC도 스트라이크포스, 벨라토르 등 경쟁 단체를 차례로 집어삼켰다.

2010년대 들어 독주 체제를 굳혔다. 명실상부 세계 MMA 1등 단체가 됐다. 경쟁자가 없었다. 

2016년 7월 11일 네 번째 수(手)를 놓았다. 화이트는 WME-IMG를 필두로 실버레이크, KKR, MSD 캐피달 등 4개 그룹 컨소시엄에 UFC를 넘겼다. 그간 꾸준히 매각설을 부인했지만 40억 달러(약 4조 5천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손을 들었다.

17년 전 200만 달러에 사들였던 UFC를 2,000배가 넘는 액수에 되팔았다. UFC 매각은 지금도 스포츠 업계에서 '대박 거래' 사례로 언급된다. 

화이트는 네 번의 선택을 통해 척박한 MMA 시장을 황금알로 변모시켰다. 악덕 지주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복싱과 레슬링 사이를 비집고 새로운 격투 스포츠 장을 열었다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 받는다. 

선택이 쌓여 족적을 남겼다. 화이트는 미지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대성공을 거둔 사실 자체만으로 주목 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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