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KB금융 전국남녀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스케이팅 국가 대표 1차 선발전 남자 싱글 1그룹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는 차준환 ⓒ 연합뉴스 제공

[스포티비뉴스=목동, 조영준 기자] 2018~2019 시즌 피겨스케이팅 첫 국내 대회가 2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김연아(28)가 빙판을 떠난 뒤 지난 시즌부터 국내 대회는 한층 볼거리가 풍부해졌습니다. 남자 싱글에서는 차준환(17, 휘문고)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했죠. 여자 싱글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연아 키즈' 3인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피겨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이는 단연 차준환입니다. 2016년 1월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쑥쑥 자란 키만큼 기량은 급성장했고 홀로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15위를 차지한 차준환에게 올 시즌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올림픽이 열린 2017~2018 시즌은 차준환에게 '영광'과 악몽'이 동시에 존재했죠. 부츠와 부상 문제로 일 년 내내 고생한 그는 그야말로 올림픽을 힘겹게 치렀습니다.

이번 시즌 차준환은 '성장'과 '퇴보'의 갈림길에서 용케 최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상을 털어낸 점이 차준환의 재도약에 엔진을 달았습니다. 부츠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이를 이겨내는 '강인함'도 터득했죠.

▲ 2018 KB금융 전국남녀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스케이팅 국가 대표 1차 선발전 남자 싱글 1그룹 쇼트프로그램 경기를 펼치고 있는 차준환 ⓒ 연합뉴스 제공

차준환은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스케이트 캐나다)와 3차 대회(스케이트 핀란드)에 출전했습니다. 두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따며 상위 6명이 겨루는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3차 대회에서 차준환의 스케이트 부츠는 무너졌습니다. 보통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부츠가 무너지면 테이핑으로 칭칭 감고 발에 꼭 맞게 만듭니다. 차준환은 이 상태로 파이널에 출전해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습니다.

스케이트 부츠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발에 제대로 맞지 않거나 무너진 부츠를 신으면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김연아도 한때 부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은퇴까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올 시즌 국제 대회는 물론 이번 대회 기권을 선언한 최다빈(18, 고려대)도 아직 새 부츠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차준환은 파이널에서 신던 부츠를 동계체전 서울시 예선과 이번 랭킹전까지 사용했습니다. 연습은 물론 경기에 나설 때 차준환은 무너진 부츠로 매우 조마조마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를 마친 뒤 그는 "다행이다. 이제는 스케이트를 바꿀 때가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이번 랭킹전에서 차준환은 총점 257.01점으로 남자 싱글 1그룹에서 우승했습니다. 2위 이준형(22, 단국대, 201.27점)과 점수 차는 무려 55.74점이었습니다. 김연아에 이어 차준환은 국내 대회에서 가장 압도적인 선수가 됐습니다.

▲ 2018 KB금융 전국남녀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스케이팅 국가 대표 1차 선발전 남자 싱글 1그룹에서 우승한 차준환(가운데)과 2위 이준형(왼쪽) 3위 차영현 ⓒ 연합뉴스 제공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인 이 땅에서 '피겨 퀸'에 이어 '피겨 프린스'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번 대회 남자 싱글 1그룹 출전자는 총 8명(1명 기권)이었습니다. 태극 마크가 걸린 중요한 대회에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 출전했지요. 이런 현실은 여전히 얇은 선수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준환의 등장은 김연아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의 가파른 성장은 해외로 눈을 돌려도 독보적입니다. 올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자 가운데 차준환은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였습니다. 그와 비슷한 또래 선수 가운데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이는 보기 드뭅니다.

그러나 차준환이 진정한 강자로 성장하는 데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우선 국내 경쟁자의 부재를 꼽을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선수는 늘 부족했지만 놀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몇몇 등장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던 국내 현실에 주저앉았습니다. 어느 종목이건 자신의 성장에 자극을 줄 만한 존재는 필요합니다.

국내 대회에서 압도적인 존재가 된 차준환 "압도적으로 우승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큰 실수를 했다. 결코 쉽게 우승한 것이 아니다"며 겸손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자세가 차준환의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훈련 도중 힘들거나 부상으로 몸이 아플 때 자주 눈물을 보이는 17살 소년입니다. 차준환은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할 때마다 소모되는 고통을 지금까지 훌륭하게 이겨냈습니다.

또한 정상급 선수가 되려면 선수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차준환은 일찌감치 브라이언 오서(캐나다)라는 지도자를 만나 체계적인 코스를 걷고 있습니다. 과거 김연아도 그랬듯 차준환도 먼 타지에서 훈련하는 어려움과 씨름하고 있지요.

차준환의 훈련지인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 클럽은 과거 김연아가 구슬땀을 흘렸던 곳입니다. 이곳의 훈련 시스템의 특징은 '분업화'입니다. 이곳의 코치들은 점프, 스핀, 스케이팅 등 피겨스케이팅을 구성하는 각 요소를 전문적으로 지도합니다. 선수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지도를 받은 뒤 오서의 점검을 받습니다. 오서는 디테일한 지도자보다 '관리자'에 가깝습니다.

또한 선수들은 자신의 훈련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량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친분을 쌓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죠. 훈련과 단순한 일상생활만 반복되는 이곳은 '지독한 고독'도 이겨내야 합니다.

차준환은 간만에 만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스케이트에 '올인'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이런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일찍 빙판을 떠났던 선수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 2018 KB금융 전국남녀 회장배 랭킹대회 겸 2019 피겨스케이팅 국가 대표 1차 선발전 남자 싱글 1그룹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차준환 ⓒ 연합뉴스 제공

김연아는 이 모든 것을 이겨냈기에 자신이 지닌 재능을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었죠. 이제 차준환 차례입니다. 이번 랭킹전에서 차준환은 당장 교체해야 할 스케이트를 신고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와 살코를 모두 뛰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내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ISU 4대륙선수권대회는 차준환에게 또 하나의 기회입니다. 파이널처럼 현재 부상 중인 하뉴 유즈루(일본)가 이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은 지금으로는 희박합니다. 하뉴는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무리하지 않고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선수들은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강자들이 출전하지만 차준환이 메달에 도전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번 대회를 마친 차준환은 내년 1월 11일에 열리는 전국종합선수권대회를 국내에서 준비합니다. 그는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컨디션을 잘 회복하고 부상 관리를 잘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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