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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톡 영상]③은퇴 이진영, '야잘잘'과 '국민우익수'의 어원을 찾아서

네이버구독_201006 이재국 기자 keystone@spotvnews.co.kr 2018년 12월 29일 토요일




▲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4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의 이진영(오른쪽)과 봉중근이 펫코파크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국민 우익수' 이진영(38). 1999년 쌍방울에 입단한 뒤 SK와 LG를 거쳐 2018년 KT에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무려 20년을 버텨온 그는 통산 3할대 타율(0.305)과 2000경기, 2000안타의 위업을 달성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숱한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야구 르네상스 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국민 우익수’는 ‘야잘잘’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고 정든 무대를 퇴장했다.

한 해를 마무리를 하는 시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손님을 만났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진영.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국민 우익수’이기에. <②편에 이어>

#4. 국민우익수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로 통한다. 한국야구가 2000년대 중후반 국제대회에서 신화를 만들어갈 때 국가대표 우익수 자리는 늘 그의 몫이었다. 그가 ‘국민 우익수’라는 훈장 같은 별명을 얻은 것은 역시 한·일전이었다.

2006년 4강 신화를 만든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3월 3일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라운드 예선 최종전. 한국은 0-2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여기서 일본의 니시오카 쓰요시의 타구는 우익선상 안쪽으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누가 봐도 안타가 되는 타구였다. 여기서 이진영은 전력질주 후 다이빙캐치로 타구를 걷어내 위기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2사 후였기 때문에 타구가 오른쪽 외야 펜스까지 굴러간다면 한꺼번에 3점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0-5가 됐다면 사실상 승부는 끝나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이진영의 호수비 속에 1-2로 따라붙은 뒤 ‘약속의 8회’에 이승엽의 극적인 역전 결승 2점홈런으로 3-2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1위로 미국 무대로 날아갔다.

그뿐만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기막힌 호송구로 일본을 격파하는 데 힘을 보탰다. 3월 16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2라운드 한·일전. 2회 2사 2루에서 터진 사토자키 도모야의 우전안타를 대시해 잡아낸 뒤 특유의 강견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포알 같은 송구로 홈으로 달려들던 2루 주자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잡아냈다. 이와무라는 오른 다리 근육통으로 교체됐고, 대신 들어온 3루수 이마에가 8회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면서 한국은 2-1로 승리했다.

▲ 이진영(오른쪽)이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아라운드 대만전 1회말 만루홈런을 날린 뒤 류중일 코치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진영은 ‘20년간의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달라는 얘기에 주저 없이 “WBC 대회에서 다이빙캐치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경기는 나한테도 강렬했던 경기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얻었던 별명이 ‘국민 우익수’였다. 이진영은 “나한테는 과분한 별명이었고 당시에는 실감이 안 났다”면서 “미국에 있을 때는 WBC라는 대회가 얼마나 국민들에게는 큰 힘이 됐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 역시도 WBC가 큰 힘이 됐다. 개인적으로 뿌듯한 생각이 든다”며 추억에 젖었다.

#5. 야잘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이진영은 은퇴를 하면서 ‘야잘잘’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야구는 잘 하는 선수가 잘해”라는 말이 희대의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이진영을 얘기하자면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과 함께 ‘야잘잘’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른다.

이진영은 ‘야잘잘’이 화두에 오르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어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SK 룸메이트 시절 후배인 박재상 선수(현 SK 코치)에게 했던 얘기였다. ‘형,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해요?’라며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내가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해’라고 했다. 재상이의 표정은 ‘이 형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였다”며 웃었다. 당시 이진영은 이미 특급스타였지만, 박재상은 막 1군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선수였다.

이진영은 “사실 ‘야잘잘’이라는 단어 하나에 야구 철학이 다 함축돼 있었던 것 같다. 프로야구 선수 정도 되면 기량은 거의 똑같다. 그 기량을 얼마나 업그레이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아서 얘기했던 거였다. ‘야구는 잘 생긴 사람이 잘해’, 그건 아니지 않나. 잘 생긴 사람이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야구는 잘 하는 사람들이 잘 하게 돼 있다”고 재차 설명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잘잘’은 이후 ‘×잘잘’이라는 많은 파생어를 낳았다. 요즘엔 ‘야구를 잘 하는 사람이 잘 생겨 보인다’는 뜻으로 ‘야잘잘’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진영은 “야구를 잘 하면 잘 생겨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더라”며 동의를 하지 않았다.

이진영은 또한 현역 시절 상대투수의 버릇을 파악 잘 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였다. 이에 대해 그는 “그건 내가 자부할 수 있다. 예전에 전력분석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야구는 공보고 공치기, 공 잘 던지고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전력분석을 통해 투구습관을 보고 공을 칠 수 있는 게 야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할타자가 된 비결 중 하나다.

그의 눈썰미는 스스로 혹은 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상대 투수의 버릇을 신기할 정도로 잘 잡아내면서 한국의 승리에 숨은 힘으로 작용했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부진하던 이승엽이 준결승 일본전에서 2-2 동점이던 8회에 일본 최고 마무리투수였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결승 2점홈런을 날린 뒤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당시 이진영의 조언이 있었다.

이진영은 “비하인드 스토리인데”라며 운을 떼더니 “베이징올림픽 때도 승엽이 형이 당시 부진했는데 그때 전력분석을 하는데 분명히 상대투수의 습관이 나오더라. 이와세 히토키의 글러브가 작거나 오므려져 있으면 직구, 글러브가 펴져 있으면 슬라이더였다. 승엽이 형이 그걸 보고 홈런을 쳤다”고 뒷얘기를 털어놨다. 이에 앞서 이진영은 이날 경기에서 1-2로 뒤진 7회 2사 1·2루에서 대타로 나서 후지카와 규지의 주무기인 포크볼을 때려 동점 적시타를 만들었다. 이진영은 “나도 후지카와 선수를 상대로 대타로 나가 안타를 때렸는데, 그때도 (후지카와의 습관이) 내 눈에 보이더라. 정말 좋은 공이었는데 결정적으로 그 습관을 보고 안타를 쳤다.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 이진영 ⓒ 스포티비뉴스
#6. 2019년

그의 야구에 대한 지식이나 입담 등을 보면 향후 지도자나 해설위원을 해도 잘 할 듯하지만, 구단이나 국가대표 전력분석 쪽으로 나서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이진영은 ‘전력분석원에 뜻은 없느냐’는 질문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지만, 서로 공감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은퇴로 아직 은퇴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뭐가 됐든 분명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야구선수 생활은 끝났지만 제2의 인생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꼭 선수 때 못지않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 이진영(오른쪽)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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