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리가 데뷔전을 치른 이강인 ⓒSPOTV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후반 41분 45초. 이강인이 사이드 라인에 서서 몸을 푸는 모습이 포착됐다. 11번 데니스 체리셰프의 등번호와 34번 이강인의 등번호가 교체 표시판에 점멸됐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감독이 박수를 치며 함께 걸어나왔다. 꾸준히 발렌시아의 라리가 18인 명단에 들며 1군 경기에 동행해온 이강인은 현지 시간 12일 밤, 한국 시간 13일 새벽 스페인 1부리그 라리가 그라운드를 처음 밟았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2018-19 스페인 라리가 19라운드 레알 바야돌리드와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최근 경기력 부진과 성적 부진이 겹치며 자리 보전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스페인 현지 여론은 번뜩이는 신예 이강인을 라리가 경기에도 투입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위기 상황에는 책임이 따르는 데 17세 선수를 선발로 세우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답했다.

◆ 이강인, 한국인 5호 라리가 데뷔의 '디테일'

"이강인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선수지만, 구세주는 아니"라며 이강인이 과도한 부담과 책임 속에 라리가 데뷔전을 치르지 않도록 보살폈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코파 델레이 32강전 두 경기, 16강 1차전 경기에는 이강인을 선발로 썼다. 32강전은 3부리그 팀 에브로, 16강전은 2부리그 팀 스포르팅 히혼과 경기였다. 이강인은 에브로전에 날카로웠고, 히혼전도 준수했다. 하지만 현재 소속된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치르는 세군다B 디비시온 경기에서처럼 압도적이지 않았다.

이강인은 마침내 바야돌리드를 상대로 진정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유럽 리그 랭킹 1위에 해당하는 스페인 라리가. 그 안에서 1부리그 팀과 첫 경기를 했다.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실제 누빈 시간은 추가 시간 3분을 포함해 꼬박 7분 남짓. 1-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시점에 투입됐다는 점은, 단순히 경험을 쌓기 위한 기회는 아니었다. 발렌시아는 직전 라리가 겨기에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 1-2로 졌고, 히혼과 코파 델레이 경기도 1-2로 패해 승리가 절실했다. 발렌시아 벤치에는 이강인 외에 페란 토레스와 토니 라토도 투입될 수 있는 자원이었다.

페란 토레스는 이강인보다 한 살 많은 바렌시아의 자국 유망주다. 스페인 청소년 대표 선수로 이미 2017-18시즌에 발렌시아 1군에 자리를 잡았다. 이강인과 포지션이 겹치는 측면 공격수. 엄밀히 따지면 이강인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 처진 공격수 자리를 선호하지만 발렌시아는 이 역할이 없는 플랫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운영한다.

이강인은 체리셰프가 빠진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 그대로 투입됐다. 다니 파레호의 후반 26분 선제 득점 이후 후반 37분 루벤 알카라스에 동점골을 내준 발렌시아는 결승골이 필요했다. 호세 가야가 왼쪽 풀백으로 뛰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페란이 투입되거나, 라토를 투입하고 가야가 전진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이강인에게 기회를 줬다.

▲ 후반 42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 ⓒSPOTV


◆ 7분동안 크로스 다섯개, 이강인은 즉시전력이었다

발렌시아의 세 번째 교체 선수로 들어간 이강인은 제한된 시간 안에 필요로 했던 득점을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날이 라리가 데뷔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치명적인 플레이를 했다. 7분의 시간동안 5개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두 차례 패스 연결은 100% 적중했다. 한 차례 태클로 바야돌리드의 역습도 저지했다. 풍부한 7분을 보냈다.

스페인에 진출한 여러 한국인 유망주가 '한국의 메시'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발렌시아 메스타야에서 등번호 10번들 달고 뛰는 이강인이 가장 가깝다. 왼발을 쓰고, 2선 지역에서 자유롭게 라인을 넘나들며 공격을 전개하는 타입의 선수다. 드리블과 패스, 슈팅이 장기인 이강인은 골로 가는 길을 열고, 직접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다.

이강인은 정확히 후반 41분 54초에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1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왼쪽 측면에서 첫 볼터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왼발 크로스를 바야돌리드 문전으로 보냈는데 골문 우측 옆으로 빗나갔다. 

이강인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 빠르게 공격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후반 44분 10초에는 주장 파레호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었다. 굳이 왼발을 쓰려 타이밍을 늦추지 않고 오른발로 크로스했으나 수비가 커트했다. 코너킥을 얻었다.

후반 44분 40초에도 코너킥 기회가 거듭되면서 오른쪽 영역으로 넘어왔다. 파레호의 패스를 받아 측면 후방에서 왼발 크로스를 문전으로 투입했다. 크로스는 날카로웠으나 전면 수비에 나선 바야돌리드 수비가 차단했다.

추가시간으로 돌입한 후반 46분 4초에는 피레호 패스 받아 왼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크로스했지만 이번에도 수비수가 헤더로 잘랐다. 추가 시간도 막바지로 향한 후반 47분 30초에도 왼쪽 측면에서 왼발 크로스를 빠르게 연결했다. 결국 이강인의 다섯 차례 크로스 시도는 공격수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간동안 발렌시아 공격 전개에 가장 큰 존재감을 보였다는 점에서 칭찬받을만한 경기였다.

▲ 발렌시아가 꾸준히 관리한 이강인 ⓒ발렌시아


◆ 디딤돌 놓고 데뷔시킨 발렌시아, 이강인 겁없이 뛴 이유

이강인은 이미 2018년 여름 프리시즌 일정에 발렌시아 1군 소속으로 PSV에인트호번, 에버턴, 레스터시티 등과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메스타야에서 열린 바이엘04 레버쿠젠과 출정식 경기에도 출전했고, 헤더로 비공식 경기지만 1군 데뷔골도 기록했다. 이후 이강인은 2군과 1군을 오가며 2018-19시즌을 보내고 있다. 코파 델레이를 통해 1군 공식 데뷔전을 치렀고, 주전 윙어 곤살루 게디스가 부상 당한 뒤로는 꾸준히 라리가 1군 경기에 동행했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1군으로 올린 것이 효과를 봤다. 이강인에겐 라리가 경기 투입 명령이 갑작스럽지 않았다. 1군 선수들과 계속 훈련했고, 친선경기부터 3부리그, 2부리그팀을 상대로 1군 경기를 치른 뒤 나선 1부리그 경기에서 이강인은 겁없이 뛸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유망주이기에 그동안 보인 잠재력이 현재의 실력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이 섣부르다는 얘기가 많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7분간 이강인이 보여준 플레이는 이제 이강인은 이제 발렌시아의 '전력'이자 현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라리가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프로 선수다. 이제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한국 축구의 현재가 됐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