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1그룹에서 우승한 유영(가운데) 2위 임은수(왼쪽) 3위 이해인 ⓒ 연합뉴스 제공

[스포티비뉴스=목동, 조영준 기자] 국내 최고 권위의 피겨스케이팅 대회인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종합선수권대회)가 13일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대회는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의 판도가 매우 달랐습니다. 남자 싱글은 차준환(18, 휘문고)의 압도적인 우세가 점쳐졌죠. 반면 여자 싱글은 한 치의 앞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는 단연 차준환입니다. 그는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따며 김연아(29)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총점 245.52점을 받은 차준환은 2위 이준형(23, 단국대, 194.33점)을 무려 51.19점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여자 싱글은 유영(15, 과천중) 임은수(16, 한강중) 김예림(16, 도장중)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성장했죠. 세 명의 선수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2016년 종합선수권대회부터입니다. 당시 유영은 만 11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임은수는 3위, 김예림을 4위에 올랐습니다.

임은수는 이듬해 열린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합니다. 당시 유영은 감기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5위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2년 만에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유영은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세 명의 실력 차는 거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일 컨디션과 부상, 부츠 문제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하죠. 다만 모두 완벽한 경기를 했을 때는 기술 기초 점수가 가장 높은 유영이 조금 유리합니다. 특히 지난 랭킹전에서 도전했던 트리플 악셀을 완성할 경우 유영은 경쟁자들보다 몇 걸음 앞서게 됩니다.

유영은 이번 대회에서 총점 198.63점으로 우승했습니다. 준우승한 임은수는 194.2점을 받았고 '슈퍼 루키' 이해인(14, 한강중) 187.73점을 받으며 3위를 차지했습니다. '맏언니' 박소연(22, 단국대)은 이번 대회에서 선전하며 176.74점으로 4위에 올랐죠.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예림은 171.62점으로 5위에 그쳤습니다.

▲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1그룹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뒤 관중들의 갈채에 답례하는 ⓒ 연합뉴스 제공

전략의 성공 유영, 최후에 웃다

유영은 이번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2월 랭킹전에서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한국 여자 싱글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뛴 선수가 될 수 있었지만 후일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이번 코리아 챔피언십은 국가 대표 2차 선발전 및 올해 열리는 시니어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이 걸려 있습니다. 중요한 대회인 만큼 유영은 '모험'보다 '안정'을 선택했죠. 또한 프리스케이팅을 지난 시즌 선보인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으로 바꿨습니다.

유영은 "지난 시즌 했었던 이 프로그램이 워낙 마음에 들었고 결과도 좋았다. 시즌 도중 코치님과 상의해 다시 이 프로그램으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트리플 악셀을 제외한 안정적인 구성과 자신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을 다시 사용한 점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유영은 트리플 러츠 + 더블 토루프 + 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가운데 첫 점프와 트리플 살코가 회전 수 부족으로 언더 로테이티드(Under rotated : 90도 이상 180도 이하로 점프 회전수 부족) 판정이 지적됐습니다.

이 두 점프 외에 다른 기술은 모두 인정 받았습니다. 특히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는 1.89점의 수행점수(GOE)도 챙겼습니다.

▲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1그룹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는 유영 ⓒ 연합뉴스 제공

유영은 국내 챔피언을 가리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세 번 우승했습니다. 아직 만 14살인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죠. 그러나 임은수, 김예림과 비교해 국제 대회 성적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유영은 지난해 8월 열린 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나 3차 대회에서는 4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죠. 무엇보다 깨끗한 경기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사실 유영은 올 시즌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와 일본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높은 벽도 큰 부담이었습니다.

국내 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은 유영은 오는 3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합니다.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뛸 지의 여부죠. 유영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느라 (트리플 악셀을) 많이 연습하지 못했다. 앞으로 연습해서 성공률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 여자 싱글 1그룹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는 임은수 ⓒ 연합뉴스 제공

큰 부담감에 눈물 쏟은 임은수, 시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거머쥐다.

임은수는 김예림, 유영보다 한 걸음 앞서서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열린 ISU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메달이 값진 이유는 김연아 이후 9년 만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임은수는 지난해 12월 랭킹전에서 우승하며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간판으로 나서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앞둔 그의 부담감은 매우 컸습니다. 단 한 장뿐인 시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놓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시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나이 자격을 갖춘 임은수는 동갑내기 김예림과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뒤 임은수는 빙판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눈물은 인터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임은수는 "김연아에게 영향을 받고 동경하는 선수로서 부담감은 없었나"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임은수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쏟아지는 눈물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이 질문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유영과 임은수 그리고 김예림은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 및 자신의 경기에 대한 만족감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임은수는 프로그램 클린에 실패할 때 종종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완벽함을 절실하게 추구했죠. 임은수의 장점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자신에 대해 매우 객관적이고 냉정하다는 점입니다.

▲ 임은수 ⓒ 연합뉴스 제공

임은수는 "대회를 준비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다. 굉장히 부담됐던 대회를 마무리해서 홀가분하고 (김)연아 언니처럼 이런 것도 잘 이겨내서 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싶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려면 부상에서 오는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 스트레스도 이겨내야 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선수가 상당수 10대인 점을 생각하면 잔혹한 현실이죠. 올 시즌 힘든 일이 많았다고 털어놓은 임은수는 오히려 이 점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꼭 출전하고 싶은 대회라 부담도 컸어요. 그런데 제가 이 대회를 경험할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올 시즌에는 다양한 일들이 많았죠. 시니어 데뷔 시즌에 이런 일들을 겪었기에 앞으로 당황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경험이 됐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에 상관없이 제 경기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국내 대회 마친 '리틀 연아' 시니어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

김예림은 이번 대회에서 큰 실수는 없었지만 상당수 점프에서 회전 부족이 나타났습니다. 김예림은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두 번이나 은메달을 땄고 파이널까지 진출했죠. 순위보다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컨디션 난조 혹은 부츠 문제로 흔들릴 수 있었겠지만 김예림은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선수입니다. 비록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부진했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한층 성장한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이는 이해인입니다. 유영보다도 한 살 어린 이해인은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코리아 챔피언십에서는 유영 못지않은 기술 구성을 들고나와 당당히 3위를 차지했습니다.

유영 밑으로 또 한 명의 기대주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맏언니' 박소연의 부활도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 이해인 ⓒ 연합뉴스 제공

김연아가 은퇴한 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다시 변방으로 밀려가는 듯 보였습니다. 좋은 롤 모델이 될 선배가 있다는 점은 많은 유망주들에게 한줄기 빛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대선배의 뒤를 이어 어떤 성과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점은 무거운 짐도 될 수 있죠. 

현재 여자 싱글의 벽은 남자 싱글 못지않게 높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 러시아 선수들은 여자 싱글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배출하는 일본도 빼놓을 수 없죠. 일본은 남자 싱글의 하뉴 유즈루(25)에 만족하지 않고 여자 싱글 공략에 나섰습니다. 올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한 기하라 리카(16)의 등장으로 일본 피겨스케이팅계는 한층 들뜬 분위기죠.

이런 상황에서 국내 유망주들은 국제 무대에서 힘겹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해서 국제 대회의 벽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길이 열립니다. 임은수는 오는 3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최연소 선수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영과 이해인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클린 경기를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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