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스스로의 플레이에 화가 난 정현은 경기 도중 소리를 질렀다. 1, 2세트를 연달아 타이브레이크 끝에 내주며 패색이 짙어졌다.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현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3세트 1게임에서 처음으로 상대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한 정현은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행운도 따랐다. 시종일관 강한 서브로 정현을 괴롭혔던 브래들리 클란(76위·미국)이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클란은 메디컬 타임아웃까지 요청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를 받았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클란은 서브의 날카로움이 사라졌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경기는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정현은 정상 컨디션이 아닌 클란을 마음껏 공략했다. 3세트를 6-3, 4세트를 6-2로 따내며 마지막 세트까지 끌고 갔다.

클란은 5세트에서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메디컬 타임아웃으로 정현의 흐름도 끊었다. 게임스코어 3-2에서 정현의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까지 저지하며 팽팽하게 경기를 전개했다. 

승패는 집중력에서 갈렸다. 세트 스코어 4-4에서 정현은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켰다. 이어 상대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시간 37분 혈투의 마침표를 찍었다. 상대의 부상도 있었지만 냉철하게 경기를 풀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희열. 

“0-2가 됐을 때는 모든 분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계속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 역전승을 거둔 건 처음이다. 코트에 들어섰을 때 한국 팬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마치 축구장의 응원처럼 마지막까지 응원을 보내주셔서 나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정현은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노박 조코비치, 알렉산더 즈베레프 등 세계적 강호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호주오픈 4강은 한국 선수의 역대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 정현은 '황제' 로저 페더러와 준결승전에서 발바닥 물집 부상으로 기권했지만 한국의 테니스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부담을 안고 1년 만에 다시 찾은 호주오픈. 0-2에서 생애 처음으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1회전 탈락 위기를 넘긴 정현은 더욱 단단해졌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코트에 나서는 게 올해 목표다,” 

이미 세계적 선수들을 연파한 경험이 있는 정현은 자신과 싸움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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