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오른쪽)은 새해 첫 2경기에서 악몽 같은 일을 겪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한국 테니스 대들보는 새해 첫 두 대회에서 악몽을 꿨다.

두 경기 연속 1세트 게임스코어 5-1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탈락했다. 테니스에서 6게임을 연달아 뺏기는 건 좀체 보기 어려운 일.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다. 랭킹 관리나 서브 보완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시련을 빠르게 털어낼 필요가 커보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심리 전문가 멕 제이 버지니아대학교 교수는 최근 펴낸 책 '슈퍼노멀(Super Nomal)'에서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사람들을 언급했다.

이들을 슈퍼노멀로 지칭했다. 평범함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뜻인데, 슈퍼노멀은 시련을 완벽히 차단하거나 망각한 사람이 아닌 실패 탓에 예견되는 최악의 상황을 '자기 노력'으로 벗어나는데 성공한 인물이라 정의했다.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실마리를 물색하는 과정을 습관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련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애거시(49, 미국)를 예로 들었다. 

단식 타이틀만 60회, 메이저 우승 8회에 빛나는 전설도 학대에 가까운 조기 교육 트라우마와 늘 싸웠고 마약 복용과 랭킹 추락 등을 겪은 끝에 커리어를 훌륭히 마쳤다. 2006년 US 오픈 출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상대보다 나와 싸웠던 21년"이라 언급한 인터뷰는 애거시 여정을 읽을 수 있는 단서다.

정현은 무너지지 않았다. 맹훈련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갔다. 

지난 11일(이하 한국 시간) 호주 멜버른에 도착한 뒤 12일과 13일, 하루 두 차례씩 구슬땀을 흘렸다. 예정보다 한 차례 더 늘린 연습량.

13일 오후에는 필리프 콜슈라이버(34위, 독일)와 라켓을 맞대며 실전 감각을 조율했다. 위기를 극복한 슈퍼맨들 비밀은 결국 '땀'이다. 정현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지난 15일 작은 결실을 맺었다. 호주 멜버른 파크 8번 코트에서 열린 호주 오픈 남자단식 1회전에서 세계 78위 브래들리 클란(미국)을 세트 스코어 3-2(6-7<5-7> 6-7<5-7> 6-3 6-2 6-4)로 잡았다.

경기 시간만 3시간 37분에 이르는 혈투였다. 정현은 이날 1, 2세트를 잇따라 내준 뒤 이어지는 3~5세트를 모두 따냈다. 짜릿한 대역전극으로 연초 불운을 '액땜'으로 만들었다.

17일 주춧돌을 준비한다. 호주 오픈 4강 신화 재현을 위한 받침대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라켓을 쥔다. 세계 55위 피에르 위그 에르베르(프랑스)를 상대로 호주오픈 3회전(32강)에 도전한다.

둘 맞대결은 이번이 세 번째. 첫 만남이었던 2015년 호주오픈 예선 1회전에선 정현이 이겼고 같은 해 윔블던 1회전에서는 에르베르가 웃었다.

프로 데뷔 9년째인 에르베르는 오른손잡이로 두 손 백핸드에 능한 선수다. 아직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단식에서 우승은 없다. 준우승만 두 번 챙겼다.

서브와 네트 플레이가 강점이다. 서브를 넣은 뒤 곧바로 발리를 이어가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정현으로선 서비스 리턴을 에르베르 무릎 아래로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첫단추를 잘 꿰매야 수월하게 경기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타입이다.

뒤로 물러나면서 리턴하면 스트로크가 짧게 될 확률이 높다. 이러면 에르베르가 앞으로 걸음을 딛으면서 '자기 거리'를 찾게 된다.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내주게 된다.

치고 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는 게 32강으로 가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이 교수는 슈퍼노멀이 노멀과 가장 다른 점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가겠다는 용기에 있다고 주목했다. 그러면서 용기는 바깥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끄러운 기억과 사건을 계속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후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자기 능력을 믿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계속 부딪쳐 나아가는 것, 그게 슈퍼노멀 첫 번째 자질이다. 정현이 올해 첫 2경기 아픔을 딛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테니스 팬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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