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증자는 <논어> '태백' 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야 한다. 맡겨진 일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지난 연말 대학 교수들이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선정했다. 증자 말에서 유래된 가르침이다. 교수들은 문재인 정부 2년째를 돌아보며 맡겨진 일(개혁)을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첫해 사자성어로 꼽힌 '파사현정(破邪顯正·잘못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은 것을 구현한다)'과 견주면 기대감은 조금 낮아졌고 연민과 독려가 더해졌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소년체전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운동하는 선수, 공부하는 학생이 모두 참여하는 체육 축제 형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덧붙였다.

그간 소년체전은 엘리트 체육인 양성을 위한 어귀 노릇을 해 왔다. 소년체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전국체전에 나가 싹을 틔웠고 여기서도 인정받으면 체육 명문교에 입학하거나 국가 대표 선수촌에 입촌해 최상의 훈련 환경을 제공 받았다. 그리고 국제 대회 메달을 목에 걸어 정점에 섰다. 모든 운동인이 꿈꾸는 항로였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 앞에 뱃길은 변화를 요구 받았다. 국가 주도 체육 정책은 바람 앞 촛불 신세가 됐다. 시대 정신이 바람이 돼 불었다. 공정과 인권이 효율과 결과보다 반걸음 앞에 섰다. '체육계 미투'는 돌풍이었다. 삽시간에 들불로 번졌다.

장관 담화가 도화선일진 알 수 없다. 선언만으로 47년 역사를 자랑하는 소년체전이 사라지진 않는다. 소년체전을 없앤다고 한국 체육 패러다임이 단숨에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생활·엘리트 체육이 조화를 이룬다고 평가 받는 독일과 일본식은 정책이면서 문화다. 정치 사회가 함께 파종해야 뿌리내림을 기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성장촉진제를 잦게 투여한다고 될 성질이 아니다. 촉진제인 줄 알았던 게 탈색제가 될 수 있다.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역사가 변곡점으로 기억하게끔. 소년체전 폐지 논의 자체가 한국 체육 지형을 바꾸는 시발점이다. 낡은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봉긋 솟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량 우수 인원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는 대신 인격을 기르는 관점에서 학생이 중심이 된 체전을 만드는 것. 국제 대회 메달리스트보다 좋은 사람 양성으로 초점이 바뀔 때 진짜 변화가 꿈틀댄다.

소년체전이 축제가 된다고 한들 땀 흘리며 연습하고 경기를 치른 뒤 승패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기본 정신이 부정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허나 대회 출전 자체가 소중한 기억이 되고, 세대를 거듭해 "할아버지, 어머니도 나가서 뛰었지"란 정서를 공유하며 이를 통해 좋은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장(場)이 된다면 장관이 말한 축제가 된다. 

대한체육회에도 좋은 일이다. 인구가 줄어들어 저변 확대에 애를 먹는 상황에서 운동부와 일반 학생이 구분되지 않은 토양은 매력적이다. 치과의사가 본업인 축구 대표 팀 감독(아이슬란드 헤이미르 할그림손),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플뢰레 동메달리스트(미국 게릭 마인하트)가 우리 얘기가 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임중도원을 새로이 풀어 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려면 역량과 함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서두를 필요 없다. 달라진 시대에 부합하는 옳은 방향을 논의하고 꾸준히 걸음을 딛기만 하면 된다. 멈추지만 않아도 성공이다. 증자도 덧붙여 말했다. "어짊을 임무로 삼았으니 무겁지 아니하고, 죽은 뒤에도 할 일이니 진전이 더디어도 괜찮다(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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