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보라.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배우 김보라(24)는 'SKY캐슬'의 발견 중 하나다. 23.8%라는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의 새 역사를 쓴 JTBC 'SKY캐슬'에서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여고생 혜나를 연기했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모범생이었다가, 뒤늦게 출생의 비밀을 알아채고 악에 받쳐 세상과 싸우는 시한폭탄이었다가,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요물이기도 했던 아이. 하지만 돈 없는 것도, 집 없는 것도, 엄마 없는 것도 무서웠던 혜나는 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10대였다. 김보라는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나타난 첫 등장부터 시청자를 경악케 한 갑작스러운 죽음, 심지어 그 이후까지 드라마 내내 진한 존재감을 드리웠다. 

교복이 아주 잘 어울렸던 단발머리의 배우는 사실 연기 데뷔한지 15년이 된 20대다. 2004년 드라마 '웨딩'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김보라는 2010년 드라마 '정글피쉬2'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에서 교복을 입어서 '학생전문배우'라는 이야기까지 따라다녔다. 그리고 결국 20대 중반에 교복을 입고서 펼친 학생 연기로 배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고야 말았다. 

"시작은 10살때 아역 콘테스트였어요. 모든 게 순탄했어요. 사진을 내고 바로 합격했고, 자연스럽게 연기학원에 다녔고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어요. 고1 때 '천국의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기란 직업에 관심과 흥미가 없었어요. 부끄러움이 많고 낯도 가렸고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해보지 않았던 역할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현장의 재미를 느꼈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7~8년 만이었죠…."

교복을 참 많이 입었어요. 23살 때 처음 흔들렸어요. 언제까지 교복을 계속 입어야 하나. 연기 욕심이 컸다고도 생각해요. 다른 장르를 연기하고 싶어서 교복을 얼른 벗고 싶었거든요. 다시 생각해보니 조급하기도 했고, 고작 23살에 너무 섣부른 판단을 했구나 했어요. 최대한 어울리지 않을 때까지 해보자 했어요. 그러다보니 혜나가 왔어요."

▲ 배우 김보라.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혜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서 모든 요소를 가진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았다. 김보라에게도 특별한 캐릭터였다. "독한 캐릭터를 처음 맡았다"는 김보라는 "처음에는 혜나가 독해지고 영악해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1,2차 오디션을 혜나와 예서(김혜윤)의 대본으로 봤는데 저는 헤나에게 더 끌렸어요. 내가 되면 혜나가 될 것 같다고도 생각했고요. 당돌한 면 속에 슬픈 감정이 있는 아이라 제 이전 캐릭터와 흡사한 면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저 부족함 많지만 당찬, 캔디같은 아이로 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주저앉지 않고 독해지고. 이전과 다른 모습의 10대라 더더욱 끌렸어요. 마냥 칭얼대지 않고 자기 힘으로 달려나가잖아요. 약한 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더 독해지는 혜나가 속시원하기도 했고 즐기면서 연기했어요."

시청자들을 경악케 한 혜나의 죽음은 김보라에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단다. 촬영 시작 전 작가와의 1대1 미팅에서 이미 혜나의 죽음을 알았지만 그저 어떻게 죽을까, 누가 그랬을까 궁금해했을 뿐이었다. 대본으로  접한 혜나의 추락사는 충격적이었지만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가여운 소녀에게 이입해갔다. 

"나도 모르게 혜나에게 이입을 하다보니까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슬픈 감정이 컸어요. 피 분장을 하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을 때만 해도 '춥다, 찝찝하다'는 감정이 컸거든요.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저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행복하게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된거지. 나는 나대로 살았을 뿐인데 슬프다.' 혜나의 눈물이 대본에 표현돼 있지는 않았거든요. 촬영 시작 전에도, 컷을 한 뒤에도 계속 눈물이 났어요. 눈이 아주 퉁퉁 부었어요."

김보라의 디테일이 더해진 장면은 이밖에도 여럿이지만, 마성의 입시코디 김주영(김서형)과 단 한번뿐인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김보라는 '최종보스'를 만나러 온 혜나가 거만하길 바랐고, 혜나가 더 자유분방했을 거라 생각해 다리를 꼬는 설정 대신 등받이 의자에 앉아 턱을 한껏 치켜들고 고개를 비틀어 김서형을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 주머니에 손을 꽂는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감독님께서 김주영을 '아줌마'라고 하는 인물은 혜나밖에 없다고 좋아하셨어요. '너는 무서운 게 없니'라고 묻는 김주영 선생에게 한 대답이 정말 혜나답다고 느꼈어요. '왜 없어요, 돈 없는 것도 무섭고, 돈 없는 것도 무섭고, 엄마 없는 것도 무섭고, 무서운 것 천지죠' 하는 그 말에 정말 몰입이 잘 됐어요."

그녀에게 강렬하게 짧은 생을 마감한 혜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보라는 "짧게 쪽지를 남긴다면, 넌 잘못한 것 없어. 잘 했어. 고생했다"라고 답했다. 

"혜나가 스스로 죄책감은 없었을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이유있는 행동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엾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아직 어린 나이에 케어가 필요한데 나약함을 보이기 싫어 그렇게 행동하는 하는 거니까요. 혜나를 보는 시선이 참 다양했어요. 한없이 악동처럼 보일까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연기하는 맛은 짜릿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3~4개월을 붙어있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 배우 김보라.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혜나에게 그렇게 빠져들어서일까. 'SKY캐슬'의 결말은 김보라가 생각한 결말과는 조금 달랐다. 김보라는 "저는 모든 게 비극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냥 행복하지 않게, 정말 현실적으로"라며 "혜나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그렇게 영악하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쳤어도 혜나는 끝까지 못 갔다. 현실에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혜나의 죽음 또한 현실적이라고 봤다"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이렇게 혜나를 보내고, 'SKY캐슬'을 보내고 김보라는 다음 발걸음을 옮긴다. 몸담았던 소속사를 떠나 모멘트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라이프타임 웹드라마 '귀신데렐라'에 이어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 출연한다. "배우 김보라가 아니라 역할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꿈을 'SKY캐슬'의 혜나를 통해 이룬 셈이지만 그녀는 커다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다. "혜나를 깨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저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싶어요."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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