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바하'.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제작 외유내강)는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종교와 신비주의를 우직하게 파고든 오컬트 스릴러다. 전작 '검은 사제들'로 544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엑소시즘·오컬트를 한국 콘텐츠의 주류에 올려놓은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에 이르러 한국이란 땅에 새로운 오컬트의 뿌리를 심었다.

시작은 소녀의 내레이션이다. 다리가 불편한 소녀 금화(이재인)은 16년 전 강원도 영월에서 쌍둥이 언니와 함께 태어났다. 검은 털이 숭숭 나 있던 그것은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으며 꽁꽁 닫힌 문 너머에 여전히 살아있다.                
 
종교문제연구소란 허름한 간판 아래 종교 비리를 쫓는 박 목사(이정재)는 사이비 추적만큼 후원자 모집에도 관심이 많은 속물. 사슴동산이란 신흥 종교단체에 관심을 갖던 그는 뜻하지 않게 여중생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과 마주하고,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다. 

그리고 문제의 살인사건 용의자를 경찰보다 먼저 찾아간 수상한 사내 나한(박정민)이 있다. 박 목사가 사슴동산의 실체를 향해 다가가며,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점점 좁혀진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로 가톨릭 구마 사제들의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옮겼던 주인공이다. '검은 사제들'이 한국 배경의 '엑소시스트'였다면, '사바하'는 한국에서 태어난 오컬트다. '전설의 고향'식 한풀이에 그치지 않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와 불교, 크고 작은 밀교와 무속신앙이 뒤섞여 저마다 번성하는 이 땅에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싹을 심었다. 이단 잡아 밥벌이 하는 속물 목사를 주인공 삼아 신은 과연 존재하는지, 종교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지…. 오래 품어온 질문을 던진다. 

가장 돋보이는 건 속편이 기대될 만큼 꽉 짜인 세계관이다. 각 종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닥부터 촘촘하게 이야기를 다져올렸다. 아귀가 꽉 맞물린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힘있게 이어진다. 또 다른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로 사랑받은 '곡성'과 대조를 이루는 지점이다. '이유 없는 종교 없다'는 박 목사의 신념을 출발선으로 삼은 작품 답게 이유 없는 사건도, 캐릭터도 없다. 오컬트 호러 분위기로 시작해 지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로 이어지는 흐름도 자연스럽다. 남다른 품과 집념으로 완성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만으로도 성취를 인정할 만하다. 

긴장감이 시종 이어지는 덴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이 한 몫을 한다. 들여다볼수록 의미며 느낌이 남다른 압도적인 탱화가 일단 시선을 붙든다. 강원도의 으스스한 산세를 비롯해 공간마다 다른 음습한 기운을 드리운 배경이 '사바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해냈다. 주문을 외우듯 낮게 읇조리는 저음, 필요할 때 치고 빠지는 음악과 음향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강렬한 공포체험을 바란 정통 호러팬이라면 취향이 갈릴 듯하다. 

'사짜' 냄새 물씬 나는 사이비 전문가 목사님 이정재는 능수능란하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베테랑답게 이야기를 이끌며 여운까지 남겼다. '신과함께'의 염라대왕은 잊어도 좋다. 나한 역 박정민은 손발이 묶인 듯한 캐릭터에서마저 존재감을 드러낸다. 금화를 연기한 15살 소녀 배우 이재인은 '검은 사제들' 박소담을 잇는 '사바하'의 발견이다. 진선규는 제대로 물이 올랐다.
▲ 영화 '사바하'. 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사바하'. 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사바하'. 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사바하'. 제공|CJ엔터테인먼트

2월20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2분.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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