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제작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은 약 100년 전 힘겨웠던 조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던 영웅을 끄집어낸다. 지금은 잊힌 이름, 시대를 풍미했던 스포츠 스타 엄복동이다. 뜻은 좋았다.

때는 일제강점기, 엄복동(정지훈)은 물장수로 장터를 누비던 순박한 청년이다. 어느날 그는 처음 본 자전거(자전차)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리고, 동생은 대학 공납금을 털어 자전거를 선물한다. 기쁨도 잠시, 그는 자전거를 도둑맞고 실의 속에 상경한다. 마침 경성에서는 자전차 대회가 인기다. 일제의 승승장구에 조선 민중의 패배감은 짙어져 가고, 일미상회 황재호(이범수) 사장은 '독립운동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자전차 선수 육성에 나선다.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 제공|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선수모집 광고를 보고 다시 자전차를 타게 된 엄복동은 곧 두각을 드러낸다. 그는 첫 출전한 자전차대회에서 일본 선수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뒤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다. 독립운동조직 애국단의 김형신(강소라)은 엄복동이 최고라는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서야 황재호의 뜻을 이해하고 엄복동에게 계속 이겨달라는 당부를 남긴다.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나라 뺏긴 설움을 달래줬던 실존 인물이다. 슈퍼스타나 다름없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 자전거'란 노래가 유행했고, 그가 출전하는 자전차 경주를 보려고 10만 명이 몰려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경성 인구가 30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다.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 제공|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엄복동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승리의 질주는 물론 논란의 행적, 초라한 말년까지 드라마와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의 삶에서 영광스런 클라이막스만을 뽑아 허구를 섞은 100억대 블록버스터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순박한 주인공과 대조되는 영화의 야망이다. 빛나는 승리를 독립운동과 엮고, 잔혹한 일제와 대비시키며, 스포츠드라마의 긴박감에다 로맨스에 웃음기까지 가미하려 하지만 야망만이 또렷하다.

약속이나 한듯 납작한 캐릭터, 장면과 장면 사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서사로 "엄복동을 지켜라"라며 그를 둘러싸고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물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다. 그의 승리가 조선 민중을 일깨워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지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바탕이 됐다는 해석 역시 마찬가지. 그저 이 영화의 개봉 시즌이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겹친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박세리 박찬호의 승리가 IMF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듯, 엄복동의 승리가 일제의 억압에 고통받던 조선 민중에게 큰 힘이 된 건 사실이다. 사실 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을 것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렇기에 더 아쉽다. 잊었던 희열을 끄집어냈다는 의미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오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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