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처럼 김병현은 현역 시절 그라운드 밖에서도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때론 직선적이어서, 때론 돌발적이어서 더 주목을 받았다. 누군가는 이런 그를 두고 "시원시원하다"며 매력적인 시선으로 지켜봤지만, 누군가는 "예측할 수 없다"며 4차원적으로 바라봤다.

▲ BK 김병현 ⓒ한희재 기자
어쩌면 그는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외로움을 많이 탄 평범한 젊은이였는지도 모른다.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야구바보. 그래서 모두가 '은퇴한 것 아니었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홀로 좀처럼 공을 내려놓지 못하고 꿈을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놨다. 파란만장했던 선수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면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추억의 편린들을 하나씩 더듬었다. 특히 16년 전 화제를 몰고 온 '가운데 손가락 사건(?)'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①>편에 이어

▲ 김병현이 지난해 애리조나 창단 20주년 '올타임 올스타' 팬투표에서 마무리투수 부문 1위로 뽑혀 체이스필드를 방문한 뒤 자신의 사진 앞에 서서 감회에 젖었다. 오른쪽으로 등번호 51번의 전설적 투수 랜디 존슨이 보인다. 김병현은 당시 49번으로 둘의 등번호를 합치면 '100'이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3. 방황

-2018년 애리조나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포지션별 최고 스타를 뽑았을 때 마무리 투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년 만에 뱅크원볼파크(현 체이스필드)를 방문한 소감은?

"오랜 만에 가보니까 건물은 그대로인데, 거기에 클럽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들이 그대로 있더라. 하얀 머리도 생기고 조금은 세월의 흔적들이 생긴 걸 보니까 '아, 시간이 많이 갔구나'라고 느꼈다. 그때는 정말 '빨리 한국에 가고 싶은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좋았구나' 추억에 잠겼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도 하고 인터넷이 이렇게 활발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때는 혼자서 외로웠었다. 힘들었었고.

-당시에는 불펜에 통역이 출입 금지였다고?

"그때는 불펜에 통역이 들어갈 수 없었다. 영어 사전 하나 가지고 혼자 들어가 있었다. 말이 안 통하니까, 한두 경기도 아니고 1년에 162경기인데 그렇게 게임을 하다보니까 야구에 대한 질린?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3시간, 4시간 불펜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는데, 나중엔 영어가 귀에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몇몇 투수들이 나를 비아냥거리는 얘기까지. 어린 나이에 그래서 거기 있기 싫었고 더 선발을 원했는지 모른다. 지금 (류)현진(LA 다저스)이가 잘 하는 거 보면 '야, 괜찮네', 그리고 '한국에서 하고도 충분히 (ML에) 갈 수 있구나', 그래서 '나도 한국프로야구에서 야구를 하고 갔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한다."

-불혹이 된 김병현이 20대 초반의 김병현을 만난다고 했을 때 전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하던 대로 해라. 나는 나 자신한테는 솔직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잘 참았던 것 같고. 그런데 (아플 땐) 참지 말았어야하는데 참는 바람에…. 야구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참았던 것 같고, 개인적인 사생활에서는 참았어야하는데 참지 못해서 이상한(사람이 됐다). 참 재밌는 것 같다.(웃음)"

-손가락은 왜 들었는가? (그는 2003년 보스턴 시절 오클랜드와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맞붙었을 때 3차전에 앞서 선수 소개 때 자신에게 야유하던 홈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구설에 올랐다. 그래서 돌발질문을 했다.)

"그거는…. 나 자신한테 솔직한 감정표현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억울하니까. 분명히 선발투수를 잘 하고 있었는데, 마무리투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래, 알았어. 마무리할게' 하고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 결정적인 상황이, 포스트시즌 딱 올라가서 (오클랜드전) 1차전 9회말 2아웃 주자 1, 2루인데 갑자기 왼손타자(에루비엘 두라소) 나온다고 나를 뺐다. 그리고 나서 (나 대신 나온 왼손투수 앨런 엠브리가) 왼손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게임이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홈으로 돌아왔고, (3차전에 앞서) 선수를 소개하는 와중에 '병현킴! 넘버 피프티원(51)!'이라고 하는데 관중들이 '부(Boo)' 하고 야유를 하더라. 난 용납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에라이, 이거나 먹어라' 했다.(웃음) 그게 잘못 전달은 됐지만은 나로선 '내가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했냐? 너희가 시킨 건데, 아니 그럼 결정을 나한테 하라고 하든지. 나 자신한테 솔직한 표현이었다."

-일본프로야구(라쿠텐)에 잠시(1년) 갔다가 2012년 KBO리그(히어로즈)로 복귀했다. 당시 어떤 심정으로 돌아왔는지?

"어떻게 하면 옛날처럼 던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혼자서도 안 되고, 독립리그도 갔다 왔었고, 이게 생각보다 안 되더라. 일본에서 불펜에서 1이닝, 2이닝씩 던지면서 ‘아, 여기선 조금씩 좋아졌구나'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더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서 왔다.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한국야구를 접한 것은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많이 했다. (예전만큼 던지지 못해) 오고 싶지 않았는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국프로야구에) 왔다. 원했던 걸 못 얻고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잘 했으면 아마 계속 뛰고 있었을 거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KIA에서) 나오게 된 거고."

-호주리그로 간 이유는?

"솔직히 KIA에서 나올 때부터 식단 조절하고 식이요법 하면서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는 걸 느꼈고, 호주에 가서 어느 정도 '이게 됐는지, 안 됐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됐다. 어느 정도 궁금했던 것도 풀리고."

-미국, 일본, 한국, 도미니카공화국에다 독립리그와 호주에서도 뛰었다. 달나라에도 야구가 있으면 달려갔을 것 같은데, 오랜 방황 끝에 찾은 야구 인생의 답은?

"아, 내가 미국에 가서 왜 힘들었는지, 그리고 지금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해야 할 것들을 알 것 같다. 이런 것들은 다 자기관리다. 한국에서는 항상 같이 운동한다. 스스로 하는 게 아니고. 그런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가서 갑자기 바뀌면서 혼란이 왔다. 식단도 마찬가지고. 환경에 대한 것도 그렇고…. 운동선수들에게 술? 굉장히 안 좋다.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난 '절대 안 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호주리그에서는 왜 질롱 코리아가 아닌 멜버른을 선택했나?

"질롱코리아는 어쨌든 어린 친구들, 한 자리라도 더 있어야하지 않나. 내가 가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렇고. 그 전에 멜버른 감독님과 (입단) 약속을 했다. 약속을 했으니까 지켜야하지 않나."

-질롱코리아는 약체팀이었지만 호주 리그 자체는 수준이 괜찮고, 좋은 선수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꽤 있었고, 마이너리그 유망주들, 일본 각 팀의 괜찮은 선수들도 많았다. 우리나라는 국가대표를 뽑아놓으면 선수들이 굉장히 잘한다. 각 팀을 뿌려놓고 보면 숫자상으로나 좋은 선수를 갖고 있는 분포도에서 한국야구는 굉장히 열악하다. 우리 어린 친구들이 좀 더 분발해야 되지 않나, 그리고 아마추어 야구도 조금 더. 야구의 전반적인 위기가 올 수도 있다.

#4. 인생 제2막

-은퇴식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그런 건 없나?

"은퇴식에 대한 미련은 1도 없고.(웃음) 솔직히 허전하다. 열심히 지금까지 잘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던 걸 했던 건데, 이걸 그만둔다고 하면 눈물 난다. 근데 언젠가는 그만둬야하는 거고, 그만두더라도 열심히 살아야한다. 후회 없이. 그리고 내가 가장 잘했던 거니까 야구로 뭔가를 해야지. 그리고 나 같은 선수를 안 만드는 게 목표다."

-김병현 같은 선수를 만들어야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절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재능)은 좋았는데, 그걸 꾸준하게 끝까지 잘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고 못 배웠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걸 가르쳐주고 싶다. 그게 우리나라 한국야구에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팬들에게 한마디

"열심히 야구만 했었는데 지금은 열심히 다른 걸 해보려고 한다. 왕년에 내 팬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이 지켜봐 달라. 김병현 파이팅!"

▲ 김병현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SPOTV의 스포츠타임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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