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훈은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할 줄 아는 '준비된 인터뷰이'였다.
[스포티비뉴스=진천선수촌, 박대현 기자] 똑 부러졌다.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할 줄 알았다.

기자가 되고 반가운 업무가 있다면 양과 질이 담보된 인터뷰이를 만나는 것. '태권 아이돌' 이대훈(27, 대전시체육회)과 만남은 반가운 일이었다.

지난달 21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이대훈은 "운동과 결혼 준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며 웃었다. 올 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혼을 깜짝 발표했다. 승무원인 예비 신부는 덤덤해 했다고. 

그럼에도 "잘 준비하고 있고 또 잘 해내겠다"며 인터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대화를 나눴다.

10년 연속 태극마크를 단다. 한성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0년 이후 줄곧 국가 대표로 뛰었다. 종목을 불문하고 결코 쉽지 않은 성과다. 선수층이 두꺼운 한국 태권도계에선 더더욱 전례를 찾기 어렵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길 수도, 어떤 이에겐 짧을 수도 있다. 이대훈의 십년은 두 성질이 두루 녹아 있었다.

"지나고 보면 짧은데 해마다 (치열하게) 선발전을 치렀던 걸 생각하면 또 길게 느껴진다(웃음). 어느덧 내가 선배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더라. (좋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후배에게 귀감이 되면서 (선발전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선배 대접 받을 생각은 없다. 정정당당히 겨루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선후배 사이가 됐으면 할 뿐. 이대훈은 "조금이라도 후배에게 알려줄 게 있으면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10년 연속 국가 대표가 들려주는 자기관리 노하우는 특별할 터. 

더불어 "후배에게 배울 점이 있으면 주저없이 배울 참이다. 쭉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재미있게 운동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태권도는 양궁과 여자 골프, 쇼트트랙에 비견된다. 국가 대표되는 게 올림픽 메달 따는 것보다 어렵다. 그런 종목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대훈의 10년 연속 태극마크는 더 크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어떻게 동기를 꾸준히 주입했는지가 궁금했다. 모티베이션에 관한 힌트를 듣고 싶었다.

답변은 의외로 '자기 밖'에 있었다. 강박 비슷했다. 주변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롱런 배경 첫머리에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 지도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성실해야 오래 간다.' 그 말씀을 따라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랬더니 성적이 나오더라. 그런데 그때부터 '이대훈은 성실하다, 꾀부리지 않는다'란 말이 주변에 꾸준히 돌았다. 이게 나를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주위 시선이 나를 쉴 수 없게 만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게 선순환돼서) 나를 더 열심히 훈련하게 하고 (선수로서) 기량을 유지시켜줬다. 물론 여태까지 한 게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한 구석도 있다(웃음)."

▲ 이대훈은 태권도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뤘다. 단 하나, 올림픽 금메달만 없다. 하지만 의연했다. 이대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또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지만 혹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크게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 그은 선수생활 마지노선은 마흔 살. 하지만 조건이 있다. 한국 나이로 스물여덟인 이대훈은 현재 고교 때와 동일한 훈련량을 소화한다. 나이가 들어 지금 훈련 강도를 버티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도복을 벗겠다고 했다. 성적이나 기량은 부차적이고 과정에 해당하는 '훈련 수행 능력'이 은퇴 가늠자라고 했다.

"일단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이 현재 목표다. (목표와 별개로) 최고의 몸상태에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물론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두 바람이 공존한다. 하지만 지금의 훈련 강도를 (도쿄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있다. 훈련을 못 따라간다면 유니폼을 벗을 것이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서른 살, 마흔 살까지도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젊은 선수와 똑같이 훈련해야 호성적이 나온다고 믿는다. (선배라고) 옆뒤로 빠지고 천천히 하고, 그럴거면 차라리 (은퇴하고) 지도자로서 후배와 같이 운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설렁설렁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플레이스타일은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닥공은 이대훈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각이 안 나올 것 같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도 어떻게든 발차기를 만들어낸다. 공격성이 높은 선수가 나올 때마다 '여자 이대훈' '어린 이대훈' 같은 수식어가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스타일이 완성되는데 도움을 준 지도자나 특정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닥공 스타일은 한성고 시절 형성됐다. (이 스타일로) 다양한 유형의 상대를 이기다 보니 (이게 내게 맞구나 하는) 스스로 확신 같은 게 생겼다. 처음 국가 대표에 뽑힌 이유도 높은 공격성이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체력과 패기만 좋았던 10여년 전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강한 공격성이 큰 역할을 했다."

야수 같은 적극성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 색(色)이 덧대졌다. 노련미였다. 국가 대표로 국제대회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변했다. 본인도 실감한다. 진보에 가깝다. 

베테랑 이대훈은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를 더 잘 구분짓게 되면서 경기력이 좋아졌다고 했다. 기존 공격성에 풍부한 경험이 더해졌다.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자기 종목에 관한 옛 기억을 가끔 끄집어낼 때가 있다. 그걸 보면 그 운동이 생각보다 정말 '디테일'하다는 걸 알게 된다. 강호동이 씨름을, 서장훈이 농구를, 테리 브래드쇼가 미식축구를 설명할 때 그렇다. '프로 세계에서 성공한 인물은 확실히 다르구나' 감탄이 나온다. 

혹시 태권도에도 일반인이 잘 모르는 디테일이 있는지 물었다. 상대 발 방향을 보고 스탠스를 바꾼다든지, 발만 쓰는 종목으로 보이지만 손도 타이밍 뺏는 비기로 활용한다든지 궁금했다.

"씨름도 그렇지만 축구도 패스하고 골 넣으면 되는 (룰만 보면) 단순한 종목이지 않나. 하지만 실제 그 안에서 머리를 맞대는 전술이나 세부 기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할 것이다. 태권도도 마찬가지다. 전자호구 터치만 해도 수십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보시는 분들은 (경기 때 태권도 선수) 발이 약해 보인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실제 태권도 선수 발 힘은 어마어마하다. 공중에 떠서 때리는 발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상대가 발차기할 때 손으로 커버를 잘해야 점수를 안 뺏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무궁무진하다. (그저 빠르고 세게 때리는 게 아니라) 한두 템포 늦추면서 상대 커버를 '들리게' 때리는 것, 뒤쪽을 노려 감아차는 것, 앞쪽을 목표로 뻗어차는 것. 이런 걸 모두 미세하게 조정해서 발차기를 한다. 상대 커버에 따라 발 각도도 다 다르게 차고. 여기에 스텝을 활용해서 붙어주고 빠져주고. 이런 게 정말 많다. 일반인 분들은 선수 몸도 스치지 못하실 거다(웃음)."

이대훈은 모든 걸 이뤘다. 태권도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싹 다 누렸다. 세계 랭킹 1위에 아시안게임 3연패, 올해의 선수상 4번 수상.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도 3개나 있다. 다만,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시대가 바뀌어 메달 색에 구애받지 않는다 해도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로서 아쉽진 않을까. 이대훈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58kg급 은메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68kg급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랜드슬램 달성에 언덕 하나만 남은 셈이다.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난 지금 커리어도 소중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 올림픽에 2번 나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두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면) 그랜드슬램 3회를 이루는 건데 아쉽게 실패했다(웃음). 금메달이 아닌 2개 메달도 내겐 좋은 경험이다. 끝내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크게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승리욕과는 상관없다. 인터뷰 내내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남자란 인상이 질문자로서 강하게 들었다. 이 인상이 잔상처럼 남아 듣는 순간 답변 의중이 이해됐다. 여기에 이대훈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줬다. 

"물론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단 출전권을 거머쥐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큰 부문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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