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즌 10골 넣겠다는 홍정운은 수비수다. ⓒ유현태 기자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축구계에선 '언성(unsung) 히어로'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이 팀에 기여하는 것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언성 히어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구FC에도 수많은 언성 히어로가 있다. A 대표팀 수문장 조현우를 제외하면 스타플레이어를 찾기 어렵다.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많은 데다가, 대구FC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많다. 시민구단 대구FC 소속으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대구FC의 '언성 히어로'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때가 됐다. 2017시즌 K리그1에 승격한 뒤 늘 강등 1순위로 꼽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고비를 넘어 잔류에 성공했고, 2018시즌엔 FA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2019시즌엔 K리그1에서 가장 뜨거운 구단으로 떠올랐다. K리그1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최고의 출발을 했고, 첫 도전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선 혼다 게이스케가 버틴 멜버른 빅토리, 파울리뉴가 뛰는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모두 3-1로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승리의 스포트라이트는 역시 세징야-에드가-김대원까지 공격수들을 향했다. 

대구의 언성히어로 대표로 수비수 홍정운을 11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금발' 홍정운은 더 많은 관심을 요청하며 수비수로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 대구의 '언성히어로'들: "수비의 숙명이다."

- 대구는 주목을 받고 있지만 대체로 공격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간다.
수비의 숙명이다. 경기를 이기면 공격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실점 경기를 하면 뒤에 있는 든든한 (조)현우 형이 또 주목을 받는다. 그 잘한다는 전북도 경기에서 한두 개는 (찬스를) 주는데, 한두 개 주면 욕도 많이 먹고 하더라. 수비란 그런 것이다.

- 하지만 감독님, 외국인 선수들은 수비수들의 노고를 다 알고 있다. 수비진 자랑 좀 부탁한다.
공격수들이 골을 넣고 주목받는 것은 좋다. 그 세징야, 에드가, (김)대원이 아래서 묵묵히 버티는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있기에 골 찬스도 난다. 물론 그렇게 버티는 것도 세징야, 에드가부터 수비를 열심히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도전자지만 팀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저뿐 아니라 보시는 분들도 그러셨을 것이라 믿는다. 내년에 또 ACL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수줍은 남자 홍정운 ⓒ유현태 기자

◆ 대구FC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경기에 나갈 때도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 뚜렷한 스타플레이어 없이 강한 팀. 대표팀 선수는 골키퍼 조현우뿐인 게 사실이다. 대구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조직력. 가족 같은 분위기. 서로를 다 이해하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 오는 우정부터 뒷받침이 된다. 그게 경기장에서 그대로 나온다. 작년 선수들이 그대로 다 뛰고 있다. 지난 시즌 후반 마지막 9경기를 무패로 마쳤다고 하더라. 동계 전지 훈련 때도 항상 이겼고, 체력적, 기술적, 조직적으로 준비가 잘 돼 있으니 어떤 팀과 붙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지난 후반기부터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분위기 메이커는 누구인가.) 역시 주장 (한)희훈이 형이다.

- 외국인 선수들도 '배려'를 많이 이야기하더라. 팀 분위기가 유난히 좋아 보인다.
동료들이,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나이 많고 적고 상관없이 가족같은 분위기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팀이 너무 행복하게 운동한다. 생일이거나 하면 모여서 파티도 하곤 한다. 정말 좋다.

- 주장 한희훈은 늘 후배들을 질책하곤 하더라. 이번엔 수비수 김우석이 정신차리고 열심히 하라고 하던데.
일단 그건 맞는 말이다.(웃음) 희훈이 형은 분위기를 외적으로, 경기장 안에서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혼자 소리치면서 분위기를 끌고 가니까 선수들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주장으로선 정말 최고다.

- 2016년부터 대구에서 뛰었다. K리그2, 승격, K리그1, FA컵 우승, ACL 출전까지 짧은 시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올해도 역사를 쓸 것 같다. 입단해서 승격, 잔류, FA컵 우승까지 했다. 예전에 K리그의 대구는 이정도가 아니었다. 제가 와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팀이 확 바뀌었다. 경기에 나갈 때도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K리그2에서 항상 이겼듯이 K리그1에서도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선수들도 '아, 오늘 이길 것 같다'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멜버른 빅토리전 때 먼저 실점해도 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뛰니 경기가 잘 된다.

- 지금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위기가 오지 않을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마흔 경기를 넘게 치르는데 위기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지난해보다 더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위기를 잘 버텼기 때문에 앞으로도 충분히 버틸 것이라고 생각한다. 14경기 1승을 했는데 올해 그럴 일은 없다. 그 악몽은 재연하면 안 된다.

▲ "지는 게 뭔가요?" 대구FC는 광저우마저 완파했다. ⓒ연합뉴스

◆ 수비수 홍정운의 성장: "뒤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원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갔을 때 인터셉트나 상대 공격을 끊는 건 잘했다. 공을 잡았을 때 실수가 너무 많았다. 커트를 해도 공을 다시 빼앗겼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지금이 어찌 보면 위로 올라가서 공을 받기도 한다. 쉽게 연결해주고 다시 내려온다. 지금 자리가 재미있고 편하다. 미드필더 때는 뒤에 사람이 있으니 공을 잡을 때 무서웠다. 미드필더들만큼 볼을 못 찬다. 지금이 맘에 든다.

- 조광래 대표 이사님한테 홍정운 선수를 물으니 '착하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최근엔 수비진에 화도 내고 리더다운 면이 보이는 것 같다.
감독님도, 사장님도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고 경기하라고 말한다. 주장 완장은 (한)희훈이 형이나 세징야가 차지만, 희훈이 형이 경기에 없으면 수비에서 경기를 리드할 사람은 '나'라고 하신다. 소리 지르고 말을 많이 해줘야 팀 경기력이 올라오니까 많이 하라고 하신다. 뒤에서 리더가 되어 달라고 많이 하셔서 노력하고 있다.

- 그 의미는 역시 수비수로서 성장인가.
1,2년차 때는 옆에서 하라는 대로 '예, 예'하면서 할 뿐이었다. 이젠 또 뭔가 알게 되니까 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김)우석이, (박)병현이 형까지. 가운데에서 원래 조율을 해야 하니까. 그 또한 스리백 가운데에 있는 수비수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웃음)

- 조광래 사장님이 포지션 등에 대해선 조언이 잘 적중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엔 안드레 감독님인가, 조광래 사장님인가.
이번엔 사장님이 조언해주셨다. 선수들 장단점을 잘 파악하신다. 어느 자리에서 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계신다. 따로 불러서 이야기 많이 해주시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홍정운은 일단 공을 빼앗으면 세징야에게 준다. ⓒ유현태 기자

◆ 대구 축구의 핵심은 수비: "내가 봐도 뚫기 힘들다."

- 조광래 사장님은 벨기에를 참고했다고 하시던데 전술적 핵심은.
다같이 공격하고 다같이 수비한다. 그게 최고의 전술이다. 11명이 딱 모여서 지키는데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다. 경기를 다시 봐도 어떻게 뚫나 싶다. 지난해부터 계속 해온 것이고, 동계 훈련에서 보강도 했다. 대구를 뚫긴 쉽지 않다.

- 측면에서 공격수와 윙백이 함께 수비를 펼치고, 공격적인 위치에 가면 윙백과 측면에 배치된 센터백이 나가서 또 협력 수비를 한다고 하던데. 상세하게 설명을 부탁한다.
내가 막고 있는 선수가 패스를 하면, 그때부터 공을 받는 선수를 맨투맨으로 강하게 압박하라고 강조하신다. 공을 잡는 사람을 향해 뛰라고. 달려드는 선수와 원래 수비하던 선수 2명을 상대해야 한다. 공격수가 1대1에서 풀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2명이 막으면 더 어렵다. (김)대원이, (정)승원이 같은 선수들이 앞에서 엄청나게 뛰어준다.

- 공격적인 포인트는.
잡으면 일단 세징야다. 상대가 기다리는 수비를 하면 세징야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준다. 어떻게든 지켜준다. 다 알아서 해준다. 저희는 공 차기 좋다. 저희 전술은 세징야다.(웃음) 사실 공격 전술을 훈련할 때 우리는 죽어라 수비 전술 훈련을 하고 있다. 자세한 건 (김)대원이가 알 것이다.

▲ 대구 팬들의 열정 ⓒ유현태 기자

◆ 팬들의 사랑에 배고프다: "현우 형, 세징야, 대원이, 승원이만 부르지 말고 저도 좀 불러달라."

- 제주전 직후에 승리 세리머니를 보는데 소름이 돋더라. 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른 소감은.
대구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 DGB대구은행파크의 첫 경기를 선발 풀타임으로 뛰어 영광이다. 역사적인 일이다. 경기장이 가득 찬 것을 봤다. 이런 홈 팬들 앞에서 뛰는 건 처음이라 가슴이 벅차더라. 꼭 이겨야겠다. 보여줘야겠다. 얼마나 대구 축구가 재미있는지. 다행히 무실점해서 정말 좋았다.

- 이런 기세를 10년, 20년 그 이후로도 끌고 가야할텐데.
출발은 잘했다. 이런 모습을 유지해야 경기를 찾으실 것이다. 선수들이 못 보여주면 팬들도 보러 오기 싫을 수도 있다. 항상 재미있는 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저희 진영에선 재미없게 해주고, 상대 진영에 가면 재미있게 해드리겠다.

- 경기를 마치고 팬들이 많이 기다리던데. 사인은 많이 해줬나.
저도 많이 불러주셔서 많이 해주셨다. 그렇지만 역시 (조)현우 형, 세징야가….(웃음) 대구스타디움에선 이기면 바로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그 점이 저도 아쉬웠다. 승리를 하고 환호 속에 버스를 타니까 벅차오르더라. 

- 동료들하고 팬서비스 잘해드리자고 이야기도 하나.
일단 팬들은 선수가 좋아서 오시는건데 그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엔 정말 나를 좋아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이젠 정말 바로 앞에서 불러주신다. 안 갈 수가 있겠나. 불러주시면 당연히 간다. (조)현우 형, 세징야, (김)대원이, (정)승원이만 부르지 말고 저도 좀 불러달라.

▲ "이게 황금 뚝배기인데" 홍정운 ⓒ유현태 기자

◆ 주목받는 '노란 머리': "황금 뚝배기가 터지기만 하면"

- 노란 머리는 세징야가 FA컵 우승 기념이라고 하던데, 전에도 이렇게 염색한 적이 있었나.
눈에 띄지 않는 갈색 정도론 해본 적은 있다. 이렇게 외국인처럼 해본 건 처음이다. 원래는 흰색이었다. 계속 색이 변하더라.

- 눈에 띄는 색을 하니 확 눈에 띄더라. 이 역시 염색한 선수의 숙명일까.
처음 전북 현대전에 나설 때 긴장을 많이 했다. 이런 머리를 하고 못하면 또 욕먹을 수도 있지 않나. '머리 할 시간에 공이나 한 번 더 차라.' 그런 말 들을까봐 긴장 많이 하고 경기했다. 나름 괜찮은 경기를 해서 조금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경기를 항상 뛰고 나면 다시보기를 했다. 그 전엔 저나 다른 수비수가 걷어내면 '대구 수비수'가 걷어냈다고 했다. 이제 내가 걷어내면 눈에 띄니까 '홍정운'이 걷어냈다고 하신다. 반대로 못하면 눈에 띌테니까 항상 잘하려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 지난 시즌엔 헤딩 골로 유명해졌다. 이번 시즌엔 언제쯤 터질까.
황금 뚝배기(머리를 뜻하는 은어)가 터져야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보다 더 많이 넣는 걸 목표로 준비했다. 사실 그제(제주전)도 기회가 있었는데 떴다. 조만간 황금 뚝배기가 발동될 것이다. 준비 잘하겠다.

- 지난해 5골인데 더 넣으면 득점 순위에 이름 올리는 것 아닌가.
두 자릿수는 해야…. 두 자릿수 해보고 싶다.

- 올해 각오는.
대구FC가 K리그1에 올라와서 평균 0점대 실점은 없었다. 강팀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격적으로 보자면 5골 넣었는데 더 많은 골을 넣고 싶다. 어차피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하니 두 자릿수 득점이다. 경기장도 새로 지었고 대구FC가 열심히 준비했으니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만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다. 항상 첫 경기처럼 꽉 찬 경기장에 오셔서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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