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욘 안데르센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스포티비뉴스=인천, 이성필 기자/김도곤 기자/이강유 영상 기자] 과거 한국 축구 환경은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이들이 가진 '기술'만 받아 넣고 정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남긴 '유산'이 있는가에 관해 묻는다면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물론 몇몇 명장들이 현재 4~50대에 접어든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지만, 대다수는 기억에서 사라졌거나 단명했다.

지난해 여름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은 욘 안데르센(56) 감독은 어떨까, 북한 대표팀을 맡았다는 것이 가장 큰 화제였고 '잔류왕' 인천을 또 K리그1에 잔류시킨 가시적 성과물도 만들었다. 올해는 특징 있는 선수들의 합류로 기대치가 높아졌다.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으로 기가 센 안데르센 감독은 인천의 역사에 어떤 인물로 남을까.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12일 안데르센 감독이 머무는 인천 송도의 오크우드 프리미어호텔에서 만나 짧지만 강렬한 그의 인생과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북한에서 있었던 2년의 세월이 (인천 생활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안데르센 감독은 2016년 5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지의 땅' 북한, 그것도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고국 노르웨이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돈을 벌기 위해 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갔다며 인신공격이 계속됐다. 남북 긴장이 유지되고 '핵 위협'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선택한 곳이라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천과 한국으로 오는 데는 도움이 됐다. 남과 북이 한민족이라는 것을 이해했고 정서나 기질이 모두 비슷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정신이나 문화는 비슷…인천 생활 적응에 큰 도움

"북한에서 보낸 2년의 세월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죠. 남북 사람들의 정신이나 문화가 비슷하더군요. 한국에 온 것이 10개월 정도 지나고 있는데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어떤지, 어떻게 (상황이나 사건을) 보는지 이해도 됐구요. 그런 부분들이 합쳐져서 지금은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요."

북한 생활이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심장부 평양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이 대외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상품 중 하나인 '축구' 대표팀을 맡아 더 그렇다.

"처음 두세 달은 가이드가 항상 따라다녔죠. 통역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고서를 작성해 위에 보고하더군요. 하지만 이후에는 (가이드가) 빠지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녔어요. 운전기사는 늘 같이 다녔어요. 개인 차량이 없었으니까요."

평양은 소위 출신 성분이 좋거나 당 간부들, 지방에서 우수 인재로 유학을 온 인재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반 주택인 살림집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외국인인 안데르센 감독은 북한축구협회가 마련한 호텔에서 거주하며 평양의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호텔 세 곳에서 돌아가며 생활했죠. 첫 호텔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두 번째는) 고려호텔에 있었어요. 평양 주위로 경계선이 있는데 밖으로 벗어나려면 늘 확인받아야 하더라고요. 평양 밖으로 이동하면 차량이 필요했는데 늘 사전에 등록하고 갔죠.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사관 차를 타고 이용하면 바로 통과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가끔 30분 정도 기다렸는데 미리 나간다고 말해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안데르센 감독의 취미 중 하나는 골프다. 실력이 꽤 괜찮은 편이란다. 부인 울라 안데르센 씨와 함께 라운딩에 나서는 편인데 평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축구 지도로 받은 스트레스를 골프로 풀었다. 평양 밖에 위치한 골프장을 오가면서 늘 붙어 있던 가이드와도 친해졌다고 한다.

"북한에서 가이드는 영재나 고학력자만 할 수 있더군요. 거의 모든 언어가 가능하더라고요. 자녀들은 북한에 같이 가지는 않았어요. 생활하면서 특별히 제재받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아! 스마트폰도 사용했는데 통신사 사정으로 두 대를 사용했어요. 가족들과 이메일도 주고 받았는데 문제는 없었구요. 이메일은 물론 사진을 보내도 문제되지 않았구요. 사진 배경에 김정은 사진 등 최고권력자의 얼굴이 나와도 상관 없었죠."

아내가 끼어 들어 몇 마디를 던졌다.

"가이드 겸 통역과 친해지면서 같이 골프를 쳤어요. 북한축구협회에서 보내준 사람인데 '미스 킴'이었죠.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교류가 활발하고 여기서 편하게 갈 일이 있다면 가서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북한 음식이나 술은 어땠을까. 특히 맥주의 고장인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했던 안데르센 감독에게 남북 맥주는 확실한 비교 거리다.

"가끔 대동강 맥주를 마셨는데 좋더라. 대동강은 맥주에 번호가 붙어 있는데 종류가 많았죠. 정말 맛있는 맥주에요." (안데르센 감독)

"맥주에 안주로 뽈락을 먹었는데 괜찮더라구요. 북한 사람들은 점심에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에 마른 생선을 자주 먹던데요." (아내)

▲ 욘 안데르센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 아내 울라 안데르센

◆한광성은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손흥민 수준의 자원 나오려면 시간 걸릴 것

북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안데르센 감독이 가장 많이 아는 축구로 파고 들어가니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꺼냈다.

"남북 선수들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똑같더라. 뭐 하나를 알려주면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열정, 그것이 대단하더라." (안데르센 감독)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자주 봤어요. 한국 사람들과 다른 점은 없었죠, 오히려 한국 선수들보다 규칙 등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약간 뭐랄까, 복종적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네요." (아내)

안데르센 감독 덕분에 북한은 올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에서 안데르센 감독이 팀을 잘 만들어 올려놓은 결과다. 지난해 11월 2019 아시아 축구연맹(AFC) 하우스에서 만났던 북한 명문 팀 4·25의 보도 담당관 김진룡 씨도 "안데르센 감독 덕분에 우리가 아시안컵에 나갔다"고 할 정도였다.

"북한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다 이뤘죠. 아시안컵 본선에도 나가게 했고 동아시안컵에도 출전 했었고요. 목표를 해내니 북한에 더 있고 싶지는 않더군요. 다른 곳에서 제안도 많이 왔었고요. 북한도 경제 사정 때문에 (내게) 급여를 더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몇몇 선수는 안데르센 감독 밑에서 성장했다. 특히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한광성(21, 페루자)은 안데르센 감독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광성은 정말 어린데 실력이 있어요. 미래도 있고요. 높은 수준의 선수예요. 하나를 가르치면 다음에 3~4가지를 가져오더군요. (유럽에서) 조금 더 뛸 기회만 얻으면 자기 실력을 더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요."

▲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의 욘 안데르센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남이나 북이나 유럽에 나가 성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똑같다. 한광성 외에도 박광룡(장크트 푈텐), 정일관(루체른) 등 유럽 중급리그인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뛰는 자원들도 있다.

"한광성은 분명 미래 있는 선수라고 봐요. 단, 북한만 놓고 본다면 지금 한국 사람들이 기대하고 응원하는 손흥민 수준의 실력을 갖춘 선수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죠. 물론 지금 유럽에 가서 뛸 선수들은 많아요. 다만, 손흥민 정도의 선수는 시간을 갖고 지도해야 합니다. 북한 의지에 달리지 않았나 싶네요."

외국인 감독들은 한결같이 "한국 선수들이 실력은 우수하다"고 한다. 다만, "축구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도 지난 11일 3월 A매치 축구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 대표팀 지휘 시절 "북한 선수들은 열의는 좋은데 너무 투박하다"고 했던 안데르센 감독의 생각과 얼추 통하는 부분이다.

"한국 생활 초반이었다면 쉽게 대답 가능한 질문이었겠지만"이라고 전제한 안데르센 감독은 "그 당시 어려운 시간을 보냈죠. 선수들이 전술, 체력적으로 제가 추구하고 싶었던 축구를 하기에는 부족했어요. 하지만 시간 지났고 굉장히 큰 노력을 했어요. 이제는 우리 선수들이 체력, 전술적으로 제 축구 이해하고 있어요. 시즌도 잘 진행되고 있고요. 현재는 (지도하는 입장에서) 힘든 부분은 없어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벤투 감독은 아마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어요. 대표팀 감독은 모든 선수와 함께 매일 훈련할 수 없잖아요. 짧은 시간에 선수들 데리고 경기에 나서니 클럽 감독과는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안데르센 감독은 인천이 시간은 걸려도 서서히 바뀔 것이라며 멀리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남북 교류가 정말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에 관심을 보였다.

"북한 대표팀 제안을 받고서 정말 놀랐죠. 아내에게도 말했어요. 가라고 하더군요.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북에 있다 나와서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지금 여기에 와서 보니 내가 격변의 시기에 남북에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행복하더군요. 그래서 홍콩이나 다른 곳에서 제안이 왔었지만, 인천을 택했어요. 언젠가 꼭 육로로 평양에 가서 그곳에서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네요."

"남편이 많은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었어요. 북한이라고 하길래 '뭐라고? 진짜인가요?'라고는 했지만, 괜찮다고 했어요. 노르웨이 언론에서 정말 비판이 많았는데 그것은 감독이 지고 가야하는 숙명이지 않았나 싶어요. 남북 사람 모두 똑같고 친절하잖아요."

그렇다면 인천은 어떻게 달라질까. '생존왕'의 이미지에서 벗어날까. 무엇보다 요즘 안데르센 감독은 국내 언론보다 베트남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특급 스타' 콩푸엉 때문이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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