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구, 박대현 기자] 이탈리아어로 '연출가'로 불린 축구 선수가 있다.

패스 길을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과 기습적인 중거리슛, 완급 조절과 번뜩이는 창조성으로 경기를 쥐락펴락했던 미드필더. 쇼트 패스와 롱 패스 가리지 않고 최고 수준 정확성을 보였던 후방 플레이메이커 대명사.

'레지스타' 안드레아 피를로(39, 이탈리아) 이야기다.

핸드볼에도 피를로가 있다. 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패스 능력으로 리그 역사상 최초 300어시스트를 수확했고 막힌다 싶으면 던지는 기습적인 중거리 슛이 위협적인 라이트백. 경기 중엔 끊임없이 동료를 독려하는 리더십까지 갖춘 남북 단일팀 주장 출신 베테랑.

정수영(34, 하남시청)은 29일 경북 대구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시즌 SK핸드볼코리아리그 남자부 충남체육회와 4라운드 경기에서 4점 10어시스트를 쓸어 담았다. 팀 30-27 승리를 이끌었다.

▲ 정수영 ⓒ 대한핸드볼협회

'핸드볼을 알고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심재복(32, 인천도시공사)처럼 팀 내에서 축구 플레이메이커, 농구 포인트가드 노릇을 맡았다.

정수영이 공을 쥐면 경기 흐름이 자잘하게 일렁였다. 속공과 지공을 선택하고 선수간 패턴 플레이 초석을 만들어냈다.

전반 25분 40초께 정수영은 수비수 사이를 절묘하게 무너뜨리는 롱 패스를 건넸다. 박동광의 불안정한 캐칭으로 공격 마무리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지공 상황을 속공으로 전환시키는 빼어난 패스였다.

전반 막판 의미 있는 누적 기록을 신고했다. 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어시스트를 챙기는 기쁨을 맛봤다. 

2011년부터 시작된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남자부 최초로 300도움 고지를 밟았다. 데뷔 11년째에 자기 이름을 뚜렷이 남겼다.

존재감을 뽐낸 분야는 패스만이 아니었다. 영리한 상황 판단도 돋보였다. 팀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반박자 빠른 중거리슛을 던져 분위기 반등을 꾀했다. 

더불어 우직한 드리블 돌파로 파울까지 속속 얻어냈다.

충남체육회의 끈질긴 추격으로 6점에 이르던 점수 차가 1~2점으로 줄었다. 이때 베테랑 정수영 기지가 빛났다.

21-19로 근소하게 앞선 후반 16분 24초쯤 정수영이 속공을 시도하면서 파울 콜을 유도했다. 박광순에게 7m 던지기 기회를 제공했다. 과감하게 피봇으로 파고들어 수비수와 접촉을 끌어낸 뒤 심판 휘슬을 불리게 했다.

중계진도 "매우 영리한 플레이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후반 25분 20초에도 톱에서 개인 돌파를 시도한 뒤 잘라 들어가는 박광순에게 슬쩍 패스를 건네 득점을 도왔다. 기록은 박광순 개인돌파 점수로 매겨졌다. 그러나 동료가 한두 스텝 앞으로 디딜 수 있도록 수비수를 끌어 준 정수영 움직임이 빛났다. 

현대 농구가 집계하는 2차 어시스트, 스크린 어시스트처럼 정수영도 '보이지 않는' 어시스트로 팀 승리 밑거름을 놓았다. 이날 수확한 10어시스트 밖에도 그의 빛나는 경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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