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SK가 예상대로 칼을 빼 들었다. 음주운전사고를 낸 내야수 강승호(25)를 임의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약 12시간의 긴박한 시간 속에 내부에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사태를 묵과할 수는 없었다.
SK는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강승호 임의탈퇴를 발표했다. 강승호는 지난 22일 경기도 광명시 인근에서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하다 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저질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출동한 경찰이 음주 사실을 적발했다.
음주운전사고 징계는 KBO 규정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강승호는 ‘음주 접촉 사고’에 해당한다. 이 경우 90경기 출장정지, 제재금 500만 원, 봉사활동 180시간이 부과된다. 그러나 SK는 그 이상의 강경한 대응, 어쩌면 구단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징계인 임의탈퇴를 결정했다. 12시간 동안 복잡한 내막이 있었지만 구단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가장 큰 칼을 꺼내 들었다.
지난해 7월 LG와 트레이드 때 얻은 강승호는 SK 내야의 핵심이었다. 염경엽 감독이 단장 시절 영입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당시 염 감독은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의 유격수로 클 수 있는 선수”라고 자신했다. 올해 적응기를 거쳐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격수로 실험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는 2루와 3루, 그리고 유격수를 두루 소화하며 수비 활용 폭을 키운다는 기본 계획을 가지고 시즌에 돌입했다. 팀 내야 장기 구상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하지만 임의탈퇴라는 최고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었다. 무엇보다 강승호가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강승호는 22일 사고를 낸 뒤 퓨처스팀(2군)과 동행해 경산으로 왔다. 경기까지 뛰었다. 25일에는 1군에 콜업될 예정으로 24일 대구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SK는 아무 것도 모르다 언론에서 새어나온 정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 이게 선수의 발목을 잡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강승호가 사고를 낸 직후 구단 매뉴얼에 따라 바로 보고를 했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KBO 징계보다 더 강력한 SK 내규를 봐도 그렇다. 인사 사고가 아니라면 내규 상 구단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징계는 자격 정지 처분이다.
그러나 보고를 하지 않은 점은 구단 내부의 강경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구단 매뉴얼에는 이 같은 상황에서 바로 구단에 알리도록 되어 있다. 음주 운전에 구단 내규까지 어겼으니 가중처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선수단 수장인 염경엽 감독도 보고를 받은 뒤 대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오후 긴급회의에 돌입한 SK는 당초 임의탈퇴와 1년 이상의 자격정지라는 두 가지 카드를 놓고 고민했다. 지금은 성격이 다소 변질했으나, 기본적으로 임의탈퇴는 구단이 선수를 징계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선수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가깝다. SK는 이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의탈퇴’라는 제도가 이미 여론과 선수단에는 징벌성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여기에 선수단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힘을 얻었다. 다른 구단보다 관련 교육이 많다고 자부했던 SK 프런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징계로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그렇게 25일 오전 구단 자체 징계는 ‘임의탈퇴’로 확정됐다.
SK는 KBO 상벌위원회에서 먼저 징계하는 것을 순리로 여겼다. SK의 카드가 KBO 징계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상급 단체의 징계를 흐리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에 SK는 25일 KBO에 긴급 상벌위를 요청했다. 당초 이르면 26일쯤 상벌위를 개최할 예정이었던 KBO도 이를 수용해 오후 3시 상벌위원을 소집했다. KBO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결과를 발표했고, SK는 오후 5시 곧바로 자체 징계안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편 SK는 “임의탈퇴로 인해 지급이 정지되는 올해 잔여 연봉을 교통사고 피해 가족 지원에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른 시일 안에 유관 기관의 협조를 통해 지원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며, KBO가 부과한 봉사활동도 최대한 교통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4일 오후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KBO에서 어떤 징계가 나오든 SK와 강승호가 이행하기로 한 사안이었다.
SK는 그라운드 밖에서 저지른 사안은 야구장에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다. 더 진정성 있는 메시지로 사과를 빌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일찌감치 형성되어 있었다. 그간 다른 구단의 징계와 사과보다는 한발자국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SK가 이를 책임감있게 끝까지 잘 이행해 야구단의 모범을 보이길 바라는 시선도 있다.
임의탈퇴 신분 선수가 항상 그렇듯 강승호의 복귀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SK는 1년 뒤 강승호를 다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SK는 “임의탈퇴 기간이 끝난 뒤에도 선수가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음주 운전 예방을 위한 활동을 했는지를 보고 선수의 향후 신분에 대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구를 잘한다고 복귀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 것이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논리는 SK에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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