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이종훈 공식 기록위원이 12일 잠실 한화-LG전에서 역대 최초 개인통산 3000경기 기록을 했다. 클리닝타임 후 6회초 들어가기 직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실, 이재국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이재국 기자] "3000경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저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네요."

KBO 이종훈(54) 기록팀장은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MYCAR KBO리그' 한화 이글스-LG 트윈스전이 끝나자 기록에 오류가 없는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검산했다. 마침내 끝난 것일까. 펜을 놓고선 잉크가 번지지 않고 잘 마르도록 입으로 바람을 정성스럽게 불었다.

1992년 8월 30일 인천 도원구장에서 열린 삼성-태평전에서 처음 1군 경기 기록을 시작한 뒤 28년째. 이날 조용히 KBO의 이정표를 세웠다. KBO 최초 3000경기 출장. 기록을 쓰는 작업을 하는 기록위원이 스스로 기록을 만들었다.

'30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선수도, 심판도, 그 누구도 KBO리그에서 3000경기에 출장한 이는 없었다. 이종훈 기록팀장이 조용하지만 위대한 역사를 쓴 셈이다. 장인이라 할 만하다.

흔히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 말한다. 안타 하나, 실책 하나, 투구 하나, 실점 하나…. 기록원이 기록지에 쓴 하나하나의 기호와 숫자들이 모여 1경기를 이루고, 그 경기들이 하나하나 쌓여 역사가 된다. 100년 전의 야구도 기록지 하나만 놓고 복기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다. 그래서 기록원을 두고 '사관(史官)'이라 일컫는다.

잠실 한화-LG전이 끝난 뒤 이종훈 KBO 기록팀장을 기록위원실에서 만났다. 잠실경기 TV 중계 시 심판 뒤쪽 그물 바로 뒤로 보이는 방이 기록원실이다. 뭔가를 꼼꼼하게 적고 있는 이들이 바로 KBO 공식기록위원들이다. 2명의 기록위원과 1명의 장내 아나운서가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종훈 기록팀장에게 "KBO 사상 최초로 3000경기 출장의 역사를 쓴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와 심판들과 3000경기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기록을 많이 하긴 한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 KBO 이종훈 기록위원이 12일 잠실 한화-LG전이 끝난 뒤 틀린 부분이 없는지 기록을 검산하고 있다. ⓒ잠실, 이재국 기자
-KBO 공식 기록위원으로서 3000경기 출장 날이었다. 여느 날과 출근길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별다른 생각은 안 하려고 했다. 늘 하는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신경을 쓰면 긴장을 하니까 똑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기록위원도 긴장을 하는가.

"긴장이라기보다는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경기를 하는 순간 플레이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긴장을 많이 하면 피곤해지고, 그러다보면 집중이 안 되고, 실수를 하게 된다. 배탈이나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 특히 지방출장을 가서 문제가 생기면 기록위원을 교체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큰일 난다."

-그래도 3000경기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보니 기록을 많이 하긴 한 것 같다(웃음). 선수나 심판은 그라운드에서 뛰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다. 우린 체력적인 부분은 문제될 것이 없지 않나. 그래도 처음 3000이라는 숫자를 찍은 것은 의미가 있긴 있는 것 같다."

▲ 이종훈 KBO 기록위원이 12일 잠실 한화-LG전을 통해 개인 3000번째 KBO리그 경기를 기록한 공식 기록지. 왼쪽 맨 아래에 기록위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잠실, 이재국 기자
▲ 이종훈 KBO 기록위원이 12일 잠실 한화-LG전을 통해 개인 3000번째 KBO리그 경기를 기록한 공식 기록지 ⓒ잠실, 이재국 기자
-처음 기록을 했던 경기가 기억나는가.

"원래 동기가 5명이었는데 1명은 수습 기간 때 주간야구 기자로 갔다. 바로 이태일 전 NC 다이노스 대표(현 스포츠투아이 대표)다. 1명은 구단 프런트로 갔다. 그리고 3명이 남았는데, 나와 김제원 현 KBO 기록위원장과 김태선 기록위원이다. 3명이 잠실에서 하루씩 기록하면서 데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천취소가 되면서 하루씩 밀려 잠실이 아닌 인천에서 데뷔를 하게 됐다. 도원구장 시절인데 2층에 기록원실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태평양 홈경기였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년 전 일이다(웃음)."

-어떻게 KBO 공식 기록위원이 됐나.

"정식 야구선수는 해보지 않았지만 대학 시절 야구동아리 활동도 하고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3학년 올라가기 전에 매년 2월에 개최하는 KBO 기록강습회를 들었다. 당시 기록원이 되려고 이력서를 냈는데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안 됐다. 그리고 4학년 올라가기 전 2월에 또 한번 기록강습회를 갔는데, 몇 년 전 돌아가신 박기철 선배(전 스포츠투아이 부사장)께서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4학년 1학기 때부터 KBO 기록위원 일을 시작하게 됐다."

-KBO리그를 3000경기나 기록했는데, 기억에 남는 경기나 장면도 많았을 것 같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두산 김동주가 이곳 잠실에서 최초로 장외홈런을 쳤던 날(2000년 5월 4일 롯데전 3회 에밀리아노 기론 상대) 내가 기록을 했다. 그런데 최초다 보니 비거리를 기록하는 것이 문제였다. 각 구장마다 미리 실측을 해서 어느 지점이면 비거리 몇 m인지 정해놓은 약속이 있지만 목측으로 산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평소보다 늦게 비거리 150m를 기록지에 적었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

-이제 비거리 측정에 레이더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을 활용할 수 있지 않나.

"전 구장에 트랙맨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 같더라. 그래서 기록원 회의에서도 트랙맨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를 했다. 트랙맨 비거리도 간혹 오류가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때엔 기록원이 판단하는 것을 도입할까 논의 중이다."

-그밖에도 많은 기억이 있을 것 같은데.

"1997년 삼성 정경배가 5월 4일에 대구에서 LG전이었는데 사상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을 기록했을 때도 기억난다. 그날 삼성이 27-5로 이기면서 한 경기 최다득점을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3연전에서 삼성이 엄청나게 점수는 내자 LG 천보성 감독과 삼성 백인천 감독이 부정배트 시비를 벌이기도 했다. 또 박종호가 삼성 시절에 39연속경기안타 신기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기 기록을 맡았다. 연속경기 기록이 걸렸을 때 기록위원은 정말 힘들다. 실책인지 안타인지 애매할 때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간 날 깨끗한 안타가 나왔다. 나로 인해 기록이 중단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안타와 실책 판단 하나에 따라 타자와 투수의 희비가 엇갈릴 텐데. 항의도 많이 받지 않았나.

"애매한 타구를 놓고 실책을 주면 타자가 화를 내고 투수는 좋아한다. 반대로 안타를 주면 자책점과 평균자책점이 연관돼 있으니 투수는 싫어하고 타자는 좋아한다. 서건창이 2014년 200안타에 도전을 했을 때 애매한 타구에 실책을 줬는데 나중에 좀 서운해 하더라. 2005년 롯데 손민한이 평균자책점 1위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안타를 주면서 2자책점이 불어난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평균자책점 1위를 하는 투수는 한 시즌 자책점이 50점 안팎이었다. 그러니 2자책점이 얼마나 커보였겠나. 솔직히 시즌 끝날 때 혹시 나 때문에 평균자책점 1위를 못할까봐 속으로 미안하기도 했는데 1위를 하더라. 이대호도 2010년 7관왕 도전할 때 안타를 실책으로 주면서 안타 1개와 2타점이 날아가는 상황이라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7관왕을 해서 다행이었다(웃음)."

-아쉬운 점은 없었나.

"기록위원들이 가장 긴장되는 경기가 바로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이 진행되는 경기라고 한다. 언젠가 8회 2사까지 진행되다 깨진 경기는 기록해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데 정말 갖가지 기록 다 봤는데 이상하게 노히트노런 경기는 한 경기도 기록하지 못했다. 아쉽긴 하다."

-KBO 기록위원으로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야구를 좋아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즐겁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지방 출장을 계속 가야하는 것도 조금 힘들긴 하다. 특히 집안일이나 집안 대소사를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지금은 두 아들이 대학생이 됐고 군대도 가서 다 컸지만 지방 출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육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장례식장은 밤늦게라도 가면 되는데, 결혼식 같은 좋은 일에는 스케줄에 따라 참석 못할 때도 많았다."

▲ 이종훈 KBO 기록위원(가운데)이 12일 잠실 한화-LG전에서 후배 기록위원, 장내 아나운서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기록하고 있다 ⓒ잠실, 이재국 기자
-현재 KBO 공식 기록위원은 몇 명인가.

"1군(KBO리그)에 1경기당 2명씩 투입된다. 하루 5경기씩 열리니까 10명이다. 2군(퓨처스리그)은 상무와 경찰야구단까지 12팀이라 하루 6경기가 벌어진다. 1명씩 배정된다. 김제원 기록위원장까지 포함하면 총 17명이다."

-KBO 공식 기록위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직업으로선 재미있는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면 해볼 만한 일이다. 그리고 정말 야구를 좋아해야 기록원 일을 할 수 있다. 애정도 있어야하지만 늘 야구규칙은 물론 야구를 공부해야한다."

-남은 목표가 뭔가.

"3000경기를 달성했으니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정년까지 6~7년 남았나?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 단계다. 몇 경기 그런 목표를 가지고 기록위원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후배들이 잘 하고 있다. 은퇴하는 해에 선수들 은퇴경기처럼 1~2경기 기록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희망사항이다(웃음)."

-이종훈 기록위원이 보는 야구란 무엇인가

"새옹지마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고. 뻔한 승부 같은데 반전이 있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까."

스포티비뉴스=잠실, 이재국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