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령희'로 제 72회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연제광 감독. ⓒ스포티비뉴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경쟁부문에 초청돼 영화계 안팎의 기대가 뜨거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그와 함께 칸에 온 다른 젊은 감독이 있다. 영화제의 또다른 공식부문이자 학생 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단편 '령희'로 초청된 연제광(29) 감독이다. 2000편이 넘는 지원작이 몰린 뜨거운 경쟁을 뚫고 초청작 17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990년생인 연제광 감독은 상명대 영화과를 졸업한 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15분짜리 단편영화인 '령희'는 그의 영상원 졸업작품. 중국동포이자 불법체류 노동자인 홍매(한지원)가 단속 중 추락사한 룸메이트 령희를 따라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지만 날선 시선으로 담았다. 담담하게 담긴 비극은 자뭇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밥을 먹다가 칸영화제 초청 메일을 받고 체할 뻔 했다는 연제광 감독은 마침 봉준호 감독과 함께 칸에 오게 된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환히 웃음지었다. 스필버그를 보고 영화를 꿈꿨으며, 영화를 배우며 다르덴 형제를 좋아하게 됐다는 29살 감독. 그는 자신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다뤘다.

"불법체류 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가 추락사했는데 자살로 처리된 일이 있었다. 추락한 상태에서도 단속이 계속됐다더라. 그 뉴스를 접하고 충격적을 받았다. 그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졸업작품 찍어야 할 시기에 떠올렸다. 외가가 있는 충북 증평, 괴산에서 촬영을 했다. 그 쪽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그 사건에서 어떤 점이 크게 다가왔나.

"세게 다가왔다. 불법 체류자라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 이른바 '꽂혔던' 것 같다. 그래서 죽은 '령희'라는 캐릭터의 이름을 땄다. 죽음 이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 영화 '령희'로 제 72회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연제광 감독. ⓒ스포티비뉴스
-매 장면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은 채 인물을 비춘다. 령희의 추락 장면도 화면에 직접적으로 담지 않는다.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윤리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관찰자의 시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령희의 추락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 장면만큼은 연극적으로 찍었다. 떨어진다는 정보는 주지만 떨어진 사람은 카메라 바깥으로 나가 화면에 담기지 않는다. 약자가 불쌍하다고 해서 불쌍한 약자를 볼거리로 만들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 시각이 강하고 혹은 무조건 불쌍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안타까웠다. 엄청나게 악랄한 악인을 등장시킨다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약자를 위한다면서 약자를 볼거리고 전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급적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했다."

-가장 중점을 두고 표현한 부분이었나 보다.

"촬영도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동남아 노동자 분들이 막판에 나온다. 홍매 단독샷의 카메라 높이가 그 분들의 높이와 똑같다. 같은 약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자칫 잘못하면 홍매라는 약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다른 약자인 동남아 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이 또 다른 혐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관찰자의 시선을 담으면서 최대한 모호성을 유지했다. 홍매가 뭘 하는지 뚜겻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직접 관객들이 성찰하게끔 하고 싶었다."

-실제 사건과 달리 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나.

"홍매랑 령희라는 캐릭터는 어리고 순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고 여린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이전 작품 '표류'에서 한지원 배우하고 같이 하면서 한지원 배우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지원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썼고, 제의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서 즐겁게 촬여했다."

-한지원 배우와 두 편을 함께 촬영했다. 어떤 배우라 생각했나.

"표현이 너무 뻔한데, 스케치북 같다. 모든 색을 입혀도 다 소화할 수 있다. '표류'에선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새침데기 여고생 역할이었다. 간혹 내가 카메라에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독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는 배우가 간혹 있다. 한지원 배우는 전혀 없이 부탁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준다. 제가 원하는 걸 다 표현할 수 있는 배우와 촬영감독과 함께 했다."

▲ 영화 '령희'로 제 72회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연제광(오른쪽) 감독과 한상길 촬영감독. ⓒ스포티비뉴스
-한상길 촬영감독과 한예종에서 만든 4편 영화를 모두 함께했다고.

"한예종 전문사 동기다. 모든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제가 원하는 것 또는 그것보다 더 이상을 담아주신다. 저도 발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생각을 털어놓고 차분히 논의한다. 유하게 진행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칸에 오기 전 파리를 들러 여행을 했는데도 별 탈이 없었다."

-제작비는 얼마나 되나. 어떻게 마련했나.

"'령희' 제작비가 약 1000만원 정도다. 외가에서 찍으니 가족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외가 어른들이 좀 찔러주시기도 하고 밥을 많이 사주셨다. 몇몇 CG는 제작사 피디님 도움을 받았고. 잘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웃음)"

-왜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나.

"대여섯살 어린이 시절에는 '쥬라기 공원'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많이 보여주셨다. 저도 비디오 가게에 '쥬라기 공원'만 몇십 번을 봤다. 커가며 성향이 좀 달라졌다. 다르덴 감독을 영화를 좋아한다.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돼 칸영화제에 왔다. 마침 봉준호 감독도 이번 칸에 왔고, 다르덴 형제 감독도 초청됐다. 소감이 어떤가. 

"봉준호 감독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감사한 일이다. 영화감독 준비할 사람이라면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나. 다르덴 형제 영화도 보러 뛰어 갈거다. 신청 해놨다.(웃음)"

-처음 초청이 확정됐을 땐 어땠나.

"밥을 먹고 있었다. 칸 측에서 메일로 기본 사항을 확인한다. 학교 작품이 맞느냐, 연출한 게 맞느냐. 바로 대답을 했더니 바로 알려주더라. 무슨 맛인지 모르고 밥을 다 먹었다. 체하는 줄 알았다. 사실 '표류'(2017)를 기대하고 출품했다가 안돼서 이번에 오히려 덤덤했다.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아 이제 됐다' 싶더라. 계속 저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는데 은혜를 갚았다는 마음에 홀가분했다.

-한지원 배우에게 '초청이 수상이나 다름없다'고 했다고 들었다. 혹시 수상은 기대하나?

"심사는 심사위원분들이 하시니까. 물론 그렇지만 마움을 비우고 있다. 욕심을 비우자는 이야기다. 김칫국 냄새도 맡으면 안된다고 하고 다닌다.(웃음)"

-영화를 꿈꾸게 한 감독으로 스필버그와 다르덴을 이야기했다. 본인은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칸에 가는 감독? 천만영화 감독?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걸 어떻게 하면 최선의 노력을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까 생각한다. 사회적인 문제에 천작하겠다 그런 생각은 아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만들면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시지 않을까. 영화제에 가고 싶다, 관객 수를 많이 동원하고 싶다가 목표가 되면 정작 중요한 제 가품에 집중을 못하니까 집중을 하고 싶다."

-차기작 준비는?

"송대찬 프로듀서의 제작사 '테이크'에서 장편을 준비 중이다. 서울에서 발버둥치는 청년의 이야기다. 제가 지금 청년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시선을 최대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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