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전(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창작자는 그럴 겁니다. 믿을 건 본능 밖에 없으니까요. 거기에 의지해서 나갈 뿐입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을 들고 6번째로 칸영화제를 찾은 봉준호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영화제 개막 9일째인 22일 오전 10시45분(한국시간 22일 오후 5시45분) 프랑스 칸의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생충'(감독 봉준호·제작 바른손이엔에이)의 공식 기자회견에서다.

국내외의 뜨거운 호평이 쏟아진 지난 밤의 공식상영을 마치고 포토콜에 이어 기자회견에 나선 봉준호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막강한 배우군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최측은 영화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장르영화 감독 봉준호'를 언급했다.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저 자신이 장르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장르영화를 만든다. 규칙을 잘 따르지 않는다. 따르지 않는 틈바구니 사이로 사회 현실이 들어간다"고 답하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봉 감독은 "이번에 특히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배우들의 공이 크다. 제가 쓰는 모든 이상한 기이하고 변태적인 스토리도 이분들의 필터를 거치면 사실적이고 격조있게 표현된다. 여기에 쓰인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있다"고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 22일 오전(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포토콜에 참석한 송강호, 장혜진, 이선균, 조여정, 봉준호 감독, 박소담, 이정은, 최우식(왼쪽부터) ⓒ게티이미지
"장르가 뒤바뀌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고 전환이 빠르다. 이것을 설계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거나 스토리보드를 쓸 때 의식을 못한다. 그때 그때 상황에 충실하다. 바텐더가 뭔가를 만들 듯 '이건 40%' 식으로 배합하지 않는다. 벌어지는 상황의 뉘앙스에 집착한다. 보시는 분들은 장르적으로 구분하는 습관이 있지만, 만드는 저로서는 의식을 못한다. '이 장면은 무섭구나' 하지만 '이 시퀀스는 호러를 연출한다'는 식의 의식을 가진 적은 없다."

하지만 봉 감독은 "장르 자체가 보이는 시네마틱한 흥분을 좋아한다. 그것을 순응해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이번엔 그것을 충돌시키고 파괴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버어질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 22일 오전(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그는 한국 장르영화의 독특한 매력도 함께 언급했다. 봉준호 감독은 "2000년대 한국 장르영화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면서 "그 사이에 정치적인 것, 한국인의 삶과 역사가 편하게 들어가니까, 요즘엔 장르영화에 사회적 묘사가 없으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 1940년부터 장르 컨벤션을 만들어 온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를 강조했다.

21일 밤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기생충'의 공식상영은 8분의 기립박수가 이어지고 봉준호 감독이 "밤이 늦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레츠 고 홈, 생큐"를 외친 뒤에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을 만큼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상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기립박수는 칸영화제에서 상영되면 늘 있으니까 분과 초를 잴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옥자'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이나 틸다 스윈튼 등 많은 동료들이 축하해주는 따뜻한 분위기여서 그것이 좋았다"고만 짤막하게 언급했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공식상영이 21일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렸다. ⓒ게티이미지
그의 7번째 장편이자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영화인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이다.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족의 만남은 예측하기 힘든 사건을 잇달아 맞이하는 이야기에는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봉준호 감독은 공간의 쓰임이 돋보이며 특히 수직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는 평에 동의하며 "영화의 90%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60%가 부잣집에서 벌어진다"고 답변을 이어갔다. 2층, 1층, 지하실까지 수직적으로 이어진다. 저와 스태프는 이 영화를 계단 영화, 계단 시네마라고 많이 불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계단 하면 계단 마스터인 김기영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하녀', '충녀'를 보면서 계단의 기운을 받으려 했다. 전세계 영화 공간에서 수직적 공간을 계급 수직적 공간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 영화 '기생충' 스틸
영화 속 부자가족이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멋들어진 집에서 사면 반면 백수가족은 행인들의 걸음이 올려다보이는 반지하방에서 산다. 봉준호 감독은 특히 '반지하'라는 공간에 주목했다.

"반지하에서 오는 미묘한 늬앙스가 있다. 자막을 만들 때 반지하를 뜻하는 영어나 불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지하는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여전히 눅눅하고 곰팡이가 피는 공간이지만 간혹 햇빛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 더 힘들어지면 영화 속 누군가처럼 지하실로 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있다. 여지껏 있었던 많은 서구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기생충'의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상영 전 기자들에게 "부탁드립니다"라며 정중한 어조로 스포일러 유출을 피해달라고 청했던 봉준호 감독의 '스포주의' 태세 또한 여전했다. 그는 1배우 최우식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단어를 언급하자 "약간 스포일러의 기운이 있다"고 폭소하며 최우식을 향해 "약간 조심하도록 하자"고 언질했다. 봉준호 감독은 "내부적으로 붕괴가 되네 이거.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은 마지막으로 감독의 본능, 고충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기생충' 공식 행사를 마무리했다. 

"믿을 것은 본능밖에 없다. 거기에 의지해서 나갈 뿐이다. 목사는 성경이 있고 변호사는 법전이 있겠지만 감독은 그럴 게 없다. 본능에 의지했지만 뭔가 안 풀렸을 때는 멘토의 영화를 꺼내본다. 히치콕의 영화를 보고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를 본다. 본능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전부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22일 오전(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포토콜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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