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베일을 벗은 뒤 연일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뜨거운 갈채가 쏟아진 공식상영 다음날, 칸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설국열차'를 통해 엔진칸을 향해 가는 꼬리칸 사람들을, '옥자'를 통해 자비없는 자본주의와 공장식 축산에 반기를 든 이들을 그렸던 봉준호 감독의 관심은 여전히 사회의 양극화에 있다. 그러나 이제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을 살던 부자(富者)와 빈자(貧者)들은 혁명을 꿈꾸는 대신 씁쓸한 현실을 어떻게든 포개어 살다 파열음을 내고 만다. 

공개 이후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황금종려상 수상을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영화제 수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며 송강호 배우의 남우주연상을 기대한다고 슬쩍 답을 빗겨 간 봉준호 감독은 그러나 영화가 묘사한 우리의, 그리고 세계의 씁쓸한 현실에 대해서는 쉴 틈 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비되는 두 가족을 통해 계층과 계급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 저도 가난한 친구가 있고 부자 친구가 있다. 이게 우리의 삶 자체다. 왠지 이게 잘 해결이 안된다. 그것이 한국만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영화 상영하고는 외국 게스트와 이야기를 했다. 다들 '이거 한국영화지만 딱 우리나라 상황이야', '영국에서 리메이크 하면 좋을 것 같아', '홍콩 상황이랑 같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한다니 좋기는 한데 전세계가 이런 상황이라는 게 씁쓸하기는 하다. 2013년에 구상했다. '옥자'를 하기 전이다. '설국열차' 후반작업 할 때다. 거기도 빈부가 나온다. 그때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수평으로 배열됐다면 이번은 빈자와 부자가 수직적으로 배열된다."

-'설국열차'에 혁명의 기운이 강했다면 이번 '기생충'엔 체념의 느낌이 강하다. 시선이 싸늘해진 것도 같고.

"뜨거운 혁명이라거나 약자가 뭉친다거나 이런 게 절대 없다. 제가 생체 주기가 있나보다. '괴물'은 약자들끼리 도와주는 이야기다. 약한 아이가 하수구 속에서 더 약한 이야기를 구하려고 한다. '마더'는 반대다. 그건 약자끼리 가혹하게 할퀴는 이야기다. '설국열차'에 혁명의 기운이 있었다면 지금 그 주기가 된 것 같다. '싸늘하다'기보다는 '씁쓸하다'는 표현이 반갑다. 이들은 완전한 악당도 아니고 완전한 천사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다보면 사람이 이렇게 된다. 그것을 보다보면 씁쓸함과 슬픔이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피로감. 스스로 체감한다. 피곤함도 느끼고 슬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기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고쳐졌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있다. 그런 것들이 극복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요즘 누가 혁명을 꿈꾸고 하겠나. 이미 구시대 이야기가 됐다. 증발되어버린 시대라고 생각한다. 크고작은 시도로 조금이나마 나아지려고 한다. 때로는 그것조차도 쉽지 않다. 내가 기억하는 10년 전보다 나빠지면 어쩌지 불안과 공포가 들 때도 있다. 그런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영화가 아닌가 한다."

▲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기우 역할 캐스팅이 중요했을 것 같다

"미리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배우) 분이 있고 쓰면서 캐스팅하는 분이 있다. 이번 경우는 송강호 최우식 부자를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살인의 추억' 때 논두렁 시쿼스가 있다. 롱테이크를 메꿔야 하니까 대사가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 장면인데 변희봉 송강호 두 분이 장소팔 고춘자 만담 수준으로 하더라. 부자로 나오면 좋겠다 했다.(두 사람은 '괴물'에서 부자지간을 연기했다) 이번 부자는 같이 하는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최우식씨가 강호 선배 아들로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격 시나리오를 쓰며 이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박소담 사진을 봤는데 너무 닮았다 해서 최우식과 남매가 됐다."

-'옥자'에서 함께했던 최우식의 얼굴에서 이 시대 청년 얼굴을 발견했다고.

"제 아들도 21살이다. 아이돌같이 잘생긴 사람. 딱 봐서 연에인 같은 배우분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글래머러스한 스타도 많이 있어야 한다. 최우식은 그만이 가진 묘한 현실감이 있다. 내 옆집에서 기를 못 펴고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무 행동도 안 해도 측은해 보이는 느낌. 어깨 선과 귀도 가녀린 느낌도 있고 현실적이다. '옥자' 때는 그렇지 않았다. 김군이란 캐릭터가 쓰여져 있었고 오디션을 미리 봤다. 그땐 '거인'이란 인디영화가 결정적 이유였다. '거인'에서도 살벌하리만치 현실적인 캐릭터다. 그 느낌에서 이어져 오는 게 있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의 묘사가 색달랐다.

"전체가 다 회색존에 있는 것 같다. 부잣집 부부도 악당이라고 하기 그렇다. 미묘한 갑질을 한다. 그 방면으로 유명한 어느 일가족과 달리 델리케이트한 은은한 갑질을 한다. 기본적으로 세련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애들과 지내는 모습은 인간답기도 하다. 송강호의 가족들도 천사같은 애들은 전혀 아니고 뻔뻔스럽기도 하고 사기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악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회색에 있다. 약자들이 정의의 연대에 서서 일어서는 영화도 훌륭하고 가치가 있지만 우리가 매번 그런 영화만 찍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적나라하게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곧 파국이 다가올 것 같은.

"제가 불안함이 많다. 신경정신과 상담하던 의사가 불안과 강박증이 많은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느냐고 하더라. 불안하니까 프로덕션을 하고 강박증 집착이 있으니 그것을 영화로 해소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디테일하다'고 미화되는데 사실 저는 병이고 핸디캡이다. 한편의 영화에는 희로애락 등등 여러 감정이 있다. 제가 제일 자신있는 게 불안함, 서스펜스다. 제가 제일 바신있는 영역이랄까. 범죄, 취조 이런 건 '내 분야지' 하고 있다. 말씀하신 장면도 다분히 의도한 것이다."

-반면 취약한 장르가 있다면?

"로맨스도 물론 취약하지만 춤과 노래다. 해외 기자들이 많이 질문한다. 몬스터 범죄 사이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게 뭐냐고. 항상 대답은 뮤지컬이다. 뮤지컬 영화를 못 견디는 건,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을 못 견디겠다. 말하다가 노래가 시작될 때 못견디겠다.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저는 차라리 계속 노래했으면 좋겠다. 오페라처럼. 말하다 갑자기 노래하지 않나. 뮤지컬에 취약하다."

-그러나 인상적인 음악 시퀀스들이 있다.

"재미있었다. 정재일 감독이랑 재미있게 작업했다. 음악이 드라이브 하는 몽타주 시퀀스 같은 거다. 장르영화 감독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런 휘몰아치는 몽타주 시퀀스를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한다. 정재일 감독과 되게 정교하게 작업했다. 몇 번 샘플 음악을 교체하고, 편집을 음악에 맞추기도 함녀서 긴밀하게 작업했다."

▲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도 롱테이크가 많더라.

"이전 작품에서도 롱테이크를 좋아하기도 한다. 전체 영화가 1000컷이 넘은 게 딱 한 번인데 '설국열차'다. 최동훈 감독에게 물어보면 '한 2800샷 되나?' 이런다. 그러면 또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웃음) 이번에도 물어보니 1000샷을 안 넘었다. 영화의 리듬감이 샷의 숫자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배우들의 움직임 호흡 카메라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130억이란 제작비가 보고 나니 이해됐다.

"세트와 미술에 많이 들어갔다. 사건의 60%가 부잣집에서 벌어지는데 그런 집이 없을 뿐더러 그렇게 오래 빌려줄 수 있는 부잣집도 없다. 두번째는 4K아웃풋. 스마트폰도 4K 동영상을 찍지만 극영화가 2K로 최종 결과물이 나온다. 4K로 들어가며 들어가는 비용이 있다. CG 시각효과 비용이 상승하다. 또 표준근로를 적용하면서 좋은 의미의 상승이 있었다. 넓게 보면 표준적인, 중간 규모 영화의 기준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작이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순제 150억이 넘어야 하지 않을까."

-'기생충'을 본 평단은 봉준호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스스로 느끼나.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완성시키기까지 과정이 발등에 불을 끄기에 부족하다. 시나리오는 항상 데드라인이 있다. 17년간 써도 되는 게 아니다. 다음달까지 시나리오를 쓰고 나면 다음달까지는 스토리보드, 그래야 소품을 준비할 테고. 그 다음 촬영에 들어가면 더하다. 이 시퀀스는 2회차에 찍어야 할텐데 하다가 일기예보를 보고 바들바들 떨고. 그렇게 3월말 완성해 여기에 왔다. 이번 영화를 보고 진화했는지 보려면 5년 정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김혜자 선생님 스타체어 행사에서 '마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10주년이었다. '기생충' 완성하고 '마더'를 보니 이 장면은 이렇게 찍었구나. 차이가 보이더라. 그때쯤 본다면 지연된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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