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반포동, 박대현 기자] 한국 체육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가야할 길, 딛지 말아야 할 구덩이가 무언지 얘기를 나눴다.

총론과 각론이 두루 다뤄졌다. 발제자, 청중이 질문하고 토론자가 정성껏 답했다. 쌍방향으로 말이 오갔다.

스포츠 인권 증진 및 스포츠기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23일 서울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애초 정답이 없는 문제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 '옳은 방향'을 끌어 내고자 했다. 변화 필요성을 공감할 수만 있다면 의미가 생겼다. 그래서 120인에 이르는 많은 체육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론회 테이블에 오른 첫 주제는 스포츠 인권 증진과 참여 확대였다.

28살에 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된 박종균 나사렛대학교 교수는 "올해가 장애인으로 산 시간과 비장애인으로 지낸 시간이 (28년으로) 일치하는 해"라며 청중 귀를 잡아챘다. 불의의 사고 뒤 박 교수는 장애인 체육 선수로 활동했다. 지금도 교편을 잡으면서 장애인럭비협회에 관여한다.

열악한 장애인 체육 현실을 십수년간 피부로 느꼈다.

문제 제기가 디테일했다. 다만 해결안은 거시적으로 제시했다.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박 교수는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접근권'은 인권이자 기본권이요, 또 생명권이다. 기자들이 이 주제만큼은 꼭 다뤘으면 좋겠다. 장애인 체육 시설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기존 편의증진법 규격대로 진행하면 (장애인이) 이용하기 정말 어렵다.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경기용 휠체어를 예로 들어보자. 경기용과 생활용은 확연히 다르다. 장애인 화장실 한 번 갈 때도 애를 먹는다. 기존 법대로 개보수가 이뤄지면 (장애인 체육 선수는) 이용할 수가 없다. 시설을 만들 때 (편의증진법이 아닌) 또 다른 '규격'이 필요한 이유"라고 힘줘 말했다.

안전 재난 교육이 전무한 점도 꼬집었다. 엘리트·생활 체육도 그렇지만 특히 장애 체육인에게 재난은 치명적이다. 생명과 직결된다.

박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출장갔을 때 경험을 언급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체육관에 갔을 때 조금 놀랐다. 그곳에선 장애인 선수에게 재난 안전 교육을 철저히 시행했다. 요식이 아니었다.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생각했다. '한국에선 장애인 체육 대회가 열리는 동안 불이 나거나 지진이 일면 (선수들) 대피가 불가능하겠구나.' 어떠한 (안전) 대책도 없는 거로 알고 있다. 이 문제는 생존권과 관련돼 있기에 (국가가) 꼭 다뤄야 할 주제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정책을 입에 올리며 거시적으로 접근했다면 경기 광문고 임성철 교사는 미시적인 학교 체육 속살을 전했다.

"(발제자가 내놓은 권고안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 게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고 운을 뗀 임 교사는 "유치원생에게 권고된 주당 체육 시간이 몇 시간인 줄 아는가. '0분'이다. 미취학 아동 스포츠 인권이 전무하다. 방과 후 (따로) 돈을 낸 유치원생만 체육 수업을 받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중·고등학생 역시 2~4시간에 불과하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마련한 교육 정책 탓에 체육과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교과가 '절대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임 교사는 공부로 대학 간 축구부 이야기를 덧붙였다. 인상적이었다. 광문고는 운동부 학생이라도 모든 정규 수업을 이수해야 훈련할 수 있다. 이 작은 원칙을 지킨 게 기대 이상 효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임 교사는 '2018학년도 광문고 축구부 3학년 입학 후 전 교과 성적변화'를 자료로 제시했다.

인하대 체육교육과에 일반 학생 전형으로 진학한 사례가 자료에 적혀 있었다. 조 모군은 3학년 1학기에 내신 평균 97.1점을 챙겼다. 시·도별 학력 차를 고려하더라도 쉽지 않은 고득점이다.

임 교사는 "이 친구는 후보가 아니다. 우리 학교 주전 선수였다. 공부하고 (축구부) 훈련하고 할 거 다 하면서 일반 학생과 경쟁해 명문대학교에 진학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시 비(非)체육특기자 전형으로 경인교대 초등교육과에 진학한 경 모군 사례를 입에 올렸다. 1학년 1학기(평균 89.6점)부터 3학년 1학기(91.4점)까지 편차가 크지 않았다. 임 교사는 고교 3년간 운동과 공부를 함께하는 게 불가능한 미션이 아님을 자료로 제시했다.

"공부와 운동 병행은 선택 아닌 필수라는 말을 축구부원에게 늘 역설했다. (상술한) 두 학생이 조금 특별한 케이스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공부와 운동 두루 재능 있는 학생이 분명 있다. 이들에게 한 길만을 강요하지 않았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학교 체육 방향을 재정립할 때 꼭 들려 주고 싶던 사례들"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세션은 '스포츠기본법 제정 방향과 쟁점'을 주제로 삼았다. 발제자로 성문정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이 나섰다.

성 위원은 스포츠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포츠를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으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15개에 이르는 체육관계법률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라도 '큰 법률'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한국 체육법안은) 상호관련성이 적은 단일 법률 15개 집합에 불과하다. (스포츠기본법이 제정되면) 이들을 하나의 '체계'로 융합할 수 있는 운동장이 생긴다.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큰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헌법 개념이다. 스포츠기본법이 통치 체제 기초를 정하는 최고 근본법 노릇을 한다면 더 수월한 행정 처리와 현안 대응이 가능함을 어필했다. 대원칙이 생길 때 누릴 수 있는 효과를 체육계도 시도하자는 메시지다.

성 위원은 "사실 일본도 (기본법 제정에) 10년 걸렸다. 쉽지 않은 숙제인 건 맞다. 하지만 이 법이 지닌 가치가 한국 스포츠 제2의 도약에 긴요하게 쓰일 거라는 점은 의심이 없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도 거들었다. "국민에게 스포츠정책 큰 그림을 제시하고 여러 관련 법안을 아우르는 '우산' 노릇을 할 수 있는 스포츠기본법은 (현 시점에) 꼭 알맞은 카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성택 경희대 교수는 "(최근 2~3년간) 사회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체육계도 발맞춰 환골탈태해야 한다.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된 1962년, 서울 올림픽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민체육진흥법을) 1차 손질한 1982년, 어려운 체육 용어를 국민이 쓰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바꾼 2007년에 이어 네 번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급속도로 변하는 스포츠 환경에 적응하고 스포츠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스포츠기본법 도입은 당위성을 넘어 그 제정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포티비뉴스=반포동,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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