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지금 게임이 받는 탄압은 2500년 전 그리스 희곡이 '시민들을 토론하지 않게 한다'며 받았던 비판과 유사하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김성회 'G식백과' 제작자는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게임을 희곡과 영화, 티비에 비유했다. 

"신생 문화는 신고식을 치르게 마련이다. 연극이 그랬고 티비와 영화가 태생 초기 십자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이번 WHO 권고안은 (문화사를 고려해도) 그 수준이 지나치다"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티비는 20세기 내내 공격 받았다. 따가운 눈초리에 익숙하다. 바보 상자부터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종일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사람)까지. 동원되는 용어도 다양했다. 

김 제작자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치환한 WHO 발표는 (게임이 지닌) 순기능과 역기능을 두루 살피지 못한 확증 편향"으로 꼬집었다.

◆ 역성장 넘어 '산업의 종말'…"게임이 마약인가"

게임중독이 병(病)이 됐다. WHO는 닷새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2022년부터 게임중독을 공식적인 국제질병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게임을 술, 마약과 동등하게 놓았다. 물질 집착뿐 아니라 '행위' 중독도 병으로 보겠다는 선언이다.

논란이 일었다. WHO 회원국인 국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장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결정을 두고 시선이 엇갈렸다. 논쟁은 수순이다. 구석구석 부딪힐 지점이 적잖다. 게임중독 질병화 선언이 게임 산업과 e스포츠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이덕주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코드에 등재되면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산업이 입을 경제적 손실로 약 11조 원을 예상했다. 이 교수는 2011년 셧다운제 도입 뒤 매출 감소 사례를 참고했다. WHO 발표가 초강수 규제보다 훨씬 큰 손실을 입힐 거라 내다봤다.

삼중고로 표현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한국 시장 특수성을 언급했다. 견제구 날리는 중국과 강한 규제에 WHO 악재까지 더해졌다고 진단했다. 

현재 중국은 국내 게임 업체를 집중 마크한다. 자국 내 유통 허가권 발급을 몇 년째 막고 있다. 세계 최대 게임시장 진입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한국은 8년 전 강제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해외에는 없는 규제다. 여기에 게임중독세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게임 인식이 좋지 않다. 위 회장은 "(곳곳에 구덩이가 많은 한국은) WHO 권고안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봤다.

이미 성장세 둔화가 뚜렷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6.5% 상승한 13조9904억 원이다. 올해와 내년 매출 증가율은 각각 3.9%, 2.4%로 추정된다. 태동기와 도약기를 지나 정체기에 진입했다. WHO 권고안은 이 추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나쁜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산업에도 덩달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AR과 VR은 가상세계에 '접속'한다는 점에서 게임 특성을 공유한다. 현실에선 사적 행위에 속한다. 동질성이 있다. AI,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알파고 제작으로 유명한 구글 데미스 하사비스는 게임 개발자 출신이다. 그만큼 둘 사이 교집합 면적이 넓다.

디지털 게임을 넓게 해석하면 이들 영역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4차 산업이면서 동시에 '치료와 규제 대상'이 된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게임 규제 범위에 선을 그어야 한다. (게임 전반이 아닌) 특정 장르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장르로 국한하지 않으면 AR과 VR, AI 같은 신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경영자가 안심하고 사업해야 하는데 WHO 결정을 국내에서 어떻게 해석,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들 사업이 한순간에 마약 도박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다.

◆ '게임의 스포츠화' 꿈꾸는 e스포츠…공든 탑 무너질라

게임을 스포츠화하려는 e스포츠계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볼 수 있느냐 원초적인 논란도 반복 재생산될 확률이 높다.

전망이 밝았다. 스포츠 종목 정의가 시대 흐름에 발맞춰 변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 받는 날은 오래된 미래로 여겨졌다. 그러나 WHO 질병코드화 악재가 터지면서 공든 탑이 내려앉을 위기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채택에도 악영향이 염려된다.

e스포츠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다. 팬들 호응이 컸다. 대회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림픽 진입까지 내다볼 정도로 날씨가 맑았다. 게임 인식과 시장 가치 변화를 다룬 기사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돌부리에 걸렸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애초 진입이 유력했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투표에서 큰 표 차이로 낙마했다.

올림픽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9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게임은 폭력과 차별을 조장한다. (게임 속에선) 자아가 있는 대상이 (끊임없이) 죽는다"며 e스포츠 올림픽 입성에 반대 뜻을 밝혔다.

WHO 권고안은 이 같은 흐름에 바람을 더할 수 있다. 과몰입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게임을 질병 목록에 놓았다. 영화, 바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 중독자는 영화광이나 시네마키드로 불린다. 바둑을 10시간 넘게 둔다 해서 병자로 보진 않는다. 허나 게임은 예외다. 과잉 딱지가 붙으면 병원 가서 치료 받아야 한다.  

e스포츠는 묵직한 숙제를 안았다. 중독, 질병, 정신질환 프레임에 맞서게 됐다. '인지 싸움'에서 밀리면 경제 손실로 이어진다. 새 단어, 새 이미지로 새 판을 짜야 한다.

◆ 인재풀 좁아질 수도…'운집' 방해할 WHO 발표

시장 활성화는 운집(雲集)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야 한다. 북적북적해야 성장판이 열린다.

그러나 WHO는 게임인(人)을 꿈꾸는 잠재층에 제동을 걸었다. 불도장을 찍었다.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딸, 프로게이머 지망생 아들을 부모가 지원하기 망설여진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등록하면 낙인 효과가 생긴다. 10대 청소년이 (게임으로) 정신질환자 코드가 매겨지면 진학 취업할 때 문제가 될 것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녀를 정신병 환자로 냅두겠는가. (게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WHO 안이 복합적이면서 널리 파급할 경우의 수를 짚었다.

e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는 게이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루 열 몇 시간을 기량 향상을 위해 쏟는다. 게임이 곧 삶이다. WHO는 한 발 뺐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는 질병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WHO 타릭 자세레비치 미디어 담당관은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e스포츠 선수는 게임중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게임 이용 장애는 (게임 과잉으로) 개인과 가족, 사회적 교류에 현저한 장애를 겪고 학생과 직업인으로서 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e스포츠 업계는 WHO 이슈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게임이 아닌 스포츠라는 자부심이 강한데다 게임산업과 견줘 영향이 적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선수들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온도가 그렇다. 직업적 회의감이 고개 들 수 있다는 분위기까지 읽힌다. 게임을 향한 시선이 부정적인데 e스포츠 선수라고 하면 '중독' 색안경부터 끼고 보지 않겠냐는 우려 탓이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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