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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웅의 다저블루] 희귀병 아들 잃고…리치 힐의 '눈물'과 '새로운 인생'

양지웅 통신원 thomasyang24@gmail.com 2019년 06월 13일 목요일

▲ LA 다저스 투수 리치 힐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연습 때 고성을 내지르며 경기 도중 'F'자 들어가는 욕설을 서슴지 않는 LA 다저스 좌완투수 리치 힐은 현재 메이저리그 현역선수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투수다. 1980년 3월 11일생으로 만 39세 3개월을 넘어섰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불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던 페르난도 로드니(42)가 최근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해 곧 트리플A에서 뛸 예정이어서 이젠 힐보다 나이 많은 메이저리거는 야수를 포함해도 2개월 먼저 태어난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뿐이다.

동료들이 힐에게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것이냐"고 물을 때 농담반 진담반 "50세까지 할 것"이라고 답한다. 확실한 것은 올 시즌 다저스와 계약이 끝나도 힐은 선수 생활을 관둘 생각이 없다.

류현진을 비롯해 클레이튼 커쇼, 마에다 겐타, 워커 뷸러와 함께 다저스의 환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꾸려 가고 있는 힐은 무릎 부상으로 올 시즌 한 달 정도 늦게 시작했지만 13일(한국 시간) 현재 젊었을 때 못지않은 성적(8경기 45이닝, 3승1패, 평균자책점 2.20)을 보여 주고 있다.

◆ 별 볼 일 없던 투수, 36세부터 진가 발휘

힐은 20년 전 19세 때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됐으나 계약을 미루고 미시건대학에 진학한 뒤 2002년 6월 아마추어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에 시카고 컵스에 지명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3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마치고 25세 때인 2005년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리그에 승격해 빅리그에 데뷔한 힐은 36세가 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리며 진가를 발휘한다.

불펜 투수로 메이저리그를 시작했고 그 후 반복된 부상과 재활 등으로 마운드에 나설 수 없던 힐은 실제 나이에 비해 싱싱한 어깨를 갖고 있다. 힐은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923.2이닝, 마이너리그까지 포함하면 1717이닝을 던졌다. 이에 비해 31세의 클레이튼 커쇼는 13일 현재까지 2162.1이닝, 마이너리그 포함하면 2411이닝을 던졌다.

부상으로 별 볼 일 없던 성적을 보이던 힐은 시카고 컵스~볼티모어 오리올스~보스턴 레드삭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토론토 블루제이스~LA 에인절스~뉴욕 양키스 등을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 갔다.

▲ LA 다저스 리치 힐
◆ 희귀병 아들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

2014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힐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된다. 힐은 그때 겪은 가슴 아픈 사연을 지난 4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직접 기고했다.

2013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힐의 둘째 아들 브룩스는 다른 신생아에 비해 머리가 약간 작고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약간 구부려져 태어난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는 브룩스에게 교정 장갑을 끼워줬다. 그리고는 "혹시나 해서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힐 부부를 안심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브룩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병원을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힐 부부는 첫째 아들 브라이스도 돌봐야 했기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힐 부부는 장인에게 연락을 했고, 장인이 데리러 올 때까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브룩스와 좀 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힐은 지금도 그날을 회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둘째 아들과 조금이나마 더 보낼 수 있도록 하늘에서 누군가 배려해 준 것'이라 믿는다.

며칠이 지나고 2014년 새해가 되자 의사들이 힐 부부를 병원으로 부른다. 의사들이 각종 차트와 이해하기 힘든 의학 용어를 사용해 가며 설명을 하는데 힐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힐의 둘째 아들 브룩스는 '뇌이랑없음증(Lissencephly)', 쉽게 말해 뇌가 기형인 희귀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힐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병은 치료 방법이 없고 각종 성장 장애와 발작 등의 심각한 건강 문제로 생후 2~5세 이상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간혹 20세를 넘긴 사례가 있었으나 걷지도 못하고 침대에서만 누워 있는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 LA 다저스 투수 리치 힐 부부가 둘째 아들을 희귀병으로 잃고 연구 비용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출처는 힐 부부의 캠페인의 현재 모금 상황과 기부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 홈페이지.
브룩스를 임신 기간에, 그리고 분만할 때도 전혀 이상 증세를 몰랐던 힐 부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며칠 뒤에는 브룩스의 소변 검사를 통해 '선천적 신장 증후군(congenital nephrotic syndrome kidney issues)'도 갖고 있어 정상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갖고 태어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50명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힐 부부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신장 이식 수술을 해 주려 했다. 하지만 브룩스의 나이와 체중 조건으로는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힐 부부는 그 어떤 부모도 상상하는 않는 최악의 일을 계획해야 했다. 새로 태어난 아들을 행복하게 키우는 계획이 아닌, 어떻게 죽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고민 끝에 힐 부부는 브룩스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더 이상 병원의 각종 모니터 기계에 묶여있는 환자가 아닌, 그저 정상적인 아이처럼 며칠이라도 집에서 같이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

힐은 집에서 당시 한 살 반이었던 큰아들 브라이스가 둘째 아들 브룩스를 위해 장남감도 내어주고 같이 놀아 주는 것을 보고 큰 힐링을 얻기도 했다. 힐 부부는 둘째 아들의 마지막 순간에 메이저리그 경기장의 비공식 주제가와 같은 '야구장에 날 데려다 주오(Take me out to the ball game)'라는 노래를 귀에 속삭이며 불러 줬다고 한다.

▲ 아들을 잃은 뒤 다시 야구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리치 힐이 힘차게 투구를 하고 있다.
◆ 다시 불타는 야구 열정…희귀병 질환 연구 위해 재단 설립

2014년 2월 24일 브룩스는 세상을 떠났다. 힐은 장례식을 마치고 10일 뒤에 스프링캠프로 향했다. 아내와 큰아들도 동행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그저 슬퍼하기보다는 뭐라도 했어야 했다. 야구에 집중하는 것이 힐 가족에게는 가장 필요한 힐링 방법이었다.

힐은 그때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겼다. 경기를 이기기 위해 공 하나에 집중하고 열정이 부족해 보이는 어린 선수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팀 동료들은 진지할 때도 있지만 욕설을 섞어 가며 장난도 받아주는 힐을 존중하고 승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한다.

브룩스를 떠난 보낸 뒤, 힐 가족은 아들을 잊기보다는 항상 기억하려 노력한다. 집앞 놀이터 이름을 동네주민들과 협의한 뒤 '브룩스 힐 플레이 그라운드'로 변경하고 첫째 아들 브라이스와 친구들이 그곳에서 놀 때마다 브룩스를 떠올린다. 첫째 아들이 항상 동생 이름을 잊지 않고 입에 올릴 때마다 병원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큰아들과 같이 보내게 한 결정이 옳았다는 걸 느낀다고 한다.

힐 부부는 둘째 아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도움을 준 병원과 의료진을 위해 100만 달러(약 12억 원)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전적 희귀병 질환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 다른 부모들이 같은 불행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 LA 다저스 류현진이 지난 3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 전 스폰서 업체에서 선정한 '5월의 선수' 상금으로 받은 1000달러(약 120만원)를 리치 힐과 아내 캐이틀린 힐의 자선재단 '필드 오브 진스(Field of Genes)'에 기부했다. 류현진이 1000달러를 기부하자 한국에서는 "수입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미국의 기부 문화는 소액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재단의 설립 취지를 이해하고 동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슈퍼스타가 공개된 장소에서 거액을 기부하면 일반인들이 소액 기부를 주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소액이라도 좋으니 팬들도 부담 없이 기부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를 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힐 부부가 시작한 ‘필드 오브 진스(Field of Genes)’의 현재 모금 현황과 기부방법은 아래 링크된 주소를 통해 알 수 있다.

https://because.massgeneral.org/campaign/field-of-genes/c219538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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