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루 벤투 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저희가 뭐, 프랑스, 벨기에 이런 진짜 강호도 아니잖아요. 저는 선수들에게 항상 얘기해요. '우리가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진다.'" (손흥민)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은 지난해 여름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한 뒤 패배는 카타르와 2019년 AFC UAE 아시안컵 8강전 0-1 석패가 유일하다. 

좀처럼 지지않으며, 경기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시안컵 8강 탈락과 주전 선수가 고착화되었다는 지적, 에이스 손흥민 혹사 논란 등으로 벤투호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6월 A매치 호주전은 1-0 승리라는 결과에도 예상 가능한 선발 명단,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고 온 손흥민의 풀타임 기용 등이 논란이 됐다.

11일 이란과 1-1로 비긴 친선 경기는 이란전 8년 무승 징크스를 깨지는 못했으나 내용과 운영 측면에서 이러한 논란을 불식시켰다. 나아가 주장 손흥민이 최근 승승장구하는 흐름의 한국 축구, 그리고 대표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벤투식 선수 운영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줬다. 

◆ 아시아도 만만치 않는 현실, 실전형 평가전 치르는 벤투호

우승이 목표였던 아시안컵이 있었지만, 4년 계약을 맺은 벤투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2022년 FIFA 카타르 월드컵이다. 그리고 오는 9월 실전인 아시아 2차 예선이 시작된다. 장도에 오르기 전 마지막 친선 경기를 마친 손흥민은 지난 1년 간 대표팀이 치른 경기 중, 오히려 아시아 팀을 상대로 더 어려웠던 상황과 아시아 예선에 대한 각오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사실 쉬운 팀은 없어요. 뭐, 저희가 뭐 프랑스 벨기에 이런 진짜 강호도 아니잖아요. 저희가 저는 선수들에게 항상 얘기해요.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2차 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인데, 어떤 상대도 만날 수 있는데 그런 상대로 우리가 항상 최고의 모습을, 정신적인 부분부터 보여주지 않으면 어려운 경기를 항상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걸 선수들에게 주입하려고 노력하고 저부터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요. 9월부터 긴 여정이 시작되잖아요. 선수들도 소속팀 휴가 가는 선수 프리시즌하는 선수 모두 책임감 갖고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주장 손흥민은 이전의 주장 기성용이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를 성실하게 임한다. 모든 선수들이 다 빠져나간 뒤까지 이어지는 답을 한다. 귀찮거나 지친 기색없이 열정적으로 손동작을 써가며 취재진과 대화한다. 손흥민은 대표팀의 주장으로 경기 중 심판과 대화는 물론 경기 전후 언론과도 대화하며 대표팀을 대표한다. 어느새 베테랑이 된 손흥민은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사실 호주전도 손흥민의 표정에 힘든 기색이 있었다. 이란전에도 전반전이 끝난 뒤 주저앉았다.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토트넘 홋스퍼에서 뛸 때처럼 한창 좋은 컨디션에서 내려온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뛸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것은 아니다. 대표팀은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손흥민은 대표팀이 매 경기 전력을 다해야 결과를 내며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 6월 A매치 두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손흥민 ⓒ곽혜미 기자


지난 몇년 간 대표팀의 최대 숙제는 손흥민 활용법이었다. 토트넘에서 시원하게 득점하던 손흥민이 대표팀에서는 고전하고 침묵하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해 신태용 전임 감독이 찾은 해법은 투톱이었다. 

벤투 감독 부임 후에도 손흥민은 여러 포지션에 기용됐으나, 6월 A매치 두 경기에서 드러났듯 황의조와 투톱으로 설 때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벤투 감독은 호주전에 손흥민과 황희찬을 투톱으로 뒀고, 후반전에 황의조를 투입했다. 이란전에는 손흥민과 황의조가 투톱으로 나섰다가, 후반 막판 이정협이 들어왔다. 

손흥민은 대표팀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전술적 구심점이다. 벤투 감독은 호주전에 3-5-2 포메이션을 점검했고, 이란전에는 다시 플랜A라고 할 수 있는 4-1-3-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감독마다 성향이 다른데, 벤투 감독은 실전 경기에서 실험하지 않는 유형이다. 아시안컵 직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처음 시도한 스리백은, 호주전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준비하는 플랜B다. 플랜A를 확고하게 갖추고 플랜B를 조금씩 살핀다. 

플랜A든 플랜B든 공을 소유하고, 윙백을 올린 뒤 2선과 전방의 활발한 스위칭으로 공격하는 기조는 같다.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 기조에 적합한 선수를 쓴다. 벤투 감독이 쓰는 선수만 쓴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가 원하는 플레이를 실전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선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란전에 선발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백승호는 벤투 감독의 선수 기용이 보수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백승호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다. 특히나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어린 선수들은 침착하게 인내를 갖고 기회를 주려고 한다. 백승호의 경우 두 번째 소집만에 A매치 데뷔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파악했을 때 백승호가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중앙에 위치할 때 본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소집에는 최대한 우리가 훈련 때 기대하는 역할, 원하는 부분을 많이 설명하고, 훈련을 통해 그런 부분을 알려줬다. 그렇게 오늘 기회를 얻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상당히 잘 보여줬고,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특히 볼을 갖고 있을 때 플레이가 상당히 좋았고, 이란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자신감있게 자기 캐릭터를 보여줬다. 피지컬도 강한 면을 보여줬다. 백승호라는 어린, 만 22세에 불과한 선수가 이런 경기를 보였다. 앞으로 상당히 젊은 조합의 미드필더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큰 우리의 이점이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황인범과 나상호를 중용했다. 이전까지 두 선수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시안게임에서 눈에 든 뒤 이후 소집에서 벤투 감독이 원하는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꾸준히 선발되고 기용된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황인범이 16번의 A매치를 치른 것 자체가 벤투 감독의 성향을 보여준다.

손흥민도 지난 1년 사이 새로운 세대가 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형들에게 의존하기 보다 새로운 얼굴 계속 발탁해서 오늘 같이 기회를 줬을 때 선수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통쾌함 느끼잖아요. 계속해서 발 맞춰서 좋은 모습 보여주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에 자리 잡는 게 중요해요."

▲ 백승호 선발 출전은 벤투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깬 열쇠였다. ⓒ곽혜미 기자


◆ 훈련장 안에서 경쟁, 벤투호의 내부는 뜨겁고 치열하다

25명을 6월 A매치에 소집한 벤투 감독은 19명의 선수를 기용했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 경기를 선수들에게 고루 기회를 주는 장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실력을 증명해야 뛸 수 있다고 했다. 경기당 6명의 교체 카드를 다 쓰지 않으면서도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주며 경기한 것이다. 벤투 감독 부임 후 16경기를 모두 뛴 황인범은 선발 출전하는 선수의 풀이 넓지 않아 내부 경쟁이 없는 게 아니냐는 외부 지적에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팬 분들은 선수들이 어떤 훈련을 하고, 얼마나 간절하게 뛰시는지 모르실 수도 있다. 참 어렵다. 훈련 때도 그렇고 항상 주전, 비주전 없이 바꿔가면서 훈련을 진행한다. 그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린다. 어쨌든 선수들이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을 때 이야기가 나온다. 선수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 선수들 모두 감독님이 좋은 감독님이시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황인범)

벤투호에 처음 소집된 김보경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보경은 "처음 들어가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대표팀 안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수준 높은 축구를 하고 있고, 벤투 감독이 선수를 보는 확고한 기준이 있다. 새로 소집된 선수들은 그런 점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기회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벤투 감독은 결과만큼 과정을 중시한다. 원하는 플레이로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순수주의자' 계열의 감독이다. 결과를 원하는 이유는 실리적이다. 친선 경기 결과가 반영되는 FIFA 랭킹도 향후 참가할 대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본인도 말했다. 전술, 전략을 점검하고 가다듬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경기를 해야 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친선 경기에도 목숨 건다고 비춰지는 것은, 벤투 감독이 팀을 만드는 방식이다. 벤투 감독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벤투 감독의 성향이 그렇다. 

마크 빌모츠 이란 감독도 "이번 경기는 친선 경기임에도 굉장히 좋은 경기였다"며 경기가 치열하고 진지했다고 말했다. 이란도 아시아 예선 당시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란다운 실력을 보여줬다. 

"양 측이 모두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한국 팀이 아주 발전한 수준의 기량을 보였다. 양 쪽에서 역습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란은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잘 막았다. 10번의 득점 기회를 우리가 만들었고,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관객에겐 흥미로웠을 것 같다." (빌모츠 감독)

▲ 16경기에서 한 번 밖에 지지 않은 벤투호 ⓒ곽혜미 기자


◆ 이긴 경기서 비판 받고, 비긴 경기로 반전 '과정으로 말하는' 벤투호

벤투 감독은 친선전 결과로 자화자찬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지난 8년 간 가장 내용이 좋았던 이란전을 마친 뒤에도 "일단 무승부는 공정한 결과였다. 경쟁적인 경기고 팽팽한 경기였다"며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양 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다. 명백한 기회는 많이 있지 않았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양 팀이 수비적으로 견고하게 한 덕분에 골 찬스가 많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지배한 때도 있었고, 반대로 상대가 경기를 잘 통제하고 풀어나간 시간도 있었다. 워낙 강한 상대였기에 라인을 내려서 수비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상당히 치열했던 경기다." (벤투 감독)

6월에 치른 호주전과 이란전은 아시아 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에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두 팀 다 어려웠다. 다른 유형의 팀이었다. 우리 전략, 전술적인 접근법도 두 경기에서 달랐다. 어쨌든 난 두 팀에게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피지컬적으로 두 팀 다 훌륭했고, 호주와 이란 모두 우리보다 피지컬이 강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다른 솔루션을 찾아야 했다. 두 팀 모두 경험있는 팀이다."

벤투 감독은 이란 징크스를 깨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았다. 벤투 감독에겐 첫 번째 이란전이었을 뿐이고, 아시아 예선을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란전 전적만 놓고 평가를 하고, 분석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과거 우리가 치른 이란전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우리가 이란을 상대로 득점하지 못한 것은 알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란을 상대로 득점도 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현재까지 치른 16경기들을 잘 분석하고, 각기 다른 상대를 만나서 이렇게 경기를 많이 치렀는데, 잘 분석해서 9월 전까지는 이를 토대로 앞으로 예선 치르면서 각 경기마다 올바른 전략 전술을 갖고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축구, 원하는 플레이를 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처럼 강한 상대가 있어서 우리가 계속해서 원하는 축구를 보여주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치열하게 계속해서 90분 동안 치열한 경기를 할 수 있게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벤투호의 6월은 역설적이었다. 호주전은 답답했지만 이겼고, 이란전을 좋은 플레이를 했지만 이기지 못했다. 축구는 결과론이라지만, 이긴 경기에서 지적 받고, 비긴 경기에서 평가를 바꿔놨다. 두 경기 모두 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용과 결과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벤투 감독은 여론의 논란에 개의치 않고 팀을 만들고 있다. 논란 없는 팀은 없다. 아시아 예선을 앞둔 불안감이 지난 두 번의 월드컵이 남긴 악몽의 트라우마인지, 벤투 감독의 팀 운영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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