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소년 육성 전문가로 우뚝 선 정정용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유소년만 보고 버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한 우물만 파고 덤빈 정정용(50)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이 값진 결실을 맺었다. 16일 오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의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크라이나와 결승에서 1-3으로 패하며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국 남자 축구 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결승 진출과 준우승이라는 업적은 그 자체가 놀라운 성과다. 이강인(발렌시아CF), 김정민(FC리퍼링),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 최민수(함부르크SV)를 제외한 17명이 K리거였다. 18명은 K리그 유스팀 출신이다.

정 감독은 이들을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가까이 보면서 육성했다. 개개인의 장, 단점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가용 자원을 확인했다. 2017년 18세 이하(U-18) 팀으로 출발해 팀을 만들던 정 감독에게 지인을 통해 이런저런 선수 선발 부탁이 들어와도 신념을 갖고 막아내며 최고의 팀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정 감독의 지인 A씨는 "국내에서 훈련하는데 해당 연령대 한 학부모가 와서는 '우리 아이 괜찮으니 한 번만 봐달라'며 부탁을 했다더라. 말이 부탁이지 얼마나 부담이 큰가. 나중에 확인하니 그 선수는 실력을 인정받아서 프로팀에 가긴 갔더라. 그렇지만, 절차도 없이 정 감독에게 와서 뽑아달라고 하면 그게 되겠는가. 정 감독도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전했다.

소위 '비주류'로 분류되는 정 감독은 절차가 무시되면 팀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부의 압력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축구 명문 청구중, 고교와 경일대를 거쳐 1992년 이랜드 푸마에서 성인 선수 시작을 했지만 1997년 부상으로 조기 은퇴해, 축구 선수의 피곤한 삶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원 축구 지도자 생활을 거쳤고 2006년, 할렐루야 코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이영무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전임지도자로 입문했다. 이후 대구FC 수석코치를 하러 갔다가 다시 전임지도자로 돌아와 선수들을 키웠다.

▲ 정정용 감독(가운데)이 공오균(왼쪽), 인창수 코치(오른쪽)과 함께 관중들의 격려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축구협회가 초기에는 전임지도자 체계를 엉성하게 구축했다. 정 감독도 지원이 부족해 힘들었다. 권역별로 좋은 선수들을 추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 다 챙기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 감독이 '비주류'여서 위로부터의 압력에서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다만 학부모나 권역에서 이름 좀 있는 지도자들이 '우리 선수 뽑으라'고 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가족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일본과 16강전에서는 초등학생인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한 골 넣으면 만원, 두 골 넣으면 2만원을 줄 테니 꼭 이기라고 하더라. 애한테 용돈 받게 생겼다"며 웃었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가족 전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 감독은 대구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 윤규현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2009년 14세 이하(U-14) 대표팀을 맡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유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시기 아내는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이를 지켜보지 못했던 정 감독의 마음에 미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정 감독이 당시 아내 출산을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회 끝나고 알아서 다들 놀랐다.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대회를 치르고 있었고 북한과 결승전인데 집중해야 해서'라고 하더라. 승리욕이 무서우면서도 안타깝더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또 다른 지인 B씨는 "축구 지도자 가족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아내 윤 씨도 홀로 아이를 양육했다. 무명의 지도자였다가 전임 지도자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업을 마련한 된 정 감독이 항상 미안하다고 더 잘하겠다더라"고 전했다. 이번 준우승으로 어느 정도는 부채를 갚은 셈이다. 윤 씨의 희생 덕분에 유소년 전문가가 탄생, 새로운 역사를 썼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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