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은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결승 진출 쾌거를 이뤘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으나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눈부신 성적, 극대화된 조직력, 이강인을 비롯한 스타 탄생, 그리고 '원 팀'까지,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당연한 수순으로 U-20 대표팀 선수들의 성인 대표팀 발탁 여론이 이어졌다. 예상된 일이었다.
파울루 벤투 성인 대표팀 감독이 가장 많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소극적인 선수 기용 변화다. 쓰던 선수만 쓰고 새로 선수를 발탁하더라도 당장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월드컵 예선이 아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평가전 기간에 이같은 선수 기용이 계속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엄밀히 따지면 선수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물론 소극적이었던 것도 맞지만 이란과 평가전에서 조현우, 백승호를 투입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은 다가올 9월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시작한다. 2차 예선으로 특성상 전력이 약한 팀들과 맞붙는다. 그리고 U-20 대표팀의 눈부신 성과를 냈고 자연히 이들을 성인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벤투 감독의 특성상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성인 대표팀에 승선할지 알 수 없다. 벤투 감독은 기량을 보고 그 후 소집을 결정한다. 또 소집을 하더라도 당장 그 선수를 투입하지 않는다. 일단 훈련에서 보고 난 후 투입을 결정하며, 첫 소집에 바로 출전시키지 않는다. 지난 3월 처음 소집된 이강인, 백승호는 경기에 뛰지 않았다. 비단 이강인, 백승호 뿐 아니라 이진현, 김정민 등도 일단 소집된 후 지켜보다 교체 등으로 투입됐다. 벤투 감독의 선수 기용은 어느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검증되고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투입한다.
우려되는 일이다. 벤투 감독은 지금도 팬들로부터 선수 기용을 두고 욕을 먹고 있다. 근거 있는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비난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같은 분위기에 절정에 달한 인기를 구가하는 U-20 대표 선수들은 발탁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나올지 안 봐도 비디오처럼 그려진다.시계를 지난 2017 U-20 월드컵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U-20 대표팀은 역대 최고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다. 프로가 아닌 대학 선수가 많았지만 일단 전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치른 전북 현대와 평가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이를 두고 '프로와 실력 차이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현 U-20 대표팀 선수 중 성인 대표팀에 올라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은 한 차원 다른 선수로 평가받는다.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이광연, K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인 조영욱, 전세진도 있다.
U-20 월드컵에 참가한 이광연, 이재익의 소속팀 강원 김병수 감독은 "무조건 출전 기회는 주지 않는다"고 했다. 어찌 보면 벤투 감독과 비슷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어도 일단 보고 나서 기회를 줘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현장에 있는 감독들의 생각과 대표팀을 지켜보는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다. U-20 대표팀 선수들이 9월 월드컵 예선에 발탁되지 않는다면 앞뒤 상황 고려 없이 엄청난 비난이 나올 것이다. 정당한 비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옳다고 할 수 없다.
선수 발탁 권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수는 감독이 뽑는다. 여론에 따라 선수를 뽑는다면 굳이 감독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차라리 '프로듀스 101' 국민 프로듀서처럼 국민 감독들이 문자 투표로 선수 뽑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다.
U-20 선수들을 무조건 성인 대표팀에 보내야 한다는 여론은 결코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정정용 감독은 귀국 현장에서 무분별한 비판을 멈추고, 그 비판을 자신에게 해달라면서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다"고 했다.
'무조건 발탁하라'는 벤투 감독을 흔드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을 흔드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선수들이 괜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론에 의해 발탁된 선수들이 부담감에 제대로 뛸 수나 있을까? 부담이 많으면 실력도 나오지 않는다.
현재 U-20 대표팀 선수들은 3년 후 카타르 월드컵이 돼도 만 23세 이하다. 7년 후 월드컵 때는 전성기에 오를 27세다. 앞길이 구만리다. 당장 이번 9월 월드컵 예선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아도 추후 충분히 발탁될 수 있다.
급한 마음에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주면서 올려 쓸 필요가 있을까? 여론에 휘둘려 월드컵을 준비하는 벤투 감독을 흔들 필요가 있을까? 성인 대표팀이나 U-20 대표팀 선수들이나 지금은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릴 때가 아닐까 싶다.
스포티비뉴스=김도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