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U-20 대표팀 선수들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도곤 기자] 벌써부터 겁난다. 왜 안 뽑았냐고 할까 봐.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은 폴란드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결승 진출 쾌거를 이뤘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으나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눈부신 성적, 극대화된 조직력, 이강인을 비롯한 스타 탄생, 그리고 '원 팀'까지,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당연한 수순으로 U-20 대표팀 선수들의 성인 대표팀 발탁 여론이 이어졌다. 예상된 일이었다.

파울루 벤투 성인 대표팀 감독이 가장 많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소극적인 선수 기용 변화다. 쓰던 선수만 쓰고 새로 선수를 발탁하더라도 당장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월드컵 예선이 아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평가전 기간에 이같은 선수 기용이 계속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엄밀히 따지면 선수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물론 소극적이었던 것도 맞지만 이란과 평가전에서 조현우, 백승호를 투입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은 다가올 9월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시작한다. 2차 예선으로 특성상 전력이 약한 팀들과 맞붙는다. 그리고 U-20 대표팀의 눈부신 성과를 냈고 자연히 이들을 성인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벤투 감독의 특성상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성인 대표팀에 승선할지 알 수 없다. 벤투 감독은 기량을 보고 그 후 소집을 결정한다. 또 소집을 하더라도 당장 그 선수를 투입하지 않는다. 일단 훈련에서 보고 난 후 투입을 결정하며, 첫 소집에 바로 출전시키지 않는다. 지난 3월 처음 소집된 이강인, 백승호는 경기에 뛰지 않았다. 비단 이강인, 백승호 뿐 아니라 이진현, 김정민 등도 일단 소집된 후 지켜보다 교체 등으로 투입됐다. 벤투 감독의 선수 기용은 어느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검증되고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투입한다.

▲ 생각이 많아질 벤투 감독 ⓒ 한희재 기자
우려되는 일이다. 벤투 감독은 지금도 팬들로부터 선수 기용을 두고 욕을 먹고 있다. 근거 있는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비난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같은 분위기에 절정에 달한 인기를 구가하는 U-20 대표 선수들은 발탁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나올지 안 봐도 비디오처럼 그려진다.

시계를 지난 2017 U-20 월드컵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U-20 대표팀은 역대 최고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다. 프로가 아닌 대학 선수가 많았지만 일단 전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치른 전북 현대와 평가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이를 두고 '프로와 실력 차이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현 U-20 대표팀 선수 중 성인 대표팀에 올라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은 한 차원 다른 선수로 평가받는다.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이광연, K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인 조영욱, 전세진도 있다.

U-20 월드컵에 참가한 이광연, 이재익의 소속팀 강원 김병수 감독은 "무조건 출전 기회는 주지 않는다"고 했다. 어찌 보면 벤투 감독과 비슷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어도 일단 보고 나서 기회를 줘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현장에 있는 감독들의 생각과 대표팀을 지켜보는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다. U-20 대표팀 선수들이 9월 월드컵 예선에 발탁되지 않는다면 앞뒤 상황 고려 없이 엄청난 비난이 나올 것이다. 정당한 비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옳다고 할 수 없다.

선수 발탁 권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수는 감독이 뽑는다. 여론에 따라 선수를 뽑는다면 굳이 감독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차라리 '프로듀스 101' 국민 프로듀서처럼 국민 감독들이 문자 투표로 선수 뽑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다.

U-20 선수들을 무조건 성인 대표팀에 보내야 한다는 여론은 결코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정정용 감독은 귀국 현장에서 무분별한 비판을 멈추고, 그 비판을 자신에게 해달라면서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다"고 했다.

'무조건 발탁하라'는 벤투 감독을 흔드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을 흔드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선수들이 괜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론에 의해 발탁된 선수들이 부담감에 제대로 뛸 수나 있을까? 부담이 많으면 실력도 나오지 않는다.

현재 U-20 대표팀 선수들은 3년 후 카타르 월드컵이 돼도 만 23세 이하다. 7년 후 월드컵 때는 전성기에 오를 27세다. 앞길이 구만리다. 당장 이번 9월 월드컵 예선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아도 추후 충분히 발탁될 수 있다.

급한 마음에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주면서 올려 쓸 필요가 있을까? 여론에 휘둘려 월드컵을 준비하는 벤투 감독을 흔들 필요가 있을까? 성인 대표팀이나 U-20 대표팀 선수들이나 지금은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릴 때가 아닐까 싶다.

스포티비뉴스=김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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