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영화 '기생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 관객들의 훌륭함을 막 느끼고 있어요. 놀라운 관객들이에요. 감사드려요."

곽신애(51) 바른손이앤에이대표를 만난 오후, 어느덧 개봉 4주차를 맞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800만 관객을 넘겨 900만을 향하고 있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한국 관객을 만난 '기생충'은 숫자 이상의 열기 속에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의 장면 장면, 대사와 소품 하나 하나를 두고 이런 저런 분석과 해석이 이어진다. 영화의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에게도 감동의 연속이다.

"'아, 재밌어, 좋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람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N차 관람부터 해석, 정서적 감상까지…적극적인 관람태도, 그런 에너지가 감사하죠. 숫자 이상의 밀도가 느껴져서 너무 좋더라고요. 그 역시 특이한 체험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2009)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한국영화 '기생충'이 지난 제 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건 한국영화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지난달 5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칸영화제 폐막식, 그 영광의 순간에 그녀도 있었다. 황금종려상 호명과 함께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이 손짓하며 무대 위로 불러올린 두 사람이 바로 주인공 송강호 그리고 제작자 곽신애 대표였다.

"수상 예감이라기보다, 상영이 끝난 다음날부터 길에서 느끼는 반응이 달랐어요. 프리미어와 언론시사를 하고 나니 공기가 변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프리미어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름 신경을 썼는데, 페막식은 메이크업도 안하고 있다가 슥슥 펴 바르고 갔는데, 무대에 올라갈 거란 생각을 못했네요. 알았으면 큰 차이는 없었더라도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웃음)"

칸의 시간들을 두고 곽 대표는 '비현실적'이라는 단어를 거듭해 썼다. "칸이라는 바닷가 도시에 도착해 해변에 나간 순간부터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기까지 구간" 전체가 실감이 나질 않는단다.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여러 배우와 해외팀, 투자팀, 마케팅에 홍보팀까지 모두가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영화를 본 이들이 좋아해주고 수상 후엔 엄청난 축하를 받았으며, 개봉을 앞둔 한국에서도 예매율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곽신애 대표는 "생생히 기억하고 싶은데 토막토막만 기억나고, DVD로 보고싶은데 다시 볼 수 없는 1주일짜리 영화"라고 환하게 웃음지었다.

▲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제공|CJ엔터테인먼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곽 대표는 1994년 영화전문지 '월간 키노'의 창간 멤버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1997년 영화홍보대행사 바른생활 공동대표로 변신한 그는 청년필름, LJ필름, KNJ엔터테인먼트, 신씨네에서 기획 마케팅 등을 맡았다. 2010년 바른손 영화사업본부장, 바른손필름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사가 됐다. 첫 작품이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2016). 이후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2017)를 공동제작했다. 그리고 '기생충'을 만들어냈다.

'기생충'이 바른손이앤에이에서 제작된 건 '마더' 제작자였던 문양권 회장과 봉준호 감독의 신뢰 관계가 한 몫을 했다. 곽 대표는 키노 기자 시절 단편 '지리멸렬'을 선보였던 봉준호 감독과 드디어 감독과 제작자로 처음 함께했다. 곽 대표는 자신의 역할을 내세우는 대신 "폐만 끼치지 말자 했다"며 봉 감독, 그리고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제가 20년을 좋아한 감독과 영화를 만들었네요."

▲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기생충' 시나리오를 읽은 최초의 독자이기도 했다. 2015년 '데칼코마니'라는 15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로 출발한, 서로 다른 두 가족의 이야기는 '철원기행' 김대환 감독, '기생충' 스크립터이기도 한 한진원씨의 손을 거쳐 봉준호 감독의 최종고로 탄생했고, 곽 대표는 2017년 12월 30일 처음으로 '기생충'을 읽었다. 칸영화제에서부터 봉준호 발(發) 스포일러 주의보가 내려졌던 바로 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굵은 스토리는 알았죠. 가족의 입성까지는 트리트먼트에서도 봤고. 감독님이 직접 쓰시면 뭔가 다를 것 같은데 후반부를 어떻게 정리하실까 궁금했거든요. 박사장 집에 입성한 가족들의 술판이 있다는 건 알았어요. 그 뒤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책을 읽는데, 문광이 다시 등장할 때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어머, 이 여자가 왜 다시 와'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으아아아' 하면서 읽었어요. 페이지를 읽고 있으면서도 그 다음이 궁금해서 책장을 든 채로 막. 그 뒤로 알았죠. '그(문광의 재등장) 뒤는 아무도 몰라야 해.' 관객이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가 고민되더라고요."

칸영화제가 있었고, 그 직후가 개봉이었다. 기자들만이 문제랴.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스포일러 유출을 막아보겠다니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저지만, 봉준호 감독도 같은 마음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진심어린 마음이 녹아있는, 스포일러를 주의해 달라는 부탁의 편지가 그렇게 탄생했다.

"진심이 전해졌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영화를 가장 좋은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은 창작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글이었어요. 저도 읽으며 '이런 글도 잘 쓰시는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했죠. 스포일러 방지 마케팅이요? 돌아보면 전전긍긍의 결과물이죠. 절박함이 통한다고 할까요. 고민하면 방법은 생기더라고요."

봉준호 감독의 진화라 평가받은 '기생충'은 관객까지 자발적으로 나서서 스포일러에서 작품을 지켜줬을 만큼 진심어린 사랑을 받았다. 한국영화 첫 황금종려상의 화제성은 작품에 대한 관심을 더했다. 작품과 봉 감독에 대한 찬사가 잇따르는 와중에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라 제작됐다는 점도 일부에서 화제가 됐다. 사실 스태프의 처우개선을 위해 마련된 표준계약서는 2014년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이후 널리 퍼졌고, 이젠 주류 한국영화계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제작비 10억원 선의 상업영화도 표준계약서를 지켜 만들어진다. 곽신애 대표는 '기생충'이 표준계약서를 지킨 대표작처럼 언급되는 데 대해 "이미 정착된 시스템이다. 민망하다"고 말했다.

"거꾸로, 저는 이게 엄청 억울했어요. 댓글 등을 보면 영화계를 열악한 업무환경의 대명사로 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전엔 연출팀 제작팀 막내가 아주 불안한 자리였어요. '초짜'들이 하다가 자주 그만두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이 안 나가요. 누굴 맘대로 '꽂을' 수도 없고요. 그만큼 매력적인 직장이 된 거죠. 대기업 초임까지야 안 되겠지만, '이거 해선 먹고 살 수 없어' 이건 결코 아닌 거죠. 열정 착취? 이런 인식이 깨진 건 좋더라고요."

▲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제공|CJ엔터테인먼트
곽 대표는 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영화인 가족의 일원이다. '친구' '사랑' '극비수사' '희생부활자'를 만든 곽경택 감독이 곽 대표의 오빠고, '해피엔드' '첫사랑' '모던보이'의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기생충' 이후 그녀는 누군가의 동생, 아내가 아니라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로 불릴 것이다.

영화제작자로서 '기생충' 그 이후를 위한 준비는 계속 진행 중이다. 이미 계약된 작품이 4편, 공을 들이고 있는 작품과 감독도 있다. 엄태화 감독을 1년 이상 쫓아다녀 '가려진 시간'을 만들었다는 곽신애 대표는 "제가 반하는 사람과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고유한 걸 가지고 있는 감독과 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제가 영화를 잘 만드는 분들에게 반하는 것 같아요.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 분이 완성도를 추구하고, 성품이 좋고, 거기에 경험이 쌓여가면 다 갖춘거나 다름 없죠.. 엄 감독도, 봉준호 감독도 그랬어요. 그런 분들과 오래 인연을 맺고 속속들이 이해하면서 순도 높은 과정을 거쳐 가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들과 영화를 만들며 사는 게 행복해요. 그렇게 해서 성공해야지, 남이 좋아하는 걸 내가 좋아하는 척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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