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FC-FC서울의 관계가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대구, 이성필 기자] "그런 소리 못 듣게 해야죠."

지난 22일 동대구역, 708번 시내버스는 승객으로 가득했다. 동대구역에서 칠성시장, 대구역을 지나 DGB대구은행파크(이하 대팍)로 향하는 황금 노선은 축구를 보러 가는 외지인들이 탑승하기에 가장 좋은 노선버스였다.

버스 안에는 대구FC, FC서울의 유니폼을 입은 승격이 섞여 있었다. 이들 모두 대구-서울의 K리그1 17라운드를 보기 위한 인파였다. 그만큼 서울에서도 많은 팬이 내려와 버스 승객이 되고 경기장 앞 관중, 경기장 내 팬이 된 것이다.

정태욱의 코뼈 골절은 대구의 분노를 낳았고 서울은 억울했다 

이날 경기는 하루 전 매진을 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양팀의 올해 첫 겨루기에 불꽃을 튀게 했다. 서울이 2-1로 승리했지만, 정태욱이 오스마르와 볼 경합 과정에서 코뼈가 부러졌고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판정 논란이 겹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오르던 대구는 동정론을 얻었고 서울은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비판받았다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태욱은 수술 대신 마스크를 선택하고 이후 경기에 출전했다. 조광래 대표이사는 "수술이 필요 없게 됐다. 알아서 뼈가 붙었다더라. 물론 약간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됐다"며 정태욱의 투혼에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양팀 관계에 이야기 하나가 더 쌓였다. 대구는 과거 고비마다 서울의 발목을 잡는 도깨비 팀이었다. 2007년 대구와 최종전에서 비겨도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었지만, 0-1로 패하며 시즌을 끝내는 등 이상하게 대구에 애를 먹었다.

▲ 1만2천68명의 관중이 찾았던 DGB대구은행파크, 이날 시즌 여섯 번째 매진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스토리를 입은 대팍 앞은 인산인해였다. 'DGB대구은행파크'가 새겨진, 사진을 찍기에 좋은 위치에는 서울 팬들이 다수였다. 대구 팬들은 용품점에서 유니폼을 사려는 줄을 서느라 바빴다. 한 대구 팬은 "서울 사람들이 좋은 경기장 두고 대팍이 많이 신기한가배"라며 웃었다.

서로에게 우호적이었던 경기장 밖과 달리 안은 180도 달랐다. 북측 관중석 두 개의 블럭에 서울팬들이 촘촘하게 모여 뿜어내는 응원에 대구 팬들은 '쿵쿵골'로 대답했다. 1만2천68명의 기 싸움에 양팀 감독도 입과 머리로 싸웠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지난 겨루기 결과 이후 반응이 불쾌했는지 "상대 대구는 지난 경기에서 그렇게 거칠고 K리그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그런 것을 했다"며 쏘아붙였다. 안드레 대구 감독도 "뜻하지 않게 서울과 라이벌 구도가 됐다"며 "정태욱에게 마음에는 담아두지만, 감정적으로 표출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경기는 예상대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서울이 먼저 두 골을 넣었지만, 대구 팬들은 기죽지 않았다. 후반에 황순민의 빠른 만회골이 터지자 대팍은 달아올랐다. 양팀 팬들의 응원이 집약적으로 섞여 나오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심판진이 최용수, 안드레 두 감독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징야의 골이 VAR로 무효처리 되자 서울은 환호했고 대구는 억울했다

종료 직전 세징야의 골이 비디오 판독(VAR)으로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2-1, 서울의 승리로 끝났다. 대구 팬들은 심판진에 야유를 보냈지만, 서울 팬들은 기쁨의 응원을 펼쳤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대구 선수단이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고 서울 선수들과 환희의 세리머니를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관중석 느낌이었다.

최용수 감독은 "대구와 두 경기를 모두 실력과 축구로 이겼다"며 외적 변수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 뒤 "우리는 서울이다. K리그 선도자 역할을 한 팀이다. 대구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칼에 잘랐다. 안드레 감독은 "경기를 못 해도 이기는 경우가 있는데 서울이 그랬다"며 쏘아붙였다.

사실 서울도 긴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주장 고요한은 16라운드 수원과 슈퍼매치보다 대구전이 더 어려웠다며 "슈퍼매치는 우리가 공격을 유지하면서 경기해 조금은 괜찮았다. 대구전은 수비에 비중을 두고 경기했다"고 전한 뒤 "사실 서울이 위축됐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정신 차리고 집중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과 같은 생각이었던 고요한이다. 그는 "지난번 겨루기가 끝나고 감독님 기분이 언짢았다. 내용보다 결과를 가져오자고 준비한 유일한 경기였다. 이겼으니 좋았다"며 결과론에 힘을 실었다. 이어 "(주변에서)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계속 이겨서 그런 소리 못 듣게 하고 싶다"며 승리를 강조했다.

▲ 대구는 1-2로 졌지만, 중앙문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을 만나 어김없이 사인회를 열었다. "졌어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대구의 설명이다.

절대 라이벌 아니라는 서울, 다시 대팍에서 복수하기 위해 상위 스플릿 가겠다는 대구

기쁜 서울과 달리 대구는 아까움 그 자체였다. 경기가 끝나고 조광래 대표이사 중심으로 몇몇 직원은 경기를 다시 돌려봤다. 특히 오프사이드로 판정된 세징야의 골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리그 홈 첫 패배가 서울에 의해 깨졌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조 대표다. 서울의 전신격인 안양LG에서 감독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더 그랬다.

대구 임직원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한 직원은 "서울에 이겼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더라. 경기 종료 후 우리 선수들이 인사하는데 받아 주지도 않더라. 홈처럼 즐기더라"며 씁쓸함을 표현했다. 그래도 "오늘 분위기 정말 올해 최고 아니었나 싶다. 이 분위기를 서울이 다시 느꼈으면 싶다"며 이를 갈았다.

양팀의 다음 경기는 8월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대팍에서 서로 만나려면 모두 상위 스플릿에 올라가야 한다. 대구가 서울 원정을 두 번 치르기 때문이다. 대구 관계자는 "일단 상위 스플릿부터"라고 외쳤다. 라이벌이 아닌데 라이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양팀의 흥미진진한 관계가 굳어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대구,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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