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7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정호진.

[스포티비뉴스=이종현 기자]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뛴 21명의 선수 중 둘 뿐인 대학생 선수면서 '떡상' 핵심 5인 멤버(이광연, 김현우, 최준, 오세훈, 정호진) 중 한 명인 정호진(고려대)은 다른 프로 선수들과 달리 '학점 메우기'에 열중이다. 교수님들에게도 사인 요청을 받는다는 '인기왕'이자 "월클병에 걸렸다고 놀림받고 있다"는 그의 근황과 월드컵 뒷이야기를 전한다. 

정호진은 연세대 최준과 함께 대학생 소속으로 월드컵에 나선 선수다. 둘은 4월 파주 최종훈련 때부터 같은 방을 쓰며 최종 명단에 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애초 대학생인 둘의 인지도는 가장 낮았지만 최종 명단에 포함됐고, 본선에서 최준은 전 경기(7경기) 선발, 정호진도 조별리그 첫 경기와 결승전을 뺀 5경기에서 선발로 뛰며 준우승을 도왔다. 

다른 프로 선수와 달리 정호진은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일정 외에는 지난달 29일 자선축구대회에만 참가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담당 과목 교수와 1대1 수업으로 학점 메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 좋았던 몸을 그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월드컵에서 뛰었던 프로선수들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오는 8월 태백에서 열리는 추계대학연맹전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에 많은 관심을 바랐다.

- 근황이 어떤가? 동료는 '라디오 스타'도 나가던데.

저는 다른 애들과 다르게 2학기 게임을 뛰기 위해 수업을 받고 학점을 따느라 바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수업 듣느라 운동은 거의 못 하고 쉬고 있다. 과제도 하고 수업 일수도 다 채워야 한다. 다행히 교수님들께서 배려해 주셔서 1대1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6월 23일)부터 2박 3일 완도로 학교에서 훈련을 다녀왔다. 6월 29일 대한축구협회 주관 자선 축구대회에 U-20 월드컵 나간 선수 중 혼자 나간 것 같다. 스케줄이 들어온 건 있는데 아직 하지 않았고, 몇 개 예정돼 있는 것만 있다. 바쁘게 살았다. 

- 교수님과 수업에서도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수업도 월드컵을 토대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수업하다가 영상도 보여주신다. 반가워해주시는 교수님, 사인해달라는 교수님들이 많으셨다.

- 최근에 팬클럽 생겼던데, 월드컵 후광 제대로 받는 것 같은데.

이제 조금 실감이 난다. 한국 와서도 일주일간 실감이 안났다. 학교에서도, 모르는 친구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하더라. 최근 학교 체육교육과 졸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수업에서 일반 학생 포함 90명이 갔다. 많이 알아봐 주셔서 '내가 괜찮게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꾸준히 SNS 메시지로 응원해 주신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Q. 길거리에서 알아봐 준 적도 있나?) 길거리에선 못 알아보신다. 인지도가 없어서 그런가.

- 고대에서 월드컵 다녀오고 호칭이 달라졌나?

감독님은 생각보다 별말씀 없으셨다. 한번 뵈었는데, "잘하고 왔다. 호진이 염색도 하고 많이 컸네"라고 장난치셨다. 동료들은 "월클병 걸렸다. 머리를 봐라"며 놀린다. 

- 다른 프로 동료들은 월드컵 다녀와서도 곧바로 K리그 뛰던데.

많이 아쉽다. 폴란드에서 가지고 왔던 것 그대로 게임 뛰면서 자신을 보여주며 성장하고 싶은 시기인데 여건이 저와 맞지 않다. 신분도 다르다. 프로와 대학 선수다. 게임을 못 뛰는 게 아쉽다. 더 올라설 때인데. 

▲ 정호진(가운데)은 월드컵에서 스마트한 축구를 했다. ⓒ대한축구협회

▲ 고대 유니폼을 입은 정호진. 고대에선 에이스의 상징 7번을 달고 뛴다.

- 정호진의 플레이는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나?

추계연맹전부터 뛸 수 있다. 근데 경기장이 팬이 찾아오시기 어렵다. 워낙 외진 곳에서 한다. 그런데도 보러오신다는 분들이 있다. 8월 12일 태백에서 광운대랑 첫 경기가 있다. 

- 최준과 함께 둘뿐인 대학생, '떡상' 핵심 멤버 5인이었다.

대회 전에는 그 정도 할 거라는 기대치가 없었다. 대회 하면서 (최)준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향력이 좋아서 주변에서 '너네 생각보다 잘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뿌듯하다. 같은 방을 쓰고 대학생 둘이 잘했으니까. 처음 파주에서는 월드컵 최종 명단 드는 게 목표였다.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경기 뛰자'였다. 그런데 좋은 성과가 나와서 기분이 좋다. 

- 파주에서는 고대-연대라는 학교 역사 때문에 티격태격했다. 월드컵에선 대학생 동반자로 결의 좀 다졌나?

파주에서 티격태격하다가 폴란드에서는 서로 경기에 뛰든 안 뛰든 컨디션 조절을 위해 배려해줬다. 같은 대학생이지만 '프로에 밀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파주에서는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폴란드에선 '원팀'으로 가자는 생각으로 '이기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이번 대회 가장 큰 발견'이라는 최준에 대한 평가가 기자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본인을 평가한다면?

'진흙 속 진주'. 제가 무명에서 튀어나왔으니까.  

-고대에서 많이 뛰어서 별명이 '똥개'였다고 들었다. 대회 이후 팬이나 동료가 지어준 별명이 있나?

한 번 똥개로 밀고 가니까 자연스럽게 밀고가는 것 같다. 동료들이 "미친X"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이 뛰어다니니까. "얘 정말 미친 거 같아." 

▲ 지난 6월 27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정호진.

-이 번 월드컵에서 유독 선수들의 별명 짓기가 유행했던 것 같다.

(오)세훈이는 오렌테(오세훈+요렌테)?, 오바마에서 오렌테로 바뀌었다. '빛광연'도 있다. 맨날 "안 보여 안 보여, 빛 때문에 안 보여"라고 (이)광연이를 볼 때마다 불러줬다. '막내 형(이강인)'도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불렀다. 밖에서 생겨서 들어와서 저희도 자연스럽게 부르게 됐다. 

- 조영욱이 아르헨티나전 도움으로 준 용돈으로 고대 회식 잘했나? 꿀꺽한 거 아닌가?(고대 선배 조영욱은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신의 U-20월드컵 데뷔골을 도운 정호진에게 용돈을 보내줬다)

혼자 꿀꺽하지 않았다. 지금 (민)성준이가 유니버시아드 가서. 다 같이 먹는 게 좋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다. 돈은 그대로 잘 있다. 

- '프로 열창러' 이강인 옆에서 찍힌 사진으로, 국내에서도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위치 선정의 달인'인 거 같은데.

경기 들어가기 전 루틴이 있다. 제가 경기 뛰는 날엔 맨 뒤에 강인이 앞에 저, 그 앞에 준이 이렇게 계속 나왔다. 얘들도 줄 설 때 그런 루틴이 있는 것 같다. 다섯 경기 중 첫 경기(남아공전)는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4경기는 강인이 옆에서 애국가 열심히 크게 불렀다. (Q. 위치선정의 달인이네요?) 의식한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카메라에 막 잡히고 사진 찍히고 그랬다. 

▲ 이강인의 '애국가 크게 불러주세요' 발언으로 덩달아 정호진(왼쪽)도 유명해졌다. ⓒ연합뉴스

- 매 경기 끝나고 인터뷰를 보면 이강인은 '감사왕'인 것 같은데 진짜인가?

저희에게 도를 넘은 행동마저 저희와 함께 오래 있고 싶고, 월드컵에 오래 남고 싶어서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저희를 생각보다 더 좋아했더라. 강인이가 카메라에 비친 모습이 가식이 아니라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태도다. 

-이제 생각해 보니, 정호진이 출전한 경기는 안 졌던데?(조별리그 2차전부터 4강전까지 4승1무. 8강 세네갈전 승부차기 승리는 무승부로 처리)

그런 결과가 나왔지만 제가 있었더라도 포르투갈이나 우크라이나와 경기에서 이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제가 5경기를 뛰면서 잘한 것도 있지만 팀원들이 잘해준 게 더 컸다. 제가 출전했다고 이겼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다. (Q.의식하고, 생각한 건 언제?) 대회 끝나고 정신없이 시상식하고 다음날 오면서 생각하는데 '내가 안 뛴 두 경기에서 다 졌네'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 정정용호의 공식 '체력왕'이다.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남아공전, 아르헨티나전보다는 가면 갈수록 떨어지긴 했다. 저면 떨어진 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더라. 에콰도르전에는 생각보다 안 뛴 것 같았는데, 지나고 데이터를 물어보니 제가 가장 많이 뛰었다고 들었다. 일본전 전반전이 가장 힘들었다. 일본 플레이 특성상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아르헨티나전에서 엄청 많이 뛰었다. 총거리 스프린트도 많았지만 편했다. 일본은 뺏으러 가면 한 발 두 발 전에 패스한다. 또 따라가려면 힘들다. 남미 선수라 개인 기량 선수는 막 밀고 들어오면 따라가기 쉽다. 아르헨티나전은 13km에 근접했다. 세네갈전에는 120분 동안 16km 정도 뛰었다. 일본전은 전반만, 아르헨티나전은 후반만 뛰었다. 세네갈전이 가장 힘들었다. 

- '원팀'은 사실 2년 전부터 준비한 게 도움이 된 거 아닌가?

모든 경기가 1점 차로 극적이었다. 첫 경기에서 졌다. 예전이면 가라앉았을 텐데, '충분히 하자'고 준비했고 남아공전 후반에 득점하고 모두 좋아할 때, 아르헨티나전은 '원팀'으로 싸웠다. 제일 소름돋은 건 세네갈전이다. '와 미쳤다. 축구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점하면 무너지는데, 세네갈전 실점에도 '해보자'고 얘기했다. 세네갈전에서 실점하고 곧바로 모두 모여서 '포기하지 말자'며 반전을 도모했다. 매경기 각오가 남달랐다. 신기한 건 매경기 다른 선수들이 한건씩 해줬다는 거다. 준이가 강인이 프리킥으로 득점한 장면도 2년 전부터 감독님이 강조하신 것이다. 파울을 얻을 때 바로 시작하는 게 월드컵에서도 통하더라. 인도네시아 챔피언십 때도 그 패턴이 통했다. 작은 거 하나하나가 팀에 무기가 돼서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 

- 본인에게 기억에 남은 경기는 뭔가?

개인적으론 아르헨티나전이다. 영욱이 형한테 어시스트도 했고. 남미 선수들에게 많이 배웠다.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경기라 기억에 남는다. 최고의 경기는 세네갈전 아닌가 싶다. 추가 시간이 얼마인지도 몰랐는데, 마지막 코너킥에서 (이)지솔이가 앞으로 짜르는데 공이 알맞은 높이에서 떨어지고 지솔이가 슥 나타나서 넣었다. 영욱이 형이 역전골 넣을 때도 실감이 안 났다.

▲ 월드컵 당시 조영욱은 자신의 득점을 도와주는 선수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정호진이 조영욱의 U-20 월드컵 첫골을 도와 용돈을 받았다.

- 정호진은 '스마트한' 축구를 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는 수비형 미드필더 투볼란치로 했는데 공격적으로도 많이 나갔다. 아르헨티나전처럼 치고 나가고 드리블한 것도 고등학교 때 자주 하던 플레이다. 습관처럼 나왔던 것 같다. 인터셉트랑 갑자기 밀고 나가는 건 생각을 미리 하고 있다. 패스 모션 하기 전 받을 사람과 거리를 조절해 놓고 이 정도 범주에 오면 몸으로 못나가게 하겠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다. 공격적인 욕심은 남아공전에서 골대를 맞추고 생겼다. 아르헨티나전이 잘돼서 자신감도 올라갔다. 

- 이번 정기전은 이기고 싶을 텐데. 선배 조영욱이 뭐라고 하던가?

'일단 이번 정기전 할 때 보러 온다고, 꼭 이겨라'고 했다. 작년 정기전 끝나고(2-1 연세대의 역전승), 바로 인도네시아 챔피언십에 대비해 창원에서 훈련했다. 저보고 영욱이 형이 웃었다. 뭐라고 얘기는 안 했다. '에라이'라고만 했다. 그 이후로 정기전 얘기는 안 했다. 저랑 영욱이 형이랑 '(정기전에)져도 연대는 우리한테 안 된다'는 마인드다. 

- 고대 선수 정호진의 포부는 뭐가 있을까?

그때 툴롱컵도 뛰고 국제무대도 뛰고 했는데 정기전 느낌은 달랐다. 공이 우리 진영에 오면 긴장이 되는 그런 게 정기전 때 그랬다. 말로는 그렇지만, 내려놓기 쉽지 않다. 부담을 덜하고 즐기면 좋지 않을까. 2학년이 돼 경험도 쌓여 차분하게 하고 싶다. 제가 저질렀던 실수를 안 저지르게 후배들에게 당부해줄 생각이다. 올해는 무조건 이기고, 단체사진 찍고 싶다. 고대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표현을 안 할 뿐이다. 2학기에 돌아가면 팀에 헌신해 최고의 시즌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스포티비뉴스=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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