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경남 양산, 박대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싱거운 4라운드를 예상했다.

3라운드까지 2위 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린 단독 선두. 둘째날을 마쳤을 땐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36홀 최소타 기록(126타)을 새로 썼다.

그만큼 샷 감각이 절정이었다. 무난한 우승이 예상됐다.

최종 라운드 반환점을 돌면서 골프계 격언 하나가 떠올랐다. '우승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

골프에서 1승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난달 30일 경남 양산에 모인 오륙백 명은 피부로 실감했다.

호주 교포 이원준(34)이 KPGA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프로 데뷔 13년 만에 밟은 정상.

쉽지 않았다. 1m 파 퍼트에, 3m 버디 퍼트에 지옥 문턱을 들랑날랑했다.

이원준 표정에 갤러리 마음도 변사했다. 이랬다저랬다 변덕스러웠다. 홀마다 탄성과 탄식이 오갔다.

▲ 데뷔 12년 만에 프로 첫 승. 이원준 표정에 경남 양산 에이원CC 분위기도 오르락내리락했다. ⓒ KPGA
이상기류가 보인 건 13번 홀. 이원준은 1m 남짓 짧은 퍼트를 놓쳤다. 치명적인 보기에 고개를 떨궜다.

데뷔 10년이 넘은 골퍼도 감정을 못 숨길 만큼 아쉬운 플레이였다.

서형석(22, 신한금융그룹)이 이 홀에서 버디를 뽑자 상황이 급물살을 탔다. 5로 시작했던 타수 차가 1로 줄었다. 에이원컨트리클럽이 살얼음판이 됐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16번 홀에서 버디 퍼트한 공이 홀 끝에 걸쳤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구멍 바로 앞서 멈췄다.

"조금만 기다려보라" "깃발 빼면 들어간다" 목소리가 갤러리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규정대로 10초를 기다렸다. 공은 그러나 미동도 없었다. 

이원준은 허탈해서 웃었다.

갤러리도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이러다 정말 다 잡은 우승 놓치는 건 아닌지' '13년 기다렸는데 우승 한 번 하지' 분위기가 경기장에 퍼졌다. 중립을 지키면서도 측은지심이 발동한 무드였다.

17번 홀에서 서형석에게 동타를 허용했다. 표정을 못 숨겼다. 돌처럼 굳었다. 2m 파 퍼트를 놓친 대가는 컸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불리한 경사를 딛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우는 어머니와 웃는 아내를 끌어안고 입꼬리를 올렸다. 포효했다. 군중도 환호성을 터트렸다. 함께 웃었다.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골프하는 아들 탓에) 너무 고생하셨다. 한(恨)을 조금 풀어드린 거 같다. 그게 (우승 못지않게)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0cm 거포가 뱉는 묵직한 사부곡에 듣는 사람 눈도 뜨거워졌다.

울고 웃고 안타까워하고 기뻐했다. 집단이 한마음을 보였다. 이원준 감정 그래프를 정확히 따랐던 하루 전 에이원CC였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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