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김병현(40)이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선수라는 것은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메이저리그(MLB)를 놀라게 한 강력한 구위를 가진 선수였다. 광주일고와 성균관대를 거친 김병현은 지금도 아마추어 선수 최고 계약금으로 남은 225만 달러를 받고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었다. 예상보다 빨리 메이저리그에 콜업, 1999년 데뷔전을 가졌고 2007년 미국을 떠날 때까지 통산 394경기(선발 87경기)에서 54승60패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의 성적을 남겼다.
애리조나의 마무리 계보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김병현이다. 그래서 여전히 애리조나 팬들에게 회자되는 인물이다. 미 스포츠전문매거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이하 SI)는 연재물인 “그들은 지금 어디있을까” 코너에서 4일(이하 한국시간) 김병현을 다뤘다. SI는 김병현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묻고, 예전의 추억을 꺼냈다. 김병현도 논란이 됐던 몇몇 장면들을 설명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한편 일부는 해명도 내놨다.
SI가 먼저 떠올린 장면은 역시 2001년 월드시리즈였다. 김병현은 4차전 당시 3-1로 앞선 상황에 등판했으나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투런포를 맞았고, 연장에서는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았다. 다음 경기에서도 악몽은 이어졌다. 5차전에서는 브로셔스에게 동점 투런을 맞고 무너졌다. 당시 김병현은 마운드에 쪼그려 앉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SI는 “이 장면이 김병현의 경력에 결정적인 이미지 중 하나”라고 했다. 다만 김병현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추측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병현은 “불펜의 마이크 모건을 실망시켰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스스로 우울하거나 나 자신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마이크에게 더 미안했다”고 했다. 모건은 김병현의 적응에 도움을 준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김병현은 월드시리즈 역전 우승에 대해서는 “정말 안도했다”고 웃었다.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마리아노 리베라와 로저 클레멘스가 찾아와 김병현을 축하한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김병현은 “사실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병현은 당시까지만 해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이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 장면에서, 정작 김병현은 언어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김병현은 이후 뉴욕 양키스와 재대결에서 세이브를 거둔 뒤 공을 담장 밖으로 날리며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김병현은 당시 질문에 “반항의 행위였다”면서 “양키스 선수들에게 ‘펜스 너머 칠 수 있는 것은 너희들뿐만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뿐이었다”고 떠올렸다.
김병현은 2002년 36세이브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2001년 월드시리즈의 악몽을 지웠다. 김병현은 “나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었다. 내 자신을 세상에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내가 누군지에 대해 언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김병현은 선발로 뛰고 싶었고, 결국 애리조나에서 보스턴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선발을 약속했던 보스턴은 한 달 뒤 김병현에게 불펜 전향을 통보했다. 김병현은 “당시 그것에 동의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그레디 리틀 감독과 갈등을 빚으며 보스턴 생활이 꼬였다. SI는 오클랜드와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좌타자가 나오자 김병현을 교체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설명한다. 김병현은 SI에 “그들은 나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는데, 왜 내가 경기를 끝내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라고 되물으면서 “그것 때문에 많은 좌절감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 자신만을 위해 경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김병현은 간접적인 이유로 원활하지 않은 통역을 들었다. 김병현은 보스턴 시절 당시 트레이너가 통역을 병행했고, 전문 지식이 없어 완벽한 통역을 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일이 발단이 돼 김병현은 홈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았고, 여기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김병현은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했을 뿐이다. 팬들이 나에게 야유를 했고, 나도 오해를 했다. 그런 좌절감이 그것으로 표출됐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더 롱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식습관을 뽑았다. 김병현은 “클럽하우스에는 콜라, 핫도그, 피자가 있었다. 식이요법 측면에서 내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다”면서 “내 경력에서 나는 내 젊음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 당시에 몸을 잘 관리하지 못했고,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큰 타격이 됐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매년 10월이 되면 김병현은 현지 팬들에게 소환된다. 2001년 월드시리즈 때문이다. 김병현도 “수년 동안 그 동영상을 수천 번 봤다. 분명히 큰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 트라우마나 우울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너무 많이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제는 모두 좋은 추억이 됐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김병현은 개인 사업과 방송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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