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박찬호(왼쪽)가 이범호의 등번호 25번을 물려받았다. ⓒ 광주,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광주, 신원철 기자] 13일 열린 이범호(38)의 은퇴식에서는 유례 없는 순서가 있었다. 이범호가 KIA에서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후배 박찬호가 물려받았다. 시즌 중 등번호를 바꾸는 일이 드문데다, 은퇴 선수가 자신의 번호를 받을 후배를 지목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으로 다가왔다. 

박찬호는 13일 25번 이범호가 적힌 은퇴 경기 기념 유니폼을 입고 6회초 대수비로 3루수 자리에 들어갔다. 이범호는 "구단과 상의를 했다. 내 번호를 누군가 달아야 한다면 KIA 주전 3루수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찬호가 흔쾌히 받아줘 고맙다"고 했다. 

이것만으로도 상징성이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 KIA는 은퇴식 후반에 등번호 전달식을 준비해 의미를 강조했다. 박찬호는 기념 유니폼을 벗고 이범호가 전해준 '25번 박찬호' 홈 유니폼을 입었다. 박수와 함성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채웠다. 

행사를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박찬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고사했다. 정확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숙여 양해를 구했다. 

그날 밤 박찬호는 인스타그램에 25번을 받은 장문의 소감을 남겼다. "25번, 사실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제가 선배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죽어라 해서 부끄럽지 않은 25번 박찬호가 되겠습니다."

어쩌면 25번의 주인은 박찬호가 아닐 수도 있었다. KIA 박흥식 감독 대행은 지난 5월말 남은 시즌 동안 유격수로 박찬호를 기용하는 일이 늘어날 거라고 예고했다. 

박찬호의 수비 능력, 최원준의 가능성을 믿고 김선빈을 2루수로 돌릴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대로라면 차세대 3루수는 최원준이 돼야 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최원준은 외야에서 미래를 찾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박찬호가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박찬호가 말한 것처럼 25번은 그에게 부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범호도 박찬호의 가능성을 인정했기에 그를 믿고 25번을 넘겨줬다는 점이다. 14일 박찬호는 두 개의 적시타와 두 번의 도루, 그리고 역전을 막는 민첩한 수비로 그 자격을 보여줬다. 

스포티비뉴스=광주, 신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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