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봄밤'의 김준한. 제공|씨엘엔컴퍼니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김준한(36)은 어쩌면, '봄밤'의 최고 수혜자일지 모른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봄밤'(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 제작 제이에스픽쳐스)는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김준한에게는 이별의 이야기였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잘난 남자, 권기석을 연기했다. 오래 만나온 여자친구 정인(한지민)을 그저 제 방식대로 사랑했던 남자다.

모든 걸 받아주고 묵묵히 감내하던 그녀가 '봄밤'처럼 찾아온 감정의 일렁임을 따라 다른 사랑을 택하며 모든 일이 벌어진다. 간질한 감정을 자극하는 진짜 사랑이야기만큼, 이별을 직감한 기석의 반응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불안해하고, 또 불쾌해하고, 어느 순간엔 지질해지기도 했다. 김준한은 사랑에 빠진 두 주인공만큼 어느새 시청자를 사로잡아버렸다. 그런 그가 처음엔 얄밉다가, 나중엔 끝없이 안쓰럽기도 했다.

기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의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일까.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일까. 지난 4개월을 지석으로 지내며 '진짜'같은 얼굴로 그 남자의 이야기를 펼쳐보인 김준한은 "진짜 이별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청자의 반응이 뜨겁다. 또 제각각이기도 하고. '봄밤'의 최고 수혜자란 평도 있다. 

"보시는 분들마다 다른 관점으로 보신다. 재미있다. 처음 대본 봤을 때도 그랬다. 해석의 여지가 열린 부분이 많았다. 보시는 분들마다 다르게 보실 수 있겠구나 했다. 그 이상으로 반응을 주신다. 피드백 보면서 재미있었다.정말 많은 걸 받았다. 좋아해주시고. 작품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좋다."

-기석이 어떻게 다가오던가.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보였다. 과거 정인이에게 정서적인 교감을 주지 못했고, 그만큼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외면당하는 외로움이 있는데도 다시 외면했다는 것이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데, 정인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라도 진심으로 다가갔다면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거다. 그 순간에도 공감 못하는 기석이 정인이와 안 맞았던 것 같다. 안타깝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기석이가 한도 끝도 없이 간다. 거기까진 몰랐다. 작가님한테 말도 했다. '아 이렇게까지 가는군요.' 저는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으니까 출연자나 다른 분들에게 물어도 봤다. 사람이 그럴 수 있다 하더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려고 했다. "

-'질척댐'의 끝판왕이랄까. 김준한이라면 어떤가.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도 대단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상대도 힘들게 만드는 거지만 자기 자신도 망가져가면서 그렇게까지 했닥 생각한다. 어려서는 좀 그랬다. 서툴러서 그런 건지, 좀 괴롭게 사랑도 해보고 했는데 이제는 못할 것 같다."

-혹시 지금은?

"못하고 있다. 1년 넘은 것 같다. 길게 연애한 지는 더 오래됐다.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나?(웃음) 잘 안만나진다. 일 중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성향이 있다. 마음 한 켠을 내줘야 하는데 일에 빠져 사는 패턴이 습관이 되다보니까. 아직은 겁을 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진짜 이별한 기분이라던 종영소감이 인상적이었다.

"끝나고 나니까 느껴졌다. 기석 자신조차 굉장히 괴로운 상태에서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도 있고. 어느 배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든 공감하면서 해내려고 하고, 그냥 하면 좋겠는데 잘 안되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힘들었다. 유독 그랬다. 감독님 작품이 좀 몰입하게 만드는 게 있는 것 같다."

-시청자도 몰입했다.

"여러 반응을 봤다. 저는 기석이의 패착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한다, 자기중심적으로. 기석이를 그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사랑이지만, 그조차 자기중심적이다. 남들에겐 승부로도 보이고 게임으로도 보이지만 본인은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것이 참 안타깝다. 서글프기도 하고. 끝내 정인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안타까운 게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한다고,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의 승부 속에서 자라온 환경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 김준한(왼쪽)과 한지민. 출처|MBC '봄밤' 스틸
-캐릭터에 몰입해서 극중 여자친구를 뺏어간 정해인과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나.

"개인적으로 그런 건 없고. 하면서 장난은 많이 쳤다. 셋이 만났는데 둘(한지민 정해인)이 붙어있으면 꼴보기 싫다고. 그럼 둘이 더 장난치고 그랬다. 즐겁게 작업했다.(웃음)"

-한지민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한지민씨가 한살 누나다. 말을 편하게 하라 배려해 주셨다. 작품하는 내내 '정인아 정인아' 하며 반말 하고 지냈다. 종방연에서 '누나 이제 누나라고 할게요' 했더니 '야, 하지마. 하던대로 해' 하시더라.(웃음) 족보가 꼬인다고 누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했는데 하지 말라고 그런다. 아직 합의를 못 본 상태다. 나중에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웃음) 원하는 대로 해드리려 한다."

-'봄밤'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는 인간의 못난 부분까지도 함께 담고 있는 부분이 좋았다. 그런 부분이 끌렸다. 정인이 같은 경우도 굉장히 솔직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극의 주인공 캐릭터를 도덕적으로든 상황적으로든 완전무결하게 만들어 응원할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현실에 잘 없다. 나 자신만 돌아보더라도 그렇다. 굉장히 흠결이 많다. 오히려 그런 것이 이 작품에 담대함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함이라고 해야 하나. 모자란 부분까지도 다 그 사람의 일부, 이 세상의 일부라고 한다."

-안판석PD와 작업은 어땠나.

"너무 행복했다. 연기를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해 주신다. 연기를 반복적으로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고, 컷을 간결하게 찍어야 할 것만 찍고, 테이크도 많이 안 간다. 배우가 더 가고 싶어도 못가게, 좋다고 설득해 주신다. 방송 보면 또 감독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알 것도 같고, 그걸 받아들이면서부터 무한한 자유를 얻고 연기할 수 있었다. 삶이 완전하지 못하듯이 연기도 완전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 오히려 완전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런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실수를 극복하는 게 더 인간다운 걸 만든다느 깨달음이 오더라."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그렇고 러브라인이 잘 안 이뤄진다.

"당시 해롱이와 연기하면서도 애틋했다. 진심으로 하려 했고, 마지막엔 울컥하더라. 힘들었지만 길게 하진 않았으니까 지금만큼은 후유증이 없었다. 지금은 너무 오랜 시간 들어와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촬영한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아직 여운이 남아 있다. 자꾸 극중에서 여자친구를 뺏기는데, 제가 파멸의 느낌이 있나. 잘 모르겠다.(웃음)"

-결국 기석은 미안하다 한마디를 남기고 소개팅을 한다. 허탈한 결말은 아니었나.

"저는 잘 마무리됐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동력이 확 꺼진 사람처럼 됐는데 그게 정말 와닿았다. 내 연료가 다 소모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달리고 있다가 그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 남서방(이무생)의 말도 안되는 궤변을 듣고서 거울처럼 자기 모습을 보고 내가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되었나 자각한 것도 같다. 굉장한 허무감은 있을 것 같다. 그것까지 읽어내주시는 분도 있더라. 창 밖으로 던지는 시선이 허무해 보였다고. 충분히 그럴 것 같다. 강제종료당한 느낌이라까. 외상후 스트레스처럼.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다. 너무 힘들게 이별을 한 적이 있다. 아픈 기억만 있고 이외의 기억이 사라져버렸다."

▲ 김준한. 출처|MBC '봄밤' 스틸
-유난히 차가운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자기를 마추는 인물들을 많이 했다. 드라마 '시간'은 특히 자기를 감추는 걸 무기로 삼은 듯한 사람이었다. '봄밤'의 기석은 자기를 포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석은 위기를 맞았을 때 웃는다. 곤란할 때 웃으면서 여유있는 척, 극복이 된 척을 한다."

-본인은 평소엔 어떤가.

"무탈하게 살려 한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일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걸 좋아한다. 갈수록 삶이 단순해진 것 같다. 단순해야 하는구나 생각도 든다. 다 가질 수 없구나, 뭔가 내려놔야 하는구나 생각도 들고."

-옛 이력이 새삼 화제가 됐다. (김준한은 히트곡 '응급실'로 알려진 밴드 이지(izi)의 드러머 출신이다. 2011년부터 단편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새삼 충격.(웃음) 더군다나 노래가 유명해가지고. 그 때도 열심히는 했었다. 재미있게 했었다. 그런데 연기가 좀 더 재미있어 보였다. 음악은 하면서 내 옷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고 괴로운 부분이 있었다. 잘 모르겠지 이런 생각이 들고. 뿌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랄까. 당시 연극하는 친한 형과 살며 작품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사람과 세상을 공부하는 것들이 재밌겠는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시작했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뿌옇게 보이지 않는다. 뭔가 대안이 있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저와 맞는 것 같고 재미가 있다.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는 느낌이다. 갈 길이 멀어보이기는 하지만 그 방향이 즐겁다.

처음엔 공연 세션, 녹음 세션 하면서 음악도 병행했었는데 어느 순간 병행이 불가능하더라. 결정을 해야 했다. 인생 한 번 살지 두번 사나. 내가 연기 하면 진짜 잘했을텐데 이런 이야기 하기 싫었다. 비겁해지기 싫어서 그냥 했다. 음악은 보내줄 수 있었다. 충분히 사랑했으니까."

-본인 연기의 가장 큰 힘이 있다면?

"저를 편하게 보시는 것이 아닐까. 제가 주장한들 제 생각일 뿐일 거다. 봐주시는 것이 맞을 거다. 다만 추구하는 건, 가짜로 하지 않는 것 진짜로 공감하고 연기하는 것, 그 인물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 인물이 설사 모든 사람이 질타하고 배쳑하리라도 나 자신만큼은 그에게 공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이 원하는 대로 해주즌 것이 그 인물을 맡은 사람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수년간 크게 성장하고 사랑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많이 배웠다. 부족한 점도 있었는데 성과도 있고 피드백도 있었다. 다양한 삶을 담아보고 싶다. 어떤 것들이 나에게 와줄지 기대가 된다. 앞으로도 열일하겠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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