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올해 2개의 천만영화를 일군 CJ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여름영화 '엑시트'는 뜻밖에 신예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 연출자는 이상근(41) 감독. 오랜 준비 끝에 첫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이 감독은 개봉을 앞둔 기분을 한 마디로 "인지부조화"라 했다. "염원하던게 이뤄졌을 때 느끼는 감정 자체가 첫 경험이다. 익숙하지 않은 처음 느낌"이라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뻔한 대사가 맴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7년 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의 연출부로 상업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엑시트'는 그가 2010년 한예종을 졸업하면서 "강호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안고 칼을 간" 지 9년 만에 선보이는 상업영화 데뷔작. 시작부터가 인연이었던 걸까. 이상근 감독은 준비 3년만에 2015년 현재의 주요 얼개를 갖춘 '엑시트' 시나리오를 갖고 강혜정 대표, 류승완 감독 부부의 영화사 외유내강에 들어가 개발 과정을 거쳤고, 드디어 오늘에 왔다.

▲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첫 공개 이후 '올 여름 복병'이란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엑시트'는 독특한 재난영화다. 영화가 그리는 재난이란 도심에 퍼진 희뿌연 유독가스. 들이마시면 안 되는 게 분명하지만 정체도 원인도 알 수 없는 급박한 재난 속에서 팔팔한 몸뚱이 하나에 의지해 내달리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경쾌한 속도감, 지치지 않는 유머로 그려냈다. 유독가스라는 도심 재난, 짠내나는 남녀 주인공이 산악 동아리에서 갈고닦은 특기를 살려 건물을 타고 오르며 상황을 돌파한다는 이야기가 작금의 시대상과 묘한 공명을 이루며 공감을 끌어낸다.

재난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자는 감독의 원칙도 '엑시트'엔 고스란히 담겼다. 그가 이야기해준 몇몇 원칙은 다음과 같다. "무능력한 정부 대응의 기시감 같은 게 등장하는 건 지양하고 싶었어요. 세세한 정보에 중언부언하지 말자, 고구마 같은 캐릭터를 배제하자, 나쁜 놈도 끝에는 귀여움을 남기자. 그리고 가급적이면 욕을 쓰지 말자."

"장르를 국한하기보다는 하이콘셉트를 잡고 기획하는 걸 좋아했어요.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들은 유독가스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가 시작이었어요. 가스도 성질 따라 아래서부터 깔리기도 하고, 10m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안개처럼 가스가 차올라 10m 높이에서 도시를 휩쓴다면 건물 위의 사람은 어떤 고난을 겪을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안개같은 유독가스를 헤짚고 다니는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도시의 생존기. 영화 감독의 꿈을 품고 절치부심했던 이상근 감독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필연일지도 모른다. 2012년 출발부터 같은 설정이었다. 이 감독은 "그 시절도 지금도 늘 청년들은 힘든 것 같다"면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있었다고 포장하려던 건 아니다. 젊은이들이 재난이나 곤란한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재난 자체보다 그 속의 두 젊은이에게 집중한다. 집에서 뭐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접시를 닦고 하던 자신의 모습을 어머니 칠순잔치에 간 백수 주인공 용남(조정석)에게 덧입힌 이 감독은 '감독님이 용남스럽다더라'는 이야기에 손사래를 치며 "짠내나는 제 모습이 담겨있을 뿐"이라고 했다.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랄까, 그런 걸 결부시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용남이가 설거지를 한다든가, 조카에게 무시당하는 건 실제 제가 겪은 일이기도 하지만, 피지컬이라든지 능동적인 면모, 뭔가를 위해 달리는 모습은 제 '워너비' 같은 거예요. 인정받고, 가족을 구하고 싶은 욕망이 담겼다고 생각해요. 두 주인공이 하는 클라이밍은 기획 단계부터 있던 설정이에요. 콘크리트 숲을 타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이상근 감독도 취재를 위해 3개월 정도 클라이밍 기초과정을 배웠다. 제 손으로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고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은 영화에서도 땀내 가득한 모습으로 구현된다. 조마조마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이 감독은 "클라이밍은 어떤 길로 어떻게 가느냐에 대한 문제풀이 같기도 하다"며 "우리가 살아가며 거창한 것보다 어떤 상황, 루트로 갈까를 매번 고민하지 않나. 이 스포츠 안에 그것이 잘 담긴 것 같다"고 클라이밍의 매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은근하고도 정겨운 가족간의 정, 한 시도 놓지 않는 짠내 가득한 유머는 '엑시트'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도심에 갑자기 터진 유독가스 재난영화, 그 속의 사람들을 보고 보고 더 쉽게 공감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상근 감독은 '엑시트' 속 유머에 대해 "살살 우려내는 국물같은 느낌 아닌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빡 오는 것보다 은근하게 하려 했어요. 멋진 삼촌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작업하다 햇빛 보러 나가면 조카가 슥 지나가면서 친구 안 보이게 꾸벅 인사하고 그랬어요. 그런 게 재미있어서 표현하려 했죠. 사실 자식으로 태어나 다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주위에도 인정받고 싶잖아요. 사실 부모님은 멋지지 않더라도 늘 지지하시고 응원해 주실텐데. 자신을 잘 내보이지 못하면서 그런 욕망이 저에게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지난달 칠순이셨어요. 업어드리진 못했어요. 영화에 빗대서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네요."

▲ 영화 '엑시트'의 임윤아(왼쪽)과 조정석. 제공|영화 '엑시트' 스틸
'짠내'를 폴폴 풍기며 관객에게 훅 다가오는 두 청년 주인공은 조정석과 윤아가 연기했다. 조정석은 산악동아리의 에이스였지만 지금은 하릴없이 철봉이나 하는 신세인 집안의 외아들 용남이 됐다. 윤아는 상사의 애정공세에 시달리는 연회장 부점장으로, 똑 부러지는 판단력과 책임감을 지닌 여인으로 등장해 조정석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출발은 조정석이었다. 특유의 너스레와 유쾌함을 지닌 배우이자 캐릭터와 상황을 맛깔나게 표현하는 그는 시작부터 1순위였다. 함께하기 위해 무려 1년을 기다렸다. 이 감독은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배우 얼굴을 넣으려고 하면 프로세싱이 안 됐어요. 용남이란 배우를 표현하는 건 조정석뿐이지 않았나 해요.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몸을 잘 쓴다 하고. 더 가릴 게 있나요. 실제로도 철봉을 10개 넘게 한다더라고요. 본인이 연습도 했어요. 오프닝의 철봉 신을 위해 식단 조절까지 했는데, 풀샷이나 와이어 도움을 받은 몇몇 고난이도 외에는 모두 직접 했어요."

소녀시대 출신 임윤아의 캐스팅도 마찬가지. 능동적이고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조정석의 용남과 동등한 버디물의 느낌을 내고 싶었던 이상근 감독은 조력자에 머물 인물을 원하지 않았다. 능동적이고 남을 먼저 생각하지만 허술하고 귀엽기까지 한 매력만점의 여주인공 의주에 임윤아를 캐스팅한 건 두고두고 흡족한 선택이었다고. 이상근 감독은 "'효리네 민박' 임윤아의 모습에서 의주의 어떤 지점을 발견했다"며 "오래 트레이닝을 경험과 근성이 발휘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뛰고 또 뛰던 윤아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건)시킨 게 아니라 자원이었어요. 사람이 달리고 달리고 하다보면 몸이 제어가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 순간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을 더 뛰더라고요. 그 신을 찍고 카메라까지 와서 털썩 주저앉아서 매니저에게 안겨셔 들어갔는데, 결국 마지막에 한 번 더 뛴 컷이 영화에 쓰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를 잘 만들어 보답해야겠다 다짐했는데, 영화를 통해 새로운 윤아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계셔셔 제가 할 말이 생겼어요."

박인환 고두심 김지영을 비롯한 정겨운 가족들의 앙상블은 "얻어걸렸는데 잘됐다" 이상근 감독을 흐뭇하게 했떤 대목이다. 이상근 감독은 특히 박인환이 맡은 아버지에 대해 " 아버지는 용남이와 같은 피가 흐른다. 답답한 걸 못 이기고 뛰쳐나갔을 거라 생각했다"며 "같은 피를 가진 무대포의 형제들이 뭉치면서 펼쳐지는 여정"에도 관심을 당부했다.

나이 마흔에 갈고 닦아 완성한 첫 영화를 내놓은 이상근 감독의 바람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각오는 다부졌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이미 로켓을 발사됐고, 대기권을 뚫고 쭉쭉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처음이라 모든 게 새로워요. 믿을 수 없는 일이 이어지고 있고요. 지금의 분위기가 끝까지 가서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웃으며 가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상근이라는 연출자가 이런 걸 잘 하는데' 그런 게 생기는 영화였으면 합니다. 닭살돋는 멘트긴 하지만 예전부터 생각했어요. 보는 사람의 심장이 살짝, 1cm 정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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