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1, 시즌2의 민지은 작가. 작가 제공.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생을 산 것 같아요. 제가 작가 치고는 여러가지 일을 많이 했죠?"

여의도의 작업실에서 만난 민지은(42) 작가의 얼굴은 밝았다. 그녀가 쓴 '검법남녀'(연출 노도철) 시리즈는 MBC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다. 2018년 외곬수 부검의와 신입 검사가 힘을 합쳐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가는 수사물 미니시리즈가 반향을 일으킨 뒤 딱 1년, 같은 작가, 같은 연출자가 같은 배우와 함께 2번째 시즌을 선보인 건 한국 방송가 전체를 통틀어서도 드문 일이다. 흡인력 있는 에피소드와 실감나는 부검 장면은 'CSI'에 길들여진 시청자들까지 열광케 했다. 그 중심에 민지은 작가가 있다. 사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엔 영화인이었다. 마케터로 9년을 살았다. "영화 보기 바빠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던" 시간이지만 작가 민지은의 밑거름이 됐단다. 그녀의 작품만큼 흥미로운 여정이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애초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작가 지망생이었다. 영화인이 된 건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특강을 듣고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분이 저 소탈한 여자분이라니." 1주일을 붙들고 쓴 자기소개서를 들고 명필름에 지원한 그녀는 무려 420명의 경쟁자를 뚫고 마케터로 입사했다. 멋진 여성 영화인을 꿈꿨고, 한때 M.A.C란 영화홍보사도 직접 차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수호 작가, 김영호 PD와 ESP컴퍼니란 공동 창작집단을 꾸린 것이 그녀를 다시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M.A.C 시절 만난 영화인의 소개로 연이 닿은 JK필름에서 수호 작가와 함께 영화 각색으로 시작해 '히말라야'를 공동 집필했다. 그녀가 마케터 아닌 작가로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처음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지난 시간을 돌이킨 민 작가는 "거창하게 말하면 마케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고 웃었다. 그녀는 첫 단막 '오래된 안녕'을 시작으로 '설련화' 2부작, 첫 장편드라마 '신데렐라와 4명의 기사들', 그리고 '검법남녀' 시리즈를 하나씩 되짚었다. "너무 좋은 연출을 만났다. 작가로서 그만큼 좋은 일이 없다. 그 모든 분들과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 공을 돌렸다. "영화도 드라마도 다 공동으로 하는 예술이자 산업이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그 일을 만드는 것 같아요." 

사전제작 16부작 드라마 '신데렐라와 4명의 기사들'을 두고 "초반의 기대과 후반의 결과가 맞았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냉정하게 자평한 민 작가가 '검법남녀' 프로젝트를 처음 내놓은 건 2016년. 그로부터 2년 전 드라마 '싸인'을 홍보하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직접 드나들던 때가 출발이었다. 그녀는 가까워진 연구원의 소개로 법의관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박신양이 연기한 '싸인' 속 법의관이 좋아 막연히 여자 법의관 이야기를 써야겠다 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여자 법의관의 남편은 뭐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검사' 이야기가 상상력을 자극했다. '법의관과 검사가 일하다 사랑에 빠진 거야?' 남편은 '그런 게 아니다' '소설 쓰지마라' 했지만, 어쩌겠나 그녀는 작가인걸.

"시작 때부터 '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어요. 사실 남편이 없었으면 시작 못할 프로젝트죠. 부검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 같은 디테일이 자문 없이 상상력만으로 쓸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같은 부검을 10번씩 반복하면 아무도 그 드라마를 못 보지 않을까요. 매 사건마다 법의학적 미스터리가 제기되고, 부검을 통해 미스터리가 더해지거나 풀리고, 모든 사람들의 수사가 맞물려야 한다고 봤어요."

'검법남녀'가 지금의 구성을 갖춘 데는 연출자 노도철 PD의 제안도 주요했다. '검법남녀' 프로젝트에 흥미를 보인 노PD는 처음 민지은 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시즌제를 언급하며 2가지를 제안했다. 하나, 멜로를 빼자. 둘, 남녀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자. 멜로를 빼는 건 민 작가도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성별은? 잠시 고심했지만 2주만에 새 기획을 썼다. 그렇게 드라마 '검법남녀'가 시작됐다. 고생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꺼내놓지 않았지만 그간의 노고를 집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법남녀' 시즌1,2를 하는 동안 몸무게만 무려 12kg이 빠졌을 정도다. 

▲ MBC '검법남녀' 시즌2 포스터
시즌1이 지나 1년 만에 돌아온 시즌2 '검법남녀2'는 지난 2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시즌보다 더한 사랑과 관심 속에 시청률 두자릿수를 돌파했다. 더 탄탄해진 이야기, 더 성장해 돌아온 캐릭터도 내내 큰 사랑을 받았다. 인터뷰 내내 다른 이들에게 공을 돌리던 민 작가는 두 시즌에 걸쳐 캐릭터를 세공해 온 배우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외골수 법의관 백범 역의 정재영은 민 작가마저 "쌤" 소리가 절로 나는 "백범 그 자체." 시즌2를 맞아 성장형 캐릭터로 거듭난 정유미의 검사 은솔도 마찬가지. 작가의 로망이 투영된 인물로 첫 시즌 때는 설정 탓에 욕을 먹어 배우에게 미안했다 한다. 시즌1 시절 중간 투입된 도지한 검사 역 오만석은 찰떡같은 캐릭터 소화력으로 시즌2의 주역을 꿰차고 맹활약했다. 유괴범 협박 장면은 "너무 잘 해 주셔서 도지한 섹시하다 싶었"을 정도. 민 작가는 "노민우 씨도 그렇고 다들 너무 잘해주셨다"며 "시즌2가 되니 배우들이 다 빙의가 돼 '제가 이렇게 할까요?'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무릎을 탁 치게 하더라"고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다양한 사람 의견을 받아들이고 좋은 의견을 취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 9년 동안 그것 하나는 철저하게 훈련이 됐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드라마지만 다른 사람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주관적 판단으로 하는 일인데 결과가 엄청 객관적이에요. 시청률이 소숫점 단위로 나오니까요. 정답 없는 싸움을 하기에,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법남녀2'의 마지막회. 다음 시즌의 빌런을 예고하는 듯한 마무리와 함께 백범은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 있으면 수사는 끝나지 않는다"고 익숙한 대사를 되뇌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일을 시작한 도지한이 닥터K 장철과 나타나 양수동을 스카우트하는 마지막 쿠키 영상은 사실 시즌3에 대한 예고나 다름없다. 노도철 PD도 시즌3에 대한 희망을 이미 수차례 밝혔던 바. 반전 같은 마무리에 대해 민 작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없앨 필요 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그는 당장은 휴식을 갖고 싶다며 "시즌3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려 한다.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 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거나고요? 명필름 영화가 제작될 때 3가지 법칙이 있어요.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해야 하는 이야기인가. 드라마 작가로서 하나 더 붙인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예요. '검법남녀'는 그 지점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고요, 휴머니즘과 페이소스가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야기 속에 반전의 눈물 한 방울이 있는.(웃음)"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MBC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1, 시즌2의 민지은 작가.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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