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주 ⓒ유현태 기자

[스포티비뉴스=아산, 유현태 기자] 전역.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보다 설레는 말이 있을까.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대감과 함께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오는 때다.

축구 선수라고 다를 것은 없다. 아산 무궁화에서 1년 반 정도 의무 경찰로 복무한 이명주도 "짐 정리도 조금씩 하고 있고, 8월 4일 마지막 경기 꼭 승리해서 좋은 추억으로 떠나고 싶다. 잘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딱딱한 표정으로 '다'와 '까'를 어미로 써서 대답하던 인터뷰 때와 딴판이다.

이명주는 2012년 K리그 마지막 신인선수상(2012년을 마지막으로 폐지, 2013년 영플레이어상 신설)의 주인공이자, 2013년 포항 스틸러스 더블의 주역이고, A매치 17경기에 출전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 소속으로 기록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까지 차지하면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절대 짧진 않았을 군 복무 1년 반 동안 '축구 선수로 어떤 것을 좇아야 하나' 고민했다. 지난 30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이명주와 만나 드디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나설 축구 인생 2막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 팔에 감긴 주장 완장, 이명주 ⓒ아산 무궁화

◆ 아산의 주장

이명주는 2017년 여름 알 아인을 떠나 FC서울에서 반 년을 보낸 뒤 2018년 아산에 합류했다. K리그2 소속의 아산에서 처음으로 받은 감정은 놀라움이다. 이명주는 "아산에 와서 운동하면서 선수들 개인 능력을 보고 놀랐다. (김)민균이 형부터 다들 보고 놀랐다. 경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작년엔 생각대로 다 됐다"고 돌아봤다. 그 결과는 우승이었다.

우승의 기쁨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컸다. 하지만 하나의 더 기쁜 순간이 있었으니 아산이 폐지 논의를 넘어 경찰 축구단과 일반 선수들이 모여 한 시즌 더 리그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이명주는 아산에서 가장 기쁜 순간에 대해 묻자 "당연히 우승이다. 우승하고 팀이 다시 모여서 동계 훈련 떠났을 때가 행복했다"고 설명했다.

2019 시즌은 이명주의 어깨에 다른 책임이 하나 더 얹어졌다. 팀의 주장을 맡게 된 것. 이명주는 "사실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제 일만 생각하면 됐는데 전체적으로 선수들이나 관리라고 해야 하나, 생각할 점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피곤하지만 주장을 맡은 것은 선수로서 성장이기도 했다. 이명주는 "팀을 잘 이끌고 그런 것보다도, 경기장 안에서 팀을 이끌고 말이 많아서 감독님이 (주장을)시켜주신 것 같더라. 어려서부터 수비수를 해서 경기장 안에선 팀을 이끄는 게 있었다. 경기장 밖에선 좀 조용히 지내지만. 주장 하면서도 팀을 생각하고 경기장 안에서 이끌다보니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번 시즌부터 함께 생활한 일반 선수들은 이명주가 떠난 뒤 아산을 책임져야 한다. 두고 떠나는 후배들이 눈에 밟힐 수밖에 없다. 이명주는 "생활을 따로 했다. 작년에 다같이 숙소를 쓰면서 많이 배웠다. 이런 선수들이 이래서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는구나 느꼈다. 운동 시간 외에 잘 쉬고, 잘 먹고, 365일 개인 운동을 나가는 선수들도 있었다. 같이 있다보니 그게 느껴지더라. 올해는 대학에서 온 선수들도 있고, 같이 지내면서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만나서 말해주는 건 있지만 실제로 보질 못하니까 아쉬운 점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별하는 마당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이명주는 꿈을 크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잘될 줄 몰랐다. 대구 화원이라고 시골이라기엔 그렇지만 외곽 지역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지역 출신 선수 중에 엄청나게 이름 있는 선수도 없었고, 꿈이 좀 작았던 것 같다. 프로에 가서 경기만 뛰자 생각했다. 신인상을 받고 팀이 우승하고, 유럽에 나가서 경기도 뛰고 이런 꿈이 부족했다. 어린 선수들은 유튜브나 인터넷에서도 많이 접하겠지만 꿈을 크게 가지고 축구를 하면 좋겠다. 크게 될 수도 있는데 꿈이 작다보면 못 넘어가니까. 유럽에 간다거나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거나."

▲ 진지하게 답변하는 이명주 ⓒ유현태 기자

◆ 터닝 포인트 : '난 어떤 축구 선수일까?'

이명주가 축구 선수로서, 또 리더로서 성장했지만, 1년 반 동안 가장 큰 변화는 축구 선수로서 자세가 아닐까. 이명주에게 '축구 인생 2막을 여는 상황에서 축구 선수로 무엇을 따라가고 싶냐'고 묻자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명주는 "군대에 있으면서 그걸 제일 많이 생각했다. 근데 아직 정답을 못 찾았다"더니 "전역까지 1달이 남았는데 빨리 찾아서 말씀드리겠다"며 웃었다. 

이내 진지한 얼굴로 답변을 이어 간다. 그는 "포항에 있을 때 잘해서 리그 우승도 하고 대표팀도 갔다. 서아시아도 진출해서 금전적으로도 보상을 받았다. 금전적인 것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문화도 배우고 사람으로서도 성장했다"며 자신의 축구 인생을 먼저 돌아봤다.

이어 "군대에 있으면서 늘 아쉬운 게 있었다. 월드컵에도 못 간 아쉬움, '내가 축구 선수로서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을까'하는 유럽 진출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아쉽지 않나. 내가 정말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까. 전역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전역 뒤엔 고민을 나누며 정답을 찾아볼 계획이다. 부대 생활을 하다보니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많지 않았다고. 이명주는 "터놓고 같이 이야기할 만한, 경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아무래도 제대해서 형들이나, 인생의 선배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일단 이명주는 전역 뒤 서울로 복귀한다. 2019 시즌이 막을 내리고 나면 이명주가 찾은 정답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이명주는 "그 이후는 사실 저도 모른다. 가능성은 전부 다 열어두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이명주(왼쪽). 하지만 월드컵 출전은 없었다.

◆ 당면 과제 : 서울의 우승 도전에 기여

먼 미래의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으나 단기적인 목표는 확고하다. 서울로 복귀해서 우승 경쟁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이명주는 "현재 목표는 서울에 가서 리그 우승을 하는 것이다. 상황도 좋다. 전북 현대나 울산 현대랑 승점 차이는 있지만, 강팀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밑에 팀한테 지지 않고 있어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돌아가면, 또 제가 전북과 울산한테 강하니까. 그런 데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자신있게 목소리를 냈다.

지금 최용수 감독 체제의 스타일에 잘 녹아들 수 있을 것이란 게 이명주의 생각이다. 이명주는 "제가 좋아하는 포지션이다. 미드필더가 수비형 하나에 공격형 둘이다. 공격형이 혼자 있는 것보다 같이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하는 박스 투 박스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미드필더가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현재 역삼각형 형태로 중원을 꾸린다. 앞에 배치되는 고요한과 알리바예프는 활발하게 뛰는 점이 이명주와 비슷하다.

무리하게 경쟁하기보단 팀을 위해 뛰는 것은 당연하다. 이명주는 "제가 있을 때랑 비교해서 감독님, 선수들도 바뀌었다. 지금 미드필더들이 너무 좋다. (고)요한이 형은 거의 외국인 선수 수준이고, 알리바예프도 득점력도 있고 킬러패스도 가능하다"고 높이 평가하며 "경쟁하기보단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일한 1095기 동기 주세종도 서울로 함께 복귀한다. 같이 경기를 보면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명주는 "(서울을) 응원하고 있다. 경기 챙겨보면서 선수들 장단점도 보고 있고, 세종이랑 분석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서울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이명주 ⓒFC서울

◆ 아산 팬 : 군 생활을 나태해지지 않게 도와주신 분들

아산에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팬들의 사랑을 느낀 것이다. 이명주는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만큼) 열정적인 축구 팬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서울이야 워낙 인구가 많고 다른 곳도 비슷하다. 부산, 대구 등(의 도시 규모도) 아산과 비교하기 어렵다. 많은 팬들이 있고 축구에 대한 관심도 크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느끼게 된 계기도 있다. 이명주는 "얼마 전 팬 미팅을 했는데 저랑 같이 앉았던 나이가 좀 있으신 아산 팬께 '축구 팀이 있는 게 어떻냐'고 여쭤봤다. '우리 지역의 자랑'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 작년에 팀이 없어질 뻔할 때도 돌아다니면서 다 서명받고 하셨다고. 축구 하나로 뭔가 사람들의 삶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느꼈다. 노력해서 경기장에서 더 뭔가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팬들과 직접 만난 경험은 새로운 경험이다. 이명주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팬들의 말을 직접 듣다보니 애틋해지더라"고 덧붙였다.

최근 아산의 관중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8 시즌 평균 유료 관중은 1748명. 하지만 6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6월 22일 대전 시티즌전 5016명, 7월 7일 전남전 5080명, 7월 21일 서울이랜드전 3185명을 기록했다. 2019 시즌 전체 평균 관중도 2833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명주는 "우선 세종이는 월드컵 다녀오고, 팀은 우승을 했고. 지난해에는 (황)인범이도 있었고, 올해는 (오)세훈이도 터졌다. 팬들이 알아서 찾아와주시는 수준인 것 같다. 올해는 원정에 가서도 팬들이 많이 기다려주셔서 놀랐다"고 밝혔다. 

아산의 시민 구단 전환에 대해서도 "팬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들이 원하지 않으시겠나"라며 반문했다.

이명주에게 아산은 행운의 팀이다. 선수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군 팀이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준 팀이기 때문이다. 이명주는 "군 팀이라 아산에서 열정을 못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나태해지지 않고, 동기를 갖고 운동하고 경기할 수 있고 또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산 팬들 덕분인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4일 열리는 부산 아이파크전은 '경찰'의 이름을 달고 뛰는 마지막 공식 경기다. 이명주와 주세종은 이후 출전 가능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명주는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떠나기 전에 좋은 경기로 보답드리고 싶다. 꼭 와주셔서 많이 응원해 주시고 축하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행사를)생각하고 있다. 선수들하고. 경기장에 오시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산 팬들에게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달라고 부탁했다.

▲ 이것이 말년의 웃음. 이명주. ⓒ유현태 기자
스포티비뉴스=아산,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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