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파노 라바리니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이 러시아와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FIVB 제공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과정에서는 이겼지만 중요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2020년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눈앞에서 놓쳤다. 이길 수 있었던 경기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대륙간 예선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전력은 세계 강호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5일(한국 시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열린 2020년 도쿄 올림픽 대륙간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홈팀 러시아에게 세트스코어 2-3(25-21 25-20 22-25 16-25 11-15)으로 역전패했다.

경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한국은 주공격수 김연경(터키 엑자시바쉬)은 물론 주전 선수들의 고른 활약을 앞세워 러시아를 괴롭혔다. 오직 김연경 막기에 집중한 러시아는 이재영(흥국생명)과 김희진(IBK기업은행) 그리고 김수지(IBK기업은행)와 양효진(현대건설)의 허를 찌르는 공격에 고전했다.

한국은 경기 내내 예리한 서브로 러시아 리시브를 흔들었다. 평균 키가 188cm인 러시아는 높이와 파워 넘치는 공격이 장점이다. 이러한 점을 처음부터 막으려면 강한 서브가 중요하다. 한국의 서브는 잘 들어갔고 이재영과 리베로 오지영(KGC인삼공사) 그리고 김연경이 버티는 리시브 라인도 탄탄했다.

▲ 스테파노 라바리니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 ⓒ FIVB 제공

모든 것은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대표 팀 감독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3세트 중반까지 한국은 라바리니 감독이 추구하는 '토털 배구'를 앞세워 '장신 군단' 러시아를 압도했다.

한국은 새로운 훈련 방법과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몇 단계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 이겨야 할 경기를 반드시 잡는 '강팀'은 아니었다.

한국의 불안 요소는 세터였다. 이번 대회를 코앞에 두고 주전 세터인 이다영(현대건설)이 발목 부상으로 낙마했다. 베테랑 세터 이효희(한국도로공사)는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31일 급하게 러시아로 출국했다. 마흔을 눈앞에 둔 이효희를 생각할 때 쉼 없이 사흘 내내 진행되는 일정은 부담이 컸다.

이효희는 3세트 중반까지 적절한 볼배급을 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려했던 체력이 떨어졌고 토스의 높이와 정교함이 조금씩 떨어졌다.

김연경도 이효희와의 호흡 불안과 반드시 3세트에서 경기를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기 내내 상대 코트를 내려 꽂은 김연경의 스파이크는 3세트 후반 실종됐다. 22-18로 앞서가던 한국은 이 상황에서 내리 7실점을 허용하며 3세트를 내줬다.

이후 팀 분위기는 러시아 쪽으로 넘어갔다. 4세트를 손쉽게 따낸 러시아는 승부를 최종 5세트로 이어갔다. 한국은 11-9로 앞서며 먼저 10점 고지를 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3세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며 내리 6실점을 내줬다.

▲ 러시아의 높은 블로킹 벽을 뚫고 스파이크하는 김연경 ⓒ FIVB 제공

한국은 주전 선수 상당수가 서른을 넘겼다. 김연경은 어느덧 31살이 됐고 김수지는 32살, 양효진은 30살, 그리고 이효희는 39살이다. 한 배구 관계자는 "V리그는 물론 해외 리그를 보면 배구는 한 경기를 뛴 뒤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노장 선수들도 체력 관리를 잘하면 하루에서 이틀 정도 쉬면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고 밝혔다.

사흘 내내 휴식 없이 진행되는 강행군에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노장 선수들의 체력이었다. 지난 5월부터 출범한 '라바리니호'는 아직 선수들의 체력이 100% 완성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이다영이 부상으로 빠진 점은 마지막 경기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한국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내년 1월 2020년 도쿄 올림픽 아시아 대륙별 예선이 태국에서 열린다. 태국은 이번 대륙간 예선에 출전했지만 1승 2패로 A조 3위에 그치며 아시아 대륙 예선으로 밀려났다.

중국은 B조에서 터키를 꺾고 3전 전승으로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숙적' 일본은 개최국 자격으로 올림픽 본선에 출전한다. 결국 한국은 아시아 대륙별 예선에서 태국과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을 펼치게 됐다.

문제는 러시아처럼 태국과의 일전도 적지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태국 주전 선수 상당수는 서른을 훌쩍 넘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 출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태국은 올림픽 예선을 자국에서 개최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 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제공

태국은 공격수 대부분이 단신이지만 세계적인 세터인 눗사라 톰콤이 버티고 있다. 눗사라는 올해 대표 팀 전념을 위해 해외 리그가 아닌 태국 자국 리그 팀을 선택했다.

과거 올림픽 예선 같은 중요한 대회에서는 한국이 이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홈 어드밴티지를 안고 있는 태국과 승부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러시아에 비록 역전패했지만 3세트 중반까지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이러한 조직력은 한층 강화하고 선수들의 체력과 부상 문제를 관리하면 내년 1월 전망은 어둡지 않다.

내년 1월 국내 V리그는 올림픽 아시아 예선 때문에 일시 중단된다. 소속 팀에서 뛰던 선수들은 다시 대표 팀의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 최종 예선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는 점과 노장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한편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6일 밤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다.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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