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수 감독 ⓒ강원FC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강원은 승점 38점으로 4위를 달린다. 선수단 구성이 화려한 것은 아니다. 한국영, 윤석영, 정조국, 오범석, 신광훈 등 대표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지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지는 시간이 조금 지났다. 김오규, 김지현, 이현식, 김현욱, 조재완 등 그간 큰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주전으로 활약한다. 대체 강원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김병수 감독은 언론에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 4일 강원FC가 경기 막판 추격전을 벌이면서 전북 현대와 3-3으로 비긴 뒤 기자회견에서도 그랬다. 평소보다도 경기장을 더 폭넓게 쓰던 조재완과 강지훈의 활용 방안을 질문하자 여느 때처럼 무심한 대답이 돌아온다.

"보시는대로일 것 같다. 축구는 너무 적나라하게 내놓으면 재미가 없다. 영화도 그렇지 않나."

그래서 김병수 감독과 강원의 축구는 기사로 쓰기 어렵다. 축구는 수준이 높고 어려운데 설명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선수들에게 믹스트존에서 질문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지만, 전북전을 마친 뒤 강지훈은 "(감독님이 팀에 맞춰서 짚어주시는 전술적 포인트가) 있긴 한데, 팀 전술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영업 비밀"이라며 웃는다. 취재하는 처지에서 보자면 친절한 감독과 선수들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 친절한 병수씨: 세밀하게 가르치고, 과감하게 하라고 독려한다

선수들에게라면 다르다. 강원의 상승세의 뒤엔 세밀하게 선수들의 움직임을 잡아주는 김 감독의 노력이 숨어 있다. 볼을 받는 자세, 포지션, 심지어 공을 차는 자세부터 시작해 전술을 그려 나간다. 핵심 미드필더 한국영은 "작은 동작이 바뀐다고 경기력 전체가 바뀔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가 달라지려면 선수 1명, 1명이 조금씩 좋은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덕분에 강원은 K리그 전체에서 가장 특징이 확실한 팀이 될 수 있었다. 이전에도 공격 축구를 표방한 지도자들은 있었지만 현재 강원의 축구는 과정에서도 특별하다. 강원은 특정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정형화된 포메이션이 없다. 경기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한다기보다 경기 중 수시로 형태가 변한다. 이외에도 점유, 세밀한 패스 전개, 공간 활용, 3자 움직임 등 강원을 설명하려면 많은 단어들이 필요하다.

선수들을 정신적으로도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과감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독려한다. 지난달 강원 유니폼을 입은 이영재는 강원-전북전에서 전반 종료 직전 도움을 기록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절묘한 드리블로 김민혁을 제친 뒤 정조국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했다. 이영재는 "(이전 팀에선) 어리기도 했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지금 감독님께선 그런(창의적인) 패스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 공이 들어가야 찬스가 생긴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찬스를 만들 수 있는 도전적인 전진 패스는 실수해도 괜찮다며 선수들을 다독인다고.

전술적 목표에 맞게 움직인다면 실수나 실점에 대해선 크게 지적하지 않는다. 김 감독은 지난 21라운드 경남FC전을 마친 뒤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승리다. 승리하면 실점은 크게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원의 공격적인 전술 운영에서 수비 뒤 공간 노출이나, 실수로 시작되는 숏카운터는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그림자다. 공격적인 운영으로 실점을 상쇄할 만한 결과를 내고 있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영재도 "실수를 하면 당연히 안된다. 하지만 부담을 크게 주시진 않는다. 실점하고 나서 다음의 행동이 중요하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고 밝혔다.

강원은 취재진에게 '불친절한' 감독의 '친절한' 지도 덕분에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그야말로 두 얼굴의 감독이다. 

▲ 이영재와 김병수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 디테일이 날개를 달다

김 감독의 '디테일'은 또 있다. 팀의 일관된 철학은 유지하지만 상대의 전술적 특징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준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성남FC와 12라운드에선 정조국-제리치 투톱을 배치하고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크로스를 활용했다. 성남의 수비진이 워낙 촘촘하기 때문에 선이 굵은 축구를 했다. 지난달 FC서울 원정 19라운드에선 무려 최전방 라인에 무려 공격수를 5명까지 배치했다. 서울의 촘촘한 파이브백의 좌우 공간을 넓히고, 공격 2선에서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 세밀하기 풀어가기 위해서다.

이렇게 세밀한 전술적 변화 위에 선수들의 과감한 시도가 나온다. 강원은 전북전에서 공격 시에 최종 수비 라인에 4명을 배치했다. 많아야 3명, 적을 땐 단 1명만 남겨두던 것을 생각하면 안정적인 운영이었다. 신광훈이 전북전에선 강지훈이 전방 배치된 것과 맞물려 오른쪽 풀백처럼 뒤를 지켰다. 강지훈은 "전북의 공격이 워낙 좋다. 수비를 안정시키고 하는 게 맞다. (신)광훈이 형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설명했다. 전북전 변화는 공격진에서 더 도전적인 시도를 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

중원의 수가 부족한 것은 '과감한' 방향 전환 패스와 측면에 배치된 조재완과 강지훈의 돌파를 활용하면서 타개했다. 우선 이영재와 김오규가 대각선으로 긴 패스를 연결하면서 전북을 크게 흔들었다. 이영재는 "전진패스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면서 "감독님이 오픈패스를 좋아하신다. 저의 장기라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시도하니까 좋은 패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실수가 나오더라도 그렇게 해야 선수로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재완과 강지훈은 사이드라인을 밟고 설 정도로 넓게 벌려섰다가 긴 패스가 연결되면 과감하게 1대1 돌파를 시도했다. 수비수가 뒤에 있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을 터.  강지훈의 측면 돌파에서 시작해 전반 38분과 전반 종료 직전 전북의 골망을 흔들었다. 과감한 돌파가 시작이었다. 반대쪽에 배치된 조재완도 34분 이영재의 롱패스를 받아 최철순을 뚫고 강지훈에게 좋은 찬스를 차려줬다. 강지훈은 " 측면으로 공이 가면 과감하게 하라고 하신다"고 말한다.

▲ 강원의 환호 ⓒ한국프로축구연맹

◆ 경기력이 주는 자신감

어려운 전술을 경기장에서 구체화하기 시작한 강원의 수확은 자신감이다. 강지훈은 "팀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저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다. 전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려는 플레이를 하면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패하고도 빠르게 회복해 2연승한 것도 이런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감독 역시 "지금 이런 상황(막판 추격전)이 자꾸 일어나는 것은 선수들이 의욕에 차 있고, 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강원의 자신감을 표현했다.

자신감은 먼저 실점했을 때 가장 확실히 묻어난다. 6월 23일 벌어진 1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5-4 역전을 하면서 자신감은 최고조에 올랐다. 강원은 인천 유나이티드와 18라운드, FC서울과 19라운드, 경남FC 21라운드, 전북의 24라운드까지 최근 7경기에서 4번을 먼저 실점했다. 그리고 2승 2무를 수확했다. 먼저 득점한 경기에서 거둔 2승 1패까지 포함하면 최근 8경기에서 5승 2무 1패다.

김 감독은 최근 유행하는 '병수볼'이란 말에 "불쾌하다. 우리 선수들한테도 말했지만 실행은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많은 칭찬을 받는 것에 그리 욕심이 없다는 뜻. 하지만 축구 측면에서는 여전히 향상심이 대단하다. 김 감독에게 만족스러운 축구는 없다. 강원이 지금 펼치는 축구가 잘 구현된다면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과 강원의 축구에 더 큰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전술에는 어느 정도란 건 없다. 만약에 미션을 줘서 선수들이 쫓아오면 더 어려운 걸 내놓게 된다. 전 그런 스타일이다. 늘 업그레이드 된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것, 익숙한 것은 싫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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