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우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키움 히어로즈의 야구를 보다 보면 낯선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젠 익숙해졌다. 낯설다는 말과 익숙해졌다는 말은 대척점에 서 있다. 그만큼 키움이 다른 팀들은 쓰지 않는 새로운 전략을 쓴다는 뜻이다.

키움이 앞서 나간 경기, 선발이 5회나 6회에 위기가 오면 조상우가 마운드에 오른다. 키움 불펜 투수 중 가장 위력적인 공을 뿌린다. 

조상우가 위기를 해결하면 다음 이닝엔 또 다른 투수가 등판한다. 조상우의 투구수와는 상관없다. 투구수 6개로 2아웃을 막았든 10개로 세 타자를 잡았든 상관없다. 조상우는 그 위기 상황만 막아 놓고 더 이상 등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전패하는 경우도 나온다. 조상우를 좀 더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장정석 키움 감독은 그렇게 놓친 경기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늘 강조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은 분명히 투수에게 데미지가 된다. 똑같은 투구수를 기록하더라도 분명히 다른 피로도가 쌓인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위기를 넘긴 투수에게 다음 이닝을 맡겼을 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설사 막아 낸다 하더라도 그렇게 쌓인 피로가 결국 그 투수에게 부담이 되며 미래에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당장 한 경기를 놓치더라도 더 많은 경기를 이기기 위해선 주자 상황에 따른 불펜 투수들의 기용 방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등 뒤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주자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보다 훨씬 더 큰 피로가 쌓인다는 것이 장 감독의 투수 교체 이론이다.

그래서 키움은 가급적 이닝이 바뀌었을 때 불펜 투수도 교체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위기에 몰리면 이닝 중에도 교체가 이뤄지긴 하지만 그 위기를 넘긴 투수가 다음 이닝까지 올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피로도의 크기가 다르다는 신념에 따른 결정이다. 간혹 투수가 부족해 보이는 경기에서도 장 감독은 자신의 신념을 잘 흔들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결과는 좋다. 키움 불펜 투수들은 평균 자책점 3.65로 선발투수들의 3.97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구원 투수들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이 6.89로 SK(7.91)에 이은 2위다.

장정석 감독식의 투수 운영은 다른 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마무리 투수 운영이 그렇다.  

KBO 리그에서는 여전히 멀티 이닝 세이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장 7일 잠실 두산-한화전에서도 두산이 마무리 이형범에게 2이닝 세이브를 맡기려고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실패가 됐지만 8회 무사 1, 3루에서 이형범이 위기를 막았다면 9회에도 당연히 올라왔을 것이다.

아직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결정할 수는 없다. 시즌의 전체적인 결과를 놓고 이야기할 내용이다.

하지만 장정석 감독의 이론에 대해 많은 감독들이 고민을 해 볼 필요는 있다. 장 감독은 감이 아닌 데이터를 근거로 내린 결론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를 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들의 고통.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만 데이터는 그 피로도가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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