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진천, 정형근 기자 / 이강유·송승민 영상 기자] “무조건 처벌을 강화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성 교육, 문화를 통해 만들어야지 선수를 징계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선수촌은 선수를 징계하는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원하는 곳이다. 평소 선수들에게 훈련은 좋은 경기력을 만들지만 인성은 평생의 경쟁력을 만든다고 얘기하고 있다.”

올해 초 한국 체육계는 지도자의 선수 폭력·성폭력 파문으로 국민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일부 종목 지도자의 일탈이 체육계 전체에 만연한 문제처럼 인식됐다.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진천선수촌에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린 대부분의 지도자와 선수들은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정신에 맞는 선수촌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 신치용(64) 전 남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2월 진천선수촌을 총괄하는 선수촌장의 중임을 맡으며 “선수가 존중받는 선수촌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잃어버린 체육인의 자존심을 찾는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스포티비뉴스는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신치용 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진천선수촌 수장’은 선수촌 운영 철학과 규율 강화, 빙상계 기강 문제와 도쿄 올림픽 보이콧 논란 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다음은 신치용 선수촌장과 일문일답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장이 된 지 약 6개월 지났다. 어떤 원칙과 철학을 세워 선수촌을 운영하고 있나?

“우선 선수촌의 좋은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위에서 지시하는 게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느끼고, 책임감을 갖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서로를 존중, 배려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문화가 선수촌에 형성돼야 한다. 국가대표 선수, 지도자는 대단한 자리다. 하지만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평소 선수들에게 훈련은 좋은 경기력을 만들지만 인성은 평생의 경쟁력을 만든다고 얘기한다. 아직 부족함이 많다. 계속 노력해야 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지켜본 선수촌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해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선수와 지도자가 위축돼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그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지도자들과 소통하며 노력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결국 우리 선수와 지도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남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선수와 지도자가 자신감을 갖고 훈련하도록 촌장으로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선수촌에서 쇼트트랙 대표팀의 성희롱 논란, 빙속 대표팀의 음주 적발 등이 문제가 됐다. 빙상계의 기강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빙상에서 계속 실망스러운 일이 생겼다. 많은 국민께서 실망하셨다. 우리도 부끄럽다. 종목의 특성을 말하긴 좀 그렇지만 빙상은 그 종목만 모여서 훈련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 그런 일이 생긴다. 어쨌든 철저히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많이 반성하고 선수들의 생활 관리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쇼트트랙의 성희롱 논란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 ‘전원 퇴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쇼트트랙은 팀 전체 훈련 분위기를 전환하고, 변화와 반성을 해야 한다고 봤다. 전원 퇴촌을 시킨 건 책임을 묻기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추스르고 반성하는 팀 문화를 만들라는 의미였다. 선수촌은 선수를 징계하는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원하는 곳이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선수에 대해 과감하게 규정대로 징계해야 한다. 절대 쉽지 않은 징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선수 1명을 징계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문제를 계기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선수촌 내 규율을 강화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무조건 처벌을 강화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수와 지도자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인성 교육, 문화를 통해 만들어야지 선수 징계를 한다고 되진 않는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사람이 안 지키면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먼저라는 걸 선수들이 느낄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할 생각이다. 지도자가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선수들이 지도자를 본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

-국가대표 선수의 ‘인권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걱정이 많다.

“국민들께서 걱정해주는 건 잘 알고 있다. 스포츠계의 인권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인권 존중, 사람 먼저 생각하는 환경과 문화 속에서 훈련하고 있다. 선수를 구타하거나 억압하는, 폐쇄적인 건 없다. 누구든 자신이 결정하고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문화이다. 운동을 억지로 한다고 좋은 결과가 만들어질 수 없다. 선수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자발적으로 할 때 결과도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끔 잘하겠다.”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이 체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혁신위의 권고안 중 가장 큰 쟁점이 된 부분은 학교체육 정상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학생 선수는 수업을 모두 듣고 난 후 훈련하고, 주말에만 시합하라는 내용이 골자인데 이 경우 국가대표 선수를 제대로 양성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다.       

“그 경우 현실적으로 훈련과 경기가 어렵다. 수업권 보장과 학생 선수 보호는 맞는 얘기지만 개인이 선택해야 할 권한도 주어져야 한다. 소질이라는 게 있다. 선수는 소질을 빨리 계발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 종목도 있고 늦어도 중학교 때는 다 운동을 해야 한다. 수업을 다 하고 훈련한다는 자체가 쉽지가 않다. 피로도가 높은 상황에선 훈련 자체가 안 된다. 훈련 집중도도 떨어지고 부상당할 염려도 많다. 이걸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앞으로도 상당히 연구하고 절충해야 한다. 선수촌에서도 수업을 다 하고 훈련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한다.”

-도쿄 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았다.

“한국 선수단은 지난번에 (이기흥) 회장님께서 금메달 5개 정도로 상당히 겸손한 목표를 말씀하셨다. 현장에 있는 선수촌장으로서 5개에서 8개의 금메달과 종합 10위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큰 문제가 없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선수들이 꾸준히 훈련하고 준비하고 있다.” 

-일부 국민들은 이제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한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선수촌장의 견해는?

“어느 선수가 2등을 하고 싶겠나. 스포츠 자체, 승부는 경쟁력이다. 경쟁하고 승부에 따라 등수가 정해진다. 누구나 1등을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1등, 금메달이 아니어도 좋다는 말은 과정을 정정당당하게 하라는 말이다.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올림픽이라는 꿈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운동하는 동안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근 한‧일 문제로 올림픽 보이콧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는 정치고, 스포츠는 스포츠다. (올림픽 보이콧은) 안 할 것으로 생각한다.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우리만 외톨이가 돼서는 안 된다. 선수들은 올림픽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가고 있다. 최악의 경우가 된다면 우리 국민들의 공감대가 필요할  것이다. 내년에 어떻게 되든 우리는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한다. 보이콧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선수촌을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가?

“선수촌이 국가대표 ‘다움’이 있는 선수촌이 됐으면 한다. 선수들은 선수 ‘다움’, 지도자는 지도자 ‘다움’이 있고, 직원은 국가대표를 지원하는 직원답게 행동하는 선수촌이 됐으면 좋겠다. 어린 친구들이 와서 언제든지 대표 선수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선수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수촌이 국민들께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 선수촌장을 맡았다. 정정당당한 선수촌, 국민들께 사랑받고 존중받는 선수촌을 만들고 싶다. 도쿄 올림픽은 우리와 일본과 관계도 있는 만큼 일단 올림픽을 잘 마무리하는 게 소임이지 않나 생각한다.” 

스포티비뉴스=진천, 정형근 기자 / 이강유·송승민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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