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꾸준히 스리백을 실험하고 있다. 지난 6월 A매치 당시 호주와 경기에 3-5-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이어진 이란전은 4-1-3-2 포메이션으로 전환했다. 당시 결과는 호주전이 1-0 승리, 이란전이 1-1 무승부였으나 호주전의 내용이 더 안 좋았다.

월드컵 예선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9월 A매치에도 벤투 감독의 흐름이 비슷해 보인다. 10일 투르크메니스탄전을 앞두고 5일 조지아와 가진 친선 경기에 다시 3-5-2를 썼다. 선수 구성은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다. 스리백 앞에 한 명의 빌드업 미드필더를 두고 풀백을 윙백처럼 올린 뒤 투톱 뒤를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지원하게 했다. 

◆ 플랜B로 전술 실험, 조직력 문제 나올 수 밖에 

전술은 죄가 없다. 선수들이 전술이 담고 있는 특성을 잘 수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호주전에 이어 조지아전에 가동한 3-5-2 실험 시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벤투 감독이 전술 실험을 선수 실험과 병행했기 때문이다. 호주전에 황의조와 이용이 벤치를 지켰고, 주세종이 빌드업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조지아전은 선수 실험이 더 과감했다. 황의조, 이용, 김영권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중원에 이강인, 골문에 구성윤이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스리백의 우측에 박지수가 배치됐다. 지난 1월 사우디 아라비아와 친선전 당시 레프트백이 모두 부상당해 윙백으로 실험해본 황희찬을 오른쪽 윙백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포메이션도 낯선데 선수들도 낯서니 조직력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벤투 감독이 스리백을 실험하는 이유는 2019년 AFC UAE 아시안컵에서 경험한 5-4-1 대형의 전면 밀집 수비를 깨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전문 수비수 세 명을 두에 두고 나머지 7명의 필드 플레이어에겐 수비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도 자기 진영을 꽉 채운 전면 수비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상대 역습에 대비해 직접 골문을 노릴 두 세 명의 선수 동선만 커버할 중앙 수비수 셋만 두고 나머지는 공격 성향으로 배치했다.

▲ 한국-조지아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 생각보다 강했던 조지아, 내려 앉지 않으니 전술 특성 퇴색

조지아는 유럽에서 그와 같은 선수비 후역습을 펼치는 팀이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공을 다루는 수준과 공격을 전개하는 능력, 전방 압박 능력 모두 출중했다. 그에 비해 후방 빌드업을 중시하는 벤투 축구에서 전문 수비수만 셋이 배치되고, 무엇보다 풀백/윙백 포지션에 미드필드 연계 플레이가 원활 치 않은 선수들이 배치되자 점유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

조지아늰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고, 원톱 오크아슈빌리는 물론 2선에 배치된 카자이시빌리, 아나니제, 타비타시빌리가 한국의 스리백과 그 앞의 백승호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괴롭혀 한국의 공 줄기가 살아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로 그로 인해 손흥민과 이정협의 투톱은 전방에 고립됐고, 공을 쥐고 근거리에서 원투 패스와 침투, 돌파 등으로 장점을 발산할 수 있는 권창훈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이강인은 황인범처럼 백승호 옆과 권창훈, 손흥민, 이정협 등 스트라이커 성향을 가진 선수들을 뒤에서 돕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됐으나 공을 소유한 채 팀 전체가 전진하지 못하며, 공수 간격이 벌어지자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별로 나오지 못했다.

3-5-2 포메이션으로 나왔지만 황희찬은 사실상 오른쪽 측면 공격을 담당했고, 박지수가 라이트백 포지션의 수비를 커버하며 김진수가 비대칭으로 더 수비에 가담하는 4-3-3 포메이션 형태로 경기가 운영됐다. 문제는 수비 지역 커버가 아니라 공을 소유한 상황에서의 능숙함이다. 

▲ 수비와 풀백의 지원을 받지 못한 중원 ⓒ연합뉴스


◆ 공 가진 선수들의 실수, 공 없는 선수들이 문제

3-5-2 포메이션이지만 구체적으로 3-1-4-2 포메이션 형태에서 백승호는 두 명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나 좌우 윙백, 혹은 센터백의 근거리 지원 움직임을 통해 패스 코스를 열어야 하는데, 무려 4명이 전방에 배치된 조지아의 압박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권창훈이 공을 빼앗기고 실점한 상황도 그런 백승호를 지원하러 내려왔다가 같은 상황을 당했다.

전방에 배치되었던 손흥민이 중원 후방 지역까지 내려와 공을 운반하는 모습이 목격된 것은 그래서다. 앞에 있는 선수들이 뒤로 내려와줘야 하는 것뿐 아니라 뒤에 있는 선수들도 올라와서 지원해야 한다. 황희찬이 우측에서 공을 잡았을 때도 지원 움직임이 부족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 간격이 너무 벌어졌다. 

패스 미스가 빈발한 이유는 간격이 벌어지고, 주변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패스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경기 내내 선수들의 의식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발 더 움직이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있다. 주장 손흥민이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대표팀에 놀러오는 것이 아니"라며 선수들을 질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던 것은 컨디션 문제도 있다. 스리백 모두 아시아에서 넘어왔다. 장거리 비행으로 쌓인 피로가 적지 않다.  또한, 조지아 공격이 생각보다 강하다 보니 스리백은 전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진수와 황희찬은 전방으로 직선적 움직임을 통해 공격 가담에 능하지만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 미드필드를 도울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 실험적 선발, 수비 라인은 모두 격전 후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가 있었다. ⓒ연합뉴스


◆ 아시아 리그 선수들의 장거리 원정 피로, 센터백-풀백의 중원 지원 부족

홍철과 이용이 기용되었다면 중원 연계는 보다 안정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장거리 이동을 한 국내파 중에서도 나이가 많도, 국내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피로 누적을 호소했다. 벤투 감독은 이들의 부상을 우려해 친선전에 무리하게 투입하지 않고 휴식을 줬다. 

조지아전의 목적은 결과가 아니라 전술 적응력이다. 벤투 감독은 틀을 바꾸지 않고 스리백에 박지수를 빼고 김영권을 넣어 호주전과 같은 권경원-김영권-김민재 형태로 후반전을 보냈다. 김민재가 오른쪽 센터백에 배치되니 수비적으로 안정감이 생겼고, 권경원과 김영권이 자리를 바꿔가며 기점 패스를 보내 공 전개가 원활해졌다.

중원에는 백승호가 빠지고 정우영이 들어가면서 안정감이 보강됐다. 무엇보다 황의조가 투입과 함께 손흥민의 크로스를 동점골로 연결하면서 조지아 수비도 위축돼다. 이어 투입된 이동경과 김보경도 중원과 측면에서 날렵한 플레이를 펼쳐 후반전에는 전반전보다 경기 내용이 개선됐다. 

벤투 감독은 전반전 45분 내용이 부임 후 본 최악의 내용이라고 했다. 스리백을 실험했을 때마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최악의 플레이를 봤다고 말해왔다. 라이트백 포지션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공을 다룰 수 있는 장현수를 벤투 감독이 왜 몇몇 실수에도 중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장현수는 국가 대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은 선수다. 

전술은 죄가 없지만, 그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현재 한국 대표팀에는 볼플레잉 센터백은 물론, 미드필드 플레이가 가능한 풀백도 많지 않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수준의 3-5-2를 구사하기에 제한이 적지 않다. 하루 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조지아보다 전력이 낮은 팀을 상대할 아시아 예선에서는 이보다 나은 수준의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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