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특별취재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뉴스는 어느 때보다 많이 대중에 소비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매체와 기자는 늘어나지만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수익성도 저하되고 있다. 대한민국 인터넷은 네이버로 통한다. '뉴스 위기론'의 배경에 대형 포털 사이트의 뉴스 유통 독점이 있다.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큰 스포츠·연예 뉴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스포티비뉴스는 업계 전문가를 통해 언론 생태계의 위기를 진단한다. <편집자 주>

◆손흥민 경기, 네이버에서 볼 수 없다

'손흥민 출전' EPL 경기, 네이버에서 시청 불가… 중계권 합의 결렬

지난달 9일 네이버 모바일 스포츠 뉴스 메인을 장식한 기사 제목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2019-20시즌 프리미어리그(PL) 중계권 협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네이버에서 손흥민의 경기는 물론이고, PL 전 경기를 보기 힘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이 1,200개 이상 달렸다. 그야말로 '핫'한 기사였다.

그런데 여러모로 네이버에 불리한 이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떡하니 올라갔을 때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인공지능(AI) 편집의 객관성에 감탄하기보단 '왜 네이버가 이 기사를 모바일 메인에 올라가도록 놔뒀을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해야 AI가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라고 결론 내린 관계자도 있었다.

네이버 인공지능 편집의 객관성이 돋보일 수 있는 사례인데, 역설적으로 몇몇 관계자들은 네이버 인공지능을 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네이버 '에어스(AiRS)'를 향한 합리적 의심이 업계에 공공연히 퍼져 있다는 방증이었다.

◆100%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뉴스 편집의 시대?

네이버는 압도적인 점유율의 국내 1위 포털사이트로, 뉴스 편집의 방향에 따라 여론까지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과거 △언론 매체도 아닌데 편집권을 갖고 △여러 매체사가 제공한 뉴스를 선별해 메인에 배치하면서 일종의 게이트키핑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네이버는 인공지능 편집 기술인 '에어스'를 개발했고 2017년 뉴스 편집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스포츠·연예 뉴스판에도 적용했다.

에어스는 인공지능 기반의 뉴스 추천 기술이다.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의 앞 글자들을 따 'AiRS(AI Recommender System)'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이버는 에어스의 도입으로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고 인공지능이 100% 편집하는 뉴스 서비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한성숙 대표는 "담당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는 구조를 짜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4월 네이버는 기자회견에서 2002년부터 가동된 뉴스 수동 편집 시스템이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공지능의 불완전성…어그로 기사의 범람

하지만 사람의 손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결함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할 관리자가 필요하다.

에어스는 '많은 독자들이 읽은 기사를 좋은 자리에 편집한다'는 기본 편집 기준을 갖고 있다. 에어스가 스포츠 뉴스에 도입된 지난해 가을, 몇몇 스포츠 기자들은 이 알고리즘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다른 기사들을 짜깁기한 저질 기사들을 마구 쏟아냈다.

가치 판단에 약한 에어스는 이 기사들을 독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기사라고 판단했다. 메인 한가운데에 이 기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A매체의 어떤 기자는 하루 20꼭지 이상 '어그로' 기사를 써 댔다. 이 기자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번엔 또 어떤 저질 기사가 나올까?' 궁금해 한 독자들이 이 기자의 기사에 쏠리는 이상 현상도 발생했다.

네이버는 부랴부랴 '현장에서 쓴 기사'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편법적인 '어그로' 기사가 튀어나오는 걸 막았지만, 언제 또 알고리즘의 취약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올 기사가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인공지능 편집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라도, 사람의 관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너무나 잘 보이는 '보이지 않는 손'

문제는 최소한의 수준이어야 할 관리자의 개입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에어스가 실제 스포츠 뉴스 편집의 몇 %를 담당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이 스포츠 뉴스판을 주물럭주물럭하고 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여럿 보인다.

<'손흥민 출전' EPL 경기, 네이버에서 시청 불가… 중계권 합의 결렬> 기사가 메인에 올라가도 여러 사람들이 객관성을 의심했던 이유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버가 원고료를 지불해 받고 있는 칼럼니스트들의 글이다. 타 매체의 수준 높은 칼럼은 묻히기 일쑤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네이버 칼럼은 메인에 배치돼 눈에 잘 띈다. 네이버 칼럼을 특별히 관리하는 것이라면, 에어스의 편집 객관성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다른 기사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영상 콘텐츠들은 무슨 기준으로 메인 기사로 선정되는지 알 길이 없다.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영상 콘텐츠는 에어스가 개입할 수 없는 편집 영역, 즉 관리자가 작업하는 영역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네이버TV 영상이 아닌 유튜브 영상을 안고 있는 기사는 네이버 모바일 메인으로 올라간 뒤 왜 금세 내려오는지 그 까닭을 파악하기 힘들다.

네이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기사가 올라오는 뉴스판 편집권은 기사를 작성하는 각각의 매체사에게 일부 넘겼다. "에어스를 앞세우면서 입맛대로 편집한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스포츠·연예 뉴스판 편집권은 그러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로 귀결된다.

스포츠·연예 기사를 통해 네이버에 유입되는 콘텐츠 소비자들을 놓치기 싫기 때문이고, 스포츠·연예 매체사가 종합 매체사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연예 매체사는 네이버에 끌려다닌다. 현장에서 쓴 기사에 가중치를 둬 메인으로 갈 가능성을 키운 편집 기준이 설정되면서 스포츠·연예 매체 업계에 특이한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네이버 메인으로 기사를 올리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현지에 기자를 파견하거나 통신원을 고용해야 한다. 안 그래도 넉넉하지 않은 전재료를 받으면서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몇몇 군소 매체는 현지에 살고 있는 통신원의 이름만 빌려 쓰고, 실제로 기사는 편집국에서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네이버 커넥트 2019'에서 2019년 서비스 방향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총알받이

에어스는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를 선별하고 독자들의 기호를 분석한 뒤, 메인을 편집한다. 그러나 여기에 관리자의 손길이 너무 많이 개입되는 건 아닌지 중간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성숙 대표의 "담당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는 구조를 짜고 있다"는 말에 어디까지 근접해 있는지 네이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매체 관계자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갖고 있다. "네이버 에어스의 편집 기준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물으면 네이버는 회사 내부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답변한다. 독자들이 많이 본 기사가 메인으로 간다고만 할 뿐이다. 에어스 편집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면 "다 에어스의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고 우린 모른다"고 한다.

네이버는 에어스의 편집을 앞세우면서 여전히 스포츠 연예 뉴스판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그 해소 방안은 무엇인가? 100% 편집을 맡기려고 개발했다는 에어스를, 100% 총알받이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에어스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비판, 에어스를 앞세우고 책임을 피하고 있다는 비판에 네이버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취재팀(류재규 이재국 김원겸 이교덕 한준 김태우 배정호 김현록 정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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