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채드벨이 17일 대전 키움전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한화 이글스
[스포티비뉴스=대전, 이재국 기자] "체인지업 구속을 떨어뜨리자. 슬라이더 대신 커브를 살리자."

한화 외국인 좌완투수 채드벨(30)은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퇴출을 걱정해야하는 처지였다. 개막 이후 5월 5일 어린이날 kt전에서 승리하면서 5승2패를 기록할 때만 해도 준수한 성적표였지만, 이후 7월까지 13경기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7연패를 당하며 오락가락했다. 간간이 호투할 때는 팀 타선이 침묵하고, 동료들이 점수를 좀 뽑아준다 싶으면 스스로 무너지는 엇박자 속에 7월말까지 어느새 성적표는 5승9패, 평균자책점 4.15으로 떨어졌다.

8월 1일 수원 kt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6승째를 거두면서 기지개를 펴는 듯했지만 다음 등판인 8월 7일 잠실 두산전에서 5.1이닝 4실점으로 물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리 통증까지 발생했다. 차도가 없자 8월 14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기약 없는 나날들. 이대로 끝난다면 재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허리 통증 이후 극적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6일간의 휴식 속에 8월 30일 1군 엔트리에 복귀한 채드벨은 잠실 LG전에 선발등판해 6.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더니 지난 17일 대전 키움전까지 최근 4경기에 등판해 모조리 승리를 따냈다. 8월 1일 수원 kt전까지 포함하면 5연승 행진이다.

8월부터 따지면 5승무패 평균자책점 1.77(40.2이닝 8자책점)이다. 최근 4연승 기간만 놓고 보면 평균자책점 1.23(29.1이닝 4자책점)이다. 좌완의 이점까지 있어 지금처럼만 던지면 최고의 외국인투수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17일 키움전은 압도적인 피칭을 이어가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7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 행진을 벌이다 이정후에게 내야안타를 맞으며 대기록이 무산됐지만, 8회까지 11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2안타 1사구 무실점으로 KBO리그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이날 최고구속은 150㎞. 8회 2사 1·2루 위기에서 대타 이지영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포효했다. 이지영을 상대로 던진 이날 마지막 공 111구째도 시속 149㎞를 찍었다.

▲ 17일 키움전에 선발등판한 채드벨의 투구분석표
전반기만 하더라도 퇴출을 걱정해야했던 채드벨이지만 이젠 완전히 '골든벨'로 변신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한화 정민태 투수코치는 크게 2가지를 꼽았다.

우선 체인지업의 속도 변화다. 정 코치는 채드벨에게 "체인지업 구속을 더 낮추자"고 제안했다. 정 코치는 이에 대해 "구단에서 제공하는 트랙맨 데이터를 뽑아 본 결과 구속이 낮을 때 체인지업이 더 잘 떨어지고 날카롭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135㎞ 안팎에서 형성되던 체인지업 구속을 최고 133㎞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채드벨이 잘 따라줬다"고 설명했다.

채드벨은 실제로 17일 키움전에서도 체인지업을 10개 구사했는데, 시속 127~133㎞에서 형성됐다. 오히려 체인지업 구속이 줄면서 직구와 스피드 격차가 커졌고, 타자들의 타이밍은 흐트러뜨러는 효과적인 무기가 됐다. 빠른 체인지업이 반드시 좋은 무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채드벨은 전반기만 해도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던 투수였다. 그러나 크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타자들에게 잘 공략 당하는 구종이 슬라이더였다. 그러자 정 코치는 채드벨에게 "커브가 좋으니 슬라이더는 버리고 커브를 많이 던져보자"고 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채드벨의 커브에 타자들의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며 춤을 췄다. 17일 키움전에서도 직구(77개) 다음으로 많이 던진 것이 커브(23개)일 정도로 제1의 변화구로 장착됐다. 실제 이날 슬라이더는 1개밖에 던지지 않았다.

우완(정민태)과 좌완(채드벨)으로 다를 뿐, 승부하는 구종만 놓고 보면 정 코치의 현역 시절과 흡사하다. 정 코치는 강력한 직구와 함께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 타자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체인지업으로 최고 투수 반열에 올라 현대 왕조를 이끌었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송은범(현 LG)에게 투심패스트볼을 장착시켜 부활의 반전 무기를 만들어준 정민태 코치는 이번엔 외국인투수 채드벨의 성공적 변신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 한화 정민태 투수코치(오른쪽)가 마운드에 올라 채드벨(왼쪽)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채드벨이 이날 10승(9패) 고지에 오르면서 한화 구단의 외국인 흑역사를 지워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올 시즌 워윅 서폴드(11승11패)와 함께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면서 한화 구단 창단 이후 최초로 외국인투수 2명이 동반 10승을 달성하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서폴드는 최근 1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를 기록했고, 채드벨은 최근 5연승을 올렸다.

그동안 한화에서 10승 이상을 거둔 외국인투수는 2007년 세드릭 바워스(11승), 2015년 미치 탈보트(10승), 2017년 알렉시 오간도(10승), 2018년 키버스 샘슨(13승) 등 총 4명밖에 없었다. 올해 2명이 추가됐다.

서폴드와 채드벨은 앞으로 2차례 정도 더 등판할 수 있다. 남은 경기에서 특별히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또 다시 물음표가 달리겠지만 지금처럼 흔들림 없는 투구를 이어간다면 내년에도 한화와 함께 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반기만 해도 퇴출을 걱정해야할 두 선수가 후반기 기막힌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야구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외국인투수들의 운명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채드벨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대전,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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