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영화 '벌새', '우리집', '아워 바디', '메기'. 출처|포스터, 스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눈부신 가을, 극장가를 수놓은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저마다의 개성이 오롯한 여성 감독들의 장편 영화들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극장가는 재미와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개봉, 꾸준히 관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은 그 신호탄입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올해의 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4년을 마주한 14살 은희의 이야기를 겹겹의 레이어로 섬세하게 포착해내며 시간과 세대를 넘은 공감대를 자극하는 '벌새'는 개봉 전부터 전세계 영화제에서 25관왕에 오른 화제작입니다. 개봉과 함께 한국에서도 영화팬들의 찬사를 끌어내며 꾸준히 관객을 모았고, 이미 9만 관객을 넘겨 10만을 바라봅니다. 지난 주말에만 1만명 명 넘는 관객을 불러모아 누적 관객이 9만3366명에 이르렀습니다. 9월을 넘겨서도 꾸준히 관객과 소통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또한 개봉 5주차를 맞아 5만 관객을 돌파하며 영화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집'은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선 동네 삼총사들의 여정을 담아냈습니다. 데뷔작 '우리들'을 통해 아이의 시선에서 관계의 문제를 포착해 냈던 윤가은 감독은 3년 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여전한 관심사를 보다 넓어진 시선으로 그려내며 작가로서의 힘을 입증했습니다. '우리집'의 관객수는 '우리들'의 최종 스코어를 넘으며 의미를 더했습니다.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향으로. 영화 '벌새', '우리집', '메기', '아워 바디'. 출처|포스터, 스틸
이제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이옥섭 감독의 '메기'가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두 작품은 주인공 최희서(아워 바디) 이주영(메기)가 나란히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두 영화가 공개 1년 만에 오는 26일 개봉하는 겁니다. 개성 강한 여성 감독과 캐릭터에 착 붙은 여배우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할 기회입니다.

'아워 바디'는 8년차 고시생 자영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여성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자신을 방치하며 살던 자영이 자신의 몸과 솔직한 감정에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가 보편의 공감을 얻는 한편, 후반부에선 흔한 예측을 벗어나는 반전을 담아냈습니다. 주인공 최희서는 '동주'와 '박열' 이후 또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펴진 미간, 힘있게 세운 턱, 반듯한 어깨… 섬세한 몸짓만으로 달라져가는 삶을 실감나게 표현해내며 시선을 붙듭니다. 영화를 보면 뛰고 싶어집니다. 달리는 여자, 현주 역의 안지혜에게도 눈길이 갑니다.

'아워 바디'가 31살 자영의 이야기라면, '메기'는 흥미로운 키워드를 통해 다채롭게 뻗어가는 이야기를 물고기 '메기'를 화자이자 제목으로 삼아 풀어냈습니다. '믿음'과 '불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메기'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줄거리에 재기발랄한 에너지를 가득 담았습니다. 톡톡 튀는 인물들이 쏟아져나오며 예측 불허의 전개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 생각하는 간호사 윤영 역의 이주영은 단단하고도 확신에 찬 연기로 영화의 맛을 살립니다. 믿음직한 배우 문소리, 독립영화계의 또다른 얼굴 구교환 등도 제 몫을 해냅니다. 

한국영화 기대작들이 최대 시장 여름에 이어 추석 대목까지도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낸 데 대해 한국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관객이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게 대목이 주저앉은 가장 큰 이유라는 겁니다. 높아진 제작비 속에 검증된 흥행공식만을 좇다 보니 관객을 만족시킬 이야기도, 진정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실종됐다는 우려와 자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속속 등장한 여성 감독의 영화들은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다수 남성 감독에 비해 여성 감독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작품 역시 현저히 적었기에 그 자체로 눈에 띄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진짜 차별점은 연출하는 이의 성별, 주인공의 성별이 다르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류 한국영화계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진솔한 감정과 통통 튀는 개성, 작가로서의 시선이야말로 이 영화들을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미덕입니다. 

지난 시사회에서 최근 여성 감독들의 바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옥섭 감독은 "꾸준한 노력들이 이런 기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의 이 기류가 태풍이 되길 바란다." 현장에서 박수를 칠뻔 했습니다. 이 여성 감독들이, 또 다른 작가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굳세게, 또 용기있게 꾸준히 담아내기를,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이 되길 기대합니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