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워바디'의 최희서. 제공|웅빈이엔에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저 배우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니.' 영화 '동주'의 최희서(33)를 보고 느낀 첫 놀라움은 그런 종류였던 것 같다. 다음 영화 '박열'에선 여전히 일본어로 연기하면서 타이틀 롤을 씹어먹을 듯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녀를 보고 다시 놀라움을 느꼈더랬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아워 바디'(감독 한가람)은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안긴다. 그 놀라움이란 오롯이 연기하는 사람, 배우 최희서를 향한 것이다.  

'아워 바디'는 31살 여자, 자영의 이야기다. 한가람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녹였다는 이 영화엔 8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존재마저 희미해진 것 같던 그녀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섬세하게 담겼다. 달리고 또 달리며 방치하다시피 흐물거리던 몸이 단단해지고, 목적을 잃고 방황하던 눈빛이 또렷해지고, 한없이 수그러들던 턱이 꼿꼿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사이, 조금씩 자신이 진짜 원했던 게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자영의 변화가 최희서라는 배우를 통해 섬세하고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건강한 몸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녀의 모습은 '동주'나 '박열'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마침 최희서는 2년 전 촬영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마침 대학에서 만나 6년을 사귄 연인과 결혼을 발표하며 결혼을 앞둔 30대 여배우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던 터. 인터뷰는 '아워 바디', 그리고 그 고민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었다. '영민한 눈빛으로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 배우로서의 각오를 풀어놓는 최희서와의 만남은 즐겁고도 흥미로웠다. 

▲ 영화 '아워바디'의 최희서. 제공|웅빈이엔에스
-촬영한 지 2년, 부산에서 소개된 지 1년 만에 '아워바디'가 개봉한다.

"이제 진짜 시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봉해서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이게 진짜 '본방'이다' 이런 느낌이다. 저희가 딱 이 계절에 찍었다보니 감회가 또 새롭다."

-어떤 면에 끌려 출연했나.

"시나리오가 담백한 소설처럼 읽혔다. '시나리오 좋다!' 느낌이었다. 평범한 30대 여성의 변천사를 오롯이 따라가는 한국영화가 드물다. 제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소재 자체가 신선했다. 그것도 매력이다. 물론 '달리기 영화라면서요?' 하면 '반전이 있는 달리기 영화'라고 답하곤 한다. '저희의 매력은 반전입니다.' 너무 신선한 전개이기도 하고. 끌리기도 했다."

-연기자로서의 욕심이 느껴진다.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로 기록갱신하듯,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는 게 연기자의 목표이기도 하다. 저는 예전부터 그 쪽에 관심이 많아서 성별도 달리해 보고 할머니 역할도 하고 그랬다. 역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유난히 관심이 많다. 케이트 플란쳇을 좋아하는 데도 그런 게 영향을 미쳤을 거다. 자영이 그렇게 특이하지 않다는 것도 좋았다. 진짜 옆에 사는 것 같은 31살 여자를 연기하는 것도 좋았다."

-자영의 디테일한 묘사가 영화에 더 공감하게 했다. 자영을 그릴 때 기준이 있었나.

"8년차 고시생이라는 건 바깥에 나가서 누군가와 점심을 사먹는 것조차 흔하지 않다. 부엌에 라면만 있다. 사람답게 산다 볼 수 없는 자취방에서 공부만 한다. 사회와 단절돼 공부만 했던 여자가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갈 때 어떨까하며 제 안경을 활용했다. 시력이 안 좋다. 안경을 쓴다는 지문은 없었는데 아이디어를 냈다. 옷도 의상팀과 상의했다. 집에서만 입는 반팔 티를 밖에 입고 다니는 디테일도 살리고자 했다. 아무래도 전작이 '박열'의 후미코다보니 더할 나위 없는 도전의 기회이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 신이 났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다 했다."

-초반 장면 때 거울을 보면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은 혹시 안했나.

"남자친구한테 처음 차일 때 '정말 차일 것 같아' 생각하긴 했다. 저런 여성을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다 싶었다. 지질하긴 하더라. 속옷도 안입고 있고 진짜 안좋아 보인다. 폐인이다 폐인. 그 장면을 모니터링 하고 다음부터는 모니터링 안한다고 했다.(웃음)"

-그랬던 자영이 달리기를 시작하며 점점 변화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몸도 달라져간다. 촬영기간이 길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만들어갔나.

"제작비가 한정이 돼 있었다. 복근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게 필요한 장면인데, 촬영을 하루종일 하면 당연히 운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목근을 만든 다음에 크랭크인을 하는 걸로 했다. 복근 장면이 촬영 3회차에 찍은 신이고, 1~2회차에 처음 등장하는 신을 찍었다. 저의 몸은 만들어진 채로 시작했다. 옷을 덧입고 복대를 하고 분장, 자세와 걸음걸이를 달리 했다."

-몸을 쓰는 디테일이 그만큼 중요했겠다. 달라진 몸은 유지 중인가?

"코치님에게 하루 정도 인텐시브 트레이닝을 했다. 레이닝을 했다.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출신이었다. 장거리 서수들은 최대한 상체를 움직이지 않는다더라. 팔은 많이 쓰지만 목이나 허리를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다리보다 골반이 움직이는데 잘 뛰는 장면에 접목시켰다. 못 뛰는 장면은 반대로 하고. 언제 몸을 그렇게 만들어 보겠나. 계속은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한번 근육이 생기니까 쉬며 먹고 놀고 하다가도 금방 돌아오긴 하더라. 술마시기 위해서 운동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게 맞다. 아무때나가 안될 뿐이지 꽤 좋은 운동인 것 같더라."

▲ 영화 '아워바디'의 최희서. 제공|웅빈이엔에스
-운동 이야기인가 싶던 '아워 바디'는 후반부 꽤 도발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배우로서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몸을 쓸 줄 알게 되지만 몸에서 또한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다. 몸이 정신을 지배하느냐. 정신이 몸을 지배하느냐, 끊임없는 의문에 대해 다시 한번 지룬을 던지는 이야기다. 그런 소재 자체가 신선했다. 어떻게 신선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부담이 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게 자영이의 심리와 맞닿아 있었다. 붕 떠있었다면 필요없다 했을 것이다. 감흥 없이 섹스하는 장면도 이 여자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혼자 드러누워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는 건 자유로워진 상태라고 봤다. 자영이다운 강단이다."

-초점을 잃은 자영의 도입부는 사실 배우 최희서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저는 의욕에 넘치는 성격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제가 자영이었다면 그런 남자랑은 아예 사귀지를 않을 거다. 자영이는 그냥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것도 피곤하고 사귀니까 사귀는 거다. 어찌 보면 저와 매우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한 거다. 도전이었고 어려웠다. 초반 캐릭터 잡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다. 테이크도 가장 오래 갔다. 치마 짧다 이런 대사도. 활기찬 발성을 꾹꾹 눌렀다. 초반의 그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다. 나와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구나 싶었다."

-도입부 자영의 그런 상황이 청춘의 고충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실 감독님 자전적인 이야기가 꽤 담겨 있다. 회사 다녔을 때, 나이에 비해서 회사에서 위치가 낮다든지, 어린 직원들이 정직원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이미 서른이었다든지 등은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였다. 친언니가 중독된 것처럼 운동하신다더라. 그를 관찰하고 전해주신 것도 도움이 됐다. 저도 고시공부 한 적은 없지만 오디션에 떨어지는 게 일상이 된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안되고 소속사 미팅도 안되고. 날 원하는 사람이 없다면 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라는 게 얼마나 씁쓸한가. 그런 자괴감이나 허망함 이런 것이 공감이 됐던 것 같다."

-그럴 때 최희서는 어떻게 했나.

"자영과 다른 점은, 저는 그게 하고 싶은 일이어서 계속했다. 자영은 공무원 시험 자체가 어머니의 바람일 것이고 주변이 생각하는 성공하는 삶에 맞춰져 있다. 저는 다 말리지만 제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포기하면 제 자신을 포기하는 거였다. 시작할 때 10년은 버텨보자 했다. 그래도 안되면 10년을 버티자 했다. 다행히 8년 정도 됐을 때 '동주'를, '박열'을 만났다. 저는 다행히 저의 욕심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조금 낙천적인 걸 수도 있다. 28, 29살 때 단편을 많이 찍었다. 미쟝센에서 상을 받는다든지 칸 단편 섹션에 초청된다든지 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대중은 안 보지만 저에게는 큰 위안이었고, 이러다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 영화 '아워바디'의 최희서. 제공|웅빈이엔에스
-최근 브런치에 쓴 글이 화제가 됐다. 87년생이 아니라 86년생이라면서 그간의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아워 바디'를 보기 전 읽어서 더 남달리 다가왔다.

"저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편이다. 그런데 직업상 너무 개의치 않을 수 없다보니 그게 속박이 되더라. 그래서 브런치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왜 숨겨야 하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저는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살았고, 대학교 때는 훨씬 특이하게 하고 살았다. 인도에서 산 바지 입고 숏커트 하고 희한한 귀걸이 하고… 그러고 지냈다. 그런데 배우 프로필을 보면 다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는다. 그 느낌에 부합하려고 지난 몇 년 동안 제 자신을 스탠다드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이젠 못참겠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87이 아니라 86이고!' 하며 글을 쓰는 게 커밍아웃 같았다."

-결혼 소식도 함께 알렸는데 .

"저는 지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일단 결혼은 하기로 했는데 알려야 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었다. 굳이 그거 발표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고, '왜 이야기 안해, 죄 지었어'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엄마는 '이모들한테 이야기해도 되지' 이랬다.(웃음) 이모들도 2주 전에 들었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하면서 그 글을 썼다. 원래 내년에 에세이집 쓸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었다. 브런치는 별개다. '지금 제 상황이 9월말 결혼하는데 9월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겠어요' 하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영화 개봉(9월 26일) 이틀 후가 결혼이다.

"지난 4~6월 미국영화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이 됐다. 2차까지 영상으로 보고 뉴욕에 가서 최종 오디션을 봤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전에 결혼해야겠다 했다. 연말연초 촬영이 될것같아 가을에 (결혼)해도 되지 않을까 해도 되지 않을까 했다. 아직 크랭크인 날짜가 잡히지 않았지만 1주일에 한번씩 시나리오 미팅을 한다. '아워바디' 개봉보다 결혼 날짜가 먼저 잡혔다. (예비신랑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랬다. 글에서 보듯이 (결혼한 여배우에 대해) 업계에서 보는 시선을 걱정하기도 했다. 차기작이 없었다면 더 고민했을 수도 있다. '아워바디'가 개봉할 거란 기대감도 같이 있었다. 너무 다행이다."

-할리우드 진출인 셈이다. 일본인이 됐던 '동주''박열'에 이어서 tvN '빅 포레스트'에선 조선족을 연기했다. 한중일을 넘어 미국까지 가나.

"기대가 된다.(웃음) 이번엔 한국말 잘 못하는 영어 발음 한국어를 한다. 저예산 멜로영화인데 빨리 찍고 싶다. 되게 시나리오가 좋다. 저는 항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있다. 앞으로도 특이한 걸 많이 할 것 같다. '아싸' 하면서."

-최희서에게 '아워바디'는 어떤 영화가 될까.

"데뷔 10년이 됐다. 처음부터 끌고가는 타이틀롤을 처음 맡았다. '박열'이 있지만 저의 또 다른 인생작이 되지 않을까. 굉장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30대 초반의 저의 고민을 캐릭터로 고민하고 관객들이 공감해주시는 것도 기분이 좋다. 예전에 이런 영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보시면서 질문을 갖고 가실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서. 이 영화 속 몸에 대해서 같이 보신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작은 수다 혹은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영화의 묘미인 것 같다. '아워바디'의 매력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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